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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만제(서호공원)169

서호(축만제) 해설(7): 민물가마우지의 서식처가 된 축만제 민물가마우지는 유라시아,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북아메리카 동쪽 연안 등 넓은 지역에 분포한다. 국내에서는 낙동강 하구, 한강, 간월호, 동해안 석호, 하천 등지에서 집단으로 월동하는 흔한 겨울철새다. 10여년 전에는 서호(축만제)에는 눈에 잘 띠지 않는 새였으나 근래에는 겨울이 지나도 돌아가지 않는 텃새가 되었다. 이 새가 축만제에서 텃새가 된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인공섬(1만 2천㎡)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1996년 상류에서 내려온 퇴적물로 축만제 수심이 낮아 준설을 했다. 준설하면서 나온 흙을 이용하여 저수지 가운데에 인공섬을 만들었다. 섬까지는 150m이상 떨어져 있어 배를 타고 가지 않은 이상 사람이 이 섬에 갈 수 없으니, 첫째로 사람이 접근할 수 없으니 새에게.. 2021. 3. 11.
서호(축만제) 해설(6): 항미정(杭眉亭) 순조 31년(1831년) 당시의 화성유수 박기수(1774-1845)가 축만제의 제방 서쪽인 수문 옆에 건립하였다. 박기수는 1831년 2월 21일 화성유수에 임명되어 이듬해 1832년 윤9월 4일 대사헌으로 이임하기까지 11개월간 재임하면서 항미정을 창건하였을 뿐만아니라, 화성지(華城誌)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항미정이라는 이름은 중국 시인 소동파의 시구에서 "서호는 항주의 미목(眉目) 같다"고 읊은 데서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서호낙조(西湖落照)가 수원8경 중 하나였던 만큼 항미정은 예로부터 수원의 대표 장소 중 하나였다. 축만제는 조선 정조 23년(1799년]] 농업용 저수지로 축조되었는데, 당시 축조된 제방(만석거, 축만제, 만년제) 중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흔히 서호로 통하고 있으며, .. 2021. 3. 10.
서호(축만제) 해설(5): 일제강점기 관광지도에서 축만제 일제강점기 1936년에 "관광의 고도 수원"이란 조감도를 발간했다. 이 지도의 중앙에 여기산과 축만제(서호)가 있다. 그림에서 본 축만제는 남쪽 제방은 지금과 똑 같았고, 여기산 아래와 북쪽 편이 공원 조성하면서 다르다. 수문도 나무로 된 것이 아니라 시멘트로 되어 있다. 2021. 3. 10.
서호(축만제) 해설(4): 축만제 아래에 권업모범장 설치 수원은 우리나라의 농업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농업에서 최고 학교인 고등농림학교가 세워젔고 이 학교가 서울대학 농과대학이 되었고, 농업연구의 중앙 기관인 권업모범장이 설립되었고, 이 기관이 지금의 농촌진흥청이 되었다. 그러 최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은 과천으로 캠퍼스로 이전했고, 농촌진흥청도 전주로 이전했다. 수원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과 농촌진흥청을 설치한 것도 축만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2021. 3. 10.
축만제(서호) 해설(3): 축만제 아래에 농업학교 설치 개혁정치와 농업개혁을 했던 정조는 1800년에 갑자기 승하하고 순조가 왕위를 계승했으나 세도정치와 부패로 개혁 정치는 멈췄다. 축만제에 관한 1800년대 기록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없다. 일제강점기에 축만제에 관한 사진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일제는 이곳 축만제 아래에 1904년 농상공학교를 서울에 세웠다. 이 학교는 농림학교로 분리되어 1907년 수원으로 이전하였다. 1918년 3년제 농림전문학교로 개편되었고 1922년 조선총독부 수원고등농림학교로 변경되었다. 이 후 1944년 다시 수원농림전문학교로 개편되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이 되었다. 농업이 산업의 중심이었던 당시 수원고등농림학교(고농)은 전국의 수재들이 몰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축만제가 있어 일제는 농업학교를 수원에 세웠.. 2021. 3. 10.
서호(축만제) 해설(2): 화성지(華城誌)에 있는 축만제 기록 화성지(華城誌)는 화성유수 박기수에 의해 1831년(순조 31)에 편찬된 수원부읍지다. 이 책에서 수원의 읍치 이전, 유수부 승격, 화성 축성, 장용외영 설치 등 신도시 수원의 모습을 상세히 기록한 중요한 자료다. 제언(堤堰:수자원 관리를 위해 하천이나 계류 등을 막은 구조물)에서 만석거, 만년제, 축만제 3대 제언과 함께 1825년 축조된 남제(南堤)가 수록되어 있다. 축만제의 내용을 보면 수원유수의 서쪽 5리 북부에 있고 그 정조 사미년에에 축조했다. 감관(監官) 1명과 감고(監考) 1명을 두었다. 제방 길이(가로)는 1246척(1척은 30.3cm으로 377.5m), 제방폭(세로)은 720척(218m), 높이는 8척, 두께는 7척 5치, 깊이는 7척, 수문2개, 수리이용답 232석락(石落: 1섬을 심.. 2021. 3. 10.
서호(祝萬堤) 해설(1) " 축만제(祝萬堤) 축조(築造)" 농촌진흥청 북서쪽 여기산(麗妓山) 밑에 있는 저수지로 수원 화성의 서쪽에 있어 일명 서호(西湖)라고도 불렸으나 수원시는 지난해 3월 18일, 국토지리정보원 고시(제2020-1130호)에 따라 일왕저수지와 서호의 명칭이 원래 이름인 ‘만석거’와 ‘축만제’로 공식 변경됐다고 밝혔다. 축만제는 본래 정조대왕께서 둔전에 물을 대 농사짓기 위하여 조성하였으며 그 후 농촌진흥청의 시험답(試驗畓)과 인근 논의 관개용으로 이용했으나 근래에는 도시화되어 농토가 없어 수리용으로 활용은 거의 미미하고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2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조의 화성 축성과 만석거 축조] 정조대왕은 1789년(정조 13) 국왕의 부친인 사도세자의 묘소(영우원)을 양주군 배봉산(지금의 서울 동대문구)에서 지금의.. 2021. 3. 9.
서호공원 해설사가 되어 교육을 받다. (사) 대한노인회 수원시팔달구지회에서 노인일자리 및 사호활동지원사업의 사업 중 "노인 재능나눔 활동"사업으로 "서호공원 해설사"사업에 신청하여 참여자로 선정되었다. 서호공원해설사는 총 30명이며, 이중 24명은 전부터 해설사로 활동하던 분이고, 금년에 6명을 신규로 모집하였는데 나는 신규 해설사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오늘 오후 14시부터 (사)대한노인회 팔달구지회에서 재능나눔 사전 교육이 있었다. 오늘 교육은 '안전사고 예방 교육'을 받았고, 참여자 활동기록 작성 요령 교육을 받았고, 서호공원 안내 해설 교육을 받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실제 서호공원에 대한 해설은 미미했고, 교육하는 사람도 교육 받는 사람도 정부로부터 나오는 지원금을 타먹느냐가 우선인 것 같은 인상이었다. 서호공원 안내해설 교육 .. 2021. 3. 9.
일월저수지에서 본 뿔논병아리 오늘 정오 쯤 서호(축만제)에서 광대나물 꽃과 봄까치꽃을 촬영했다. 집에 돌아와 걸음수를 확인해 보니 5천보 밖에 안된다. 오후에 더 걷자며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서호공원을 지나 일월저수지에 도착하여 둘레길을 한 바퀴돌은 후 집으로 돌아 오는 코스다. 일월저수지 돌면서 반 쯤 지나 서쪽편에 이르자 한 무리의 물새를 찍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들 대형 망원렌즈 카메라에 묵직한 삼각대를 가지고 저수지 방향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 무엇을 촬영하냐고 묻자 "뿔논병아리"라고 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뿔병아리가 움직이는 곳을 가리켜 준다. 먼 곳에 두 마리 물새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너무 먼 곳이라 명확하게 촬영은 안되고 겨우 모습만 잡았다. 이 물새는 "머리에 뿔과 같이 깃털이 있는 철.. 2021. 3. 7.
물 오르고 있는 버드나무 봄 소식을 전하는 꽃으로 매화, 산수유, 봄까치꽃, 복수초 등이 알려졌지만 흔하게 볼 수 있으며 봄을 알리는 나무는 아마 버드나무가 아닌가 싶다. 버드나무는 낙엽도 가장 늦게 지면서 잎새는 가장 먼저 나온다. 오늘 수원 서호공원에서 나가 보니 수양버드나무에 물이 오르고 있었다. 가지도 연두빛을 띠고 있고 잎새도 피려 몸짓을 하고 있었다.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고 있다. 세상에 겨울잠에서 깨어나 살아 있음을 알리고 있다. 이제 쭉 가을까지 달릴 것다. 2021.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