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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킴(지정 미지정)113

날자별 문화재지킴이 활동<수원의 역사, 수원의 문화재>(2022. 09. 8) 모니터링 계획일자 대상 명칭 모임 장소 소재지 주소 블로그 중림곤충관 4월 6일 아담스기념관 화성박물관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 350 수원최초신식교육기관아담스기념관(daum.net) 5월29일 수원향교 수원향교 팔달구 향교로 107-9 https://blog.daum.net/kimyongheon/5172064 수원 구 부국원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30 일제강점기에이름났던부국원(daum.net) 구 수원시청사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 119 구수원시청사(현수원시가족여성회관)(daum.net) 구 수원문화원 경기 수원시 팔달구 팔달산로 28 https://blog.daum.net/kimyongheon/5172448 대한성공회 수원교회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31 https://blog... 2022. 8. 11.
안효공 심온 선생 묘역 안효공(安孝公) 심온(沈溫) 선생은 세종의 장인으로 태종과 좌의정 박은의 무고로 사사되었다. 고려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지냈으며, 조선왕조 개국 후에도 판통례문사, 좌부대언, 좌군동지총제 등을 역임했다. 1408년 딸이 나중에 세종이 되는 충녕군의 비가 되었다. 태종의 선위로 세종이 즉위하자 영의정이 되었다. 1418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갔는데, 이때 병조참판 강상인과 그의 동생인 도총제 심정이 금위의 군사를 분속시키면서 상왕인 태종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태종은 분노하여 이들과 함께 병조판서 박습 등을 참수하게 했다. 그는 당시 명나라에 있었으므로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었으나 주모자로 지목되어 귀국하는 길에 의주에서 체포되어 사사되었다. 뒤에 이 사건은 심온이 임금의 장인으로서 세력이 커지는 것을 염.. 2022. 8. 8.
권업모범장 종예부(種藝部) 건물 문화재로 지정 필요 농촌진흥청은 우리나라 농업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조가 축만제를 조성하여 둔전에 물을 댈 수 있었고, 조선을 침략한 일제는 농업진흥을 위하여 축만제 아래에 농업 지도 기관으로 권업모범장을 세웠다. 당시 일제는 권업모범장 본장 등 여러 건물을 세웠으나 대부분 사라졌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 그 건물은 구 농촌진흥청 정문 입구 오른편에 있는 빨간벽돌 건물이다. (사)화성연구회에서 문화재청 사업으로 수원의 문화재를 모니터링의 일환으로 지난 7월 24일 구 농촌진흥청 일원에 지정 또는 미지정 문화제 답사를 했다. 그 때 농촌진흥청 퇴직자인 조인상 박사와 이덕수 박사가 "정문 옆에 있는 빨간 벽돌 건물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선배들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이 건물은 한동안 농촌진흥청 우체.. 2022. 8. 6.
앙카라학교공원 6.25전쟁에 많은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많이 생겼다. 터키는 UN군으로 6.25참전 16개국 중에 한 나라이다. 당시 농촌진흥청 건물에 주둔하던 터키군은 1952년 전쟁 고아들을 모아 수원시 서둔동 45-9번지에 고아원을 세웠다. 처음에는 부대에 천막을 쳐 하나둘 아이들을 거뒀고, 30여 명이 모이자 인근 도축장 건물을 빌려 고아원을 만들었다. 고아들에게 먹을 것을 줬고, 학교에 보냈다. 터키의 군인들은 월급의 5%를 의무적으로 떼어 자신들의 나라 수도 이름을 따라서 지은 앙카라 고아원과 앙카라 학교를 세워 640명의 아이들을 무상으로 교육시켜 주었다. 터키군은 "1952년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모아 '앙카라학교'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부대에 천막을 쳐 하나둘 아이들을 거뒀고, 30여 명이 모이자 인.. 2022. 7. 31.
잠사과학연구100주년기념비(蠶絲科學百周年紀念碑) "수원의 역사, 수원의 문화재" 모니터링 인솔자로서 8월 14일 옛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문화재 모니터링이 계획하고 있다. 그날 예정한 구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문화재 모니터링 이외에 내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 잠업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옛 잠업시험장을 추가하고자 사전 답사하기 위하여 옛 잠업시업장을 찾았다. 이곳은 내가 퇴직 전 2014년 근무했던 곳이다. 이제는 퇴직한지 8년이 지났고, 휴일이라서 수위실에 방문허가를 득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2000년에 잠사인이 세운 비석을 찾아 본관 건물 서북쪽 울타리가 있는 곳을 찾아 가 보니, 변함없이 그대로 있었다. 현직으로 있을 때는 나는 곤충연구자이지 잠사인이 아니라 관심밖에 두고 있어 눈여겨 보지 않았다. 전면에는 " 蠶絲科學百周年紀念碑"(잠사과학백주년기.. 2022. 7. 31.
문화재보호 지원사업: 수원의 역사와 수원의 문화재 모니터링(제6차) (사)화성연구회(이사장 최호운)는 "문화재보호지원사업: 수원의 역사와 수원의 문화재 모니터링" 제6차 지킴이활동을 실시했다. 이번 활동은 수원시 권선구 수인로 126 항미정, 축만제 표석, 축만제(서호), 우장춘박사 묘, 김인환 박사 묘, 정남규 박사 묘, 여기산 채석장, 구 농업과학기술원, 녹색혁명성취탑, 4H운동50주년 기념상탑, 농사원 건물, 주사 박문회 송덕비, 농민회관 순으로 진행되었다. 참가자는 모니터링 시작 예정시간 16시 최호운 이사장을 비롯한 화성연구회 회원, 일반인 등 20명이 참석하였다. 먼저 인솔자인 김용헌 시니어위원장으로부터 간단하게 오늘 모니터링 일정과 항미정에 관련 역사 기록을 해설을 듣고, 참가자 전체 기념촬영을 했다. 모니터링한 후 참가자 보내주신 의견은 아래와 같다. 항미.. 2022. 7. 25.
축만제 축조 후 대한민국 농업의 요람이 된 서둔(西屯)벌 항미정(杭眉亭) - 화성유수 박기수가 1831년 2월 21일 화성유수에 임명되어 이듬해 1832년 윤9월 4일 대사헌으로 이임하기까지 11개월간 재임하면서 항미정을 창건 항미정이라는 이름은 중국 시인 소동파의 시구에서 "서호는 항주의 미목(眉目) 같다"고 읊은 데서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순종황제가 1908년 10월 2일 기차를 타고 수원 능행을 하였을 때, 융건릉 참배 후 서호 임시 정거장에 도착하여 축만제 뚝방길을 지나 항미정에서 차를 마시며 잠시 쉬었던 곳이다. 이날 소네 부통감이 배종했다. 이등박문: 1907년 3월 26일 호세가와 대장 전별하기 위해 찾았다. - 우까기 총독: 1932년 5월 26일 방문 기념촬영 - 소련의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 항미정에서 1933년 기념촬영 서호.. 2022. 7. 23.
버드내 장승 임금이 거동할 때 사람들의 통행을 막고 임금 수례가 지나가는 길을 필로(蹕路)라고 한다. 정조는 현릉원에 전배(展拜: 궁궐, 종묘(宗廟), 문묘(文廟), 능침(陵寢) 등에 참배함) 가는 길에 지지대고개에서부터 현릉원까지 18개의 표석과 11개소의 장승을 세웠다. 그 중 표석은 5개가 남아 있고, 장승은 모두 없어졌다. 장승이 있던 11개소는 지지대고개, 일용리, 기하동, 상류천, 만화련, 건장동, 하류천, 옹봉, 유침현, 안녕리, 능원소동구에 있었다. 이 중에서서 상류천에는 표석과 장승이 있었다. 본래 있었던 자리는 성원아파트 동북쪽에 위치하나 현재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어 아파트가 들어 서고 있어 상류천 표석은 성원아파트 정문 앞 길건너에 세웠고, 장승은 상류천 표석으로부터 남쪽으로 100여미터 지점인 .. 2022. 7. 18.
괴목정교(槐木亭橋) 표석 괴목정교(槐木亭橋)의 표석은 수원시 장안구 파장도 23-11 미륵당에서 위쪽으로 50m지점 옛 1번 국도 괴목정교 옆에 있다. 괴목정교에서 위쪽으로 약500m지점에는 프랑스군참전비가 있다. 괴목(槐木)은 느티나무이고, 정(亭)은 정자이고, 교(橋)는 다리이다. 한문 뜻으로 보면 이곳은 느티나무가 있는 정자가 있으며 다리가 있다고 가리킨다. 정조는 그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현릉원(지금의 융건릉)이 있는 것을 행차하면서 수원의 입문인 지지대고개부터 5리 간격으로 주요 지점에 표석(標石)을 세웠다. 이곳은 지지대부터 첫번째 세운 표석이다. 이 표석의 진본은 훼손이 될 것을 염려하여 수원역사박물관으로 이건하여 보존하고 있고, 현재 표석은 같은 장소에 세운 복제본이다. 표석 옆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는.. 2022. 7. 17.
프랑스군 참전기념비 프랑스군 참전기념비는 기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산 44-6 지지대고개에 위치해 있다. 수원에서 서울방향으로 지지대 고개 못미쳐 있다. 이 기념비는 한국전쟁 때 한국의 안전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정의의 십자군으로 파병되어 많은 전과를 거두고 산화한 프랑스군 영령들의 넋을 위로 하기 위하여 1974년 10월 3일 국방부가 건설하였고, 2000년 11월 6일부터 2001년 11월 3일까지 추모공원으로 조성했다. 프랑스군은 원주 쌍터널 부근 전투에서 1951년 1월 31일1부터 2월 2일까지 중공군 제125사단 예하 2개 대대와 전투를 벌렸고, 양평 지평리 전투에서 1951년 2월 13일-15일 중공군의 4일간 파상공격을 받았으나 물려쳤고, 양구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 1951년 9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2022.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