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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만제(서호공원)

축만제(서호) 해설(3): 축만제 아래에 농업학교 설치

by 仲林堂 김용헌 2021. 3. 10.

개혁정치와 농업개혁을 했던 정조는 1800년에 갑자기 승하하고 순조가 왕위를 계승했으나 세도정치와 부패로 개혁 정치는 멈췄다. 축만제에 관한 1800년대 기록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없다.

 

일제강점기에 축만제에 관한 사진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일제는 이곳 축만제 아래에 1904년 농상공학교를 서울에 세웠다. 이 학교는 농림학교로 분리되어 1907년 수원으로 이전하였다. 1918년 3년제 농림전문학교로 개편되었고 1922년 조선총독부 수원고등농림학교로 변경되었다. 이 후 1944년 다시 수원농림전문학교로 개편되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이 되었다. 농업이 산업의 중심이었던 당시 수원고등농림학교(고농)은 전국의 수재들이 몰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축만제가 있어 일제는 농업학교를 수원에 세웠던 것이다.

 

수원고등농림학교 정문이다.
수원고등농림학교를 1941년 졸업한 민관식(1918-2006)이 기증한 사진으로 학교 정문과 본관 건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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