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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만제(서호공원)

서호(축만제) 해설(6): 항미정(杭眉亭)

by 仲林堂 김용헌 2021. 3. 10.

순조 31년(1831년) 당시의 화성유수 박기수(1774-1845)가 축만제의 제방 서쪽인 수문 옆에 건립하였다. 박기수는 1831년 2월 21일 화성유수에 임명되어 이듬해 1832년 윤9월 4일 대사헌으로 이임하기까지 11개월간 재임하면서 항미정을 창건하였을 뿐만아니라, 화성지(華城誌)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항미정이라는 이름은 중국 시인 소동파의 시구에서 "서호는 항주의 미목(眉目) 같다"고 읊은 데서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서호낙조(西湖落照)가 수원8경 중 하나였던 만큼 항미정은 예로부터 수원의 대표 장소 중 하나였다.

 

축만제는 조선 정조 23년(1799년]] 농업용 저수지로 축조되었는데, 당시 축조된 제방(만석거, 축만제, 만년제) 중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흔히 서호로 통하고 있으며, 예부터 낙조와 잉어가 유명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서호의 경관과 풍치를 한층 아름답고 돋보이게 하는 명물이 바로 항미정이다. 구조는 ㄴ자형 평면에 날도리집(기둥위에 사각형 단면으로 된 도리를 얹어 꾸민 집)이고, 홑처마 목조건물로 면적은 43.5평방미터이다.

 

항미정은 1908년 10월 2일 순종황제가 기차를 타고 수원 능행을 하였을 때, 융건릉 참배 후 서호 임시 정거장에 도착하여 축만제 뚝방길을 지나 항미정에서 차를 마시며 잠시 쉬었던 유서 깊은 정자이기도 하다.

 

항미정에는 항미정을 안내하는 안내판 외에 또하나 "서호 구국민단 결성지"라는 안내판이 최근 세워져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서호 구국민단 결성지는 독립운동 결사체인 구국민단을 조직하고자 비밀리에 준비모임을 하던 곳이다. 수원 출신 학생이었던 박선태, 이득수 등은 1920년 6월에 임순남, 최문순, 이선경 등 여학생을 규합하여 구국민단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조선의 독립과, 수람된 독립운동가의 가족을 구조할 것 등의 목표를 세웠다. 수원 일대에 창가집과 독립신문을 반포하는 등 독립사항을 고취하는 선전활동을 펴나가다가 일제에 발각되어 박선태, 이득수는 징역 2년 이선경, 임순남, 최문순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항미정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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