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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킴(지정 미지정)114

상류천(上柳川) 표석(標石) 세류역 화단에서 하류천의 표석을 찾아 본 후 다시 분당선 전철을 타고 매교역에서 하차하여 3번 출구로 나와 300m쯤 걸어 길 건너 성원아파트 정문 앞에서 상류천 표석을 찾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번을 알 수 없어 찾을 수 있을 가? 걱정을 했다. 지도상에서 본 상류천 표석 지점이 분명치 않아 성원아파트 앞 슈퍼마켓 주인에게 여쭸으나 몰랐다. 성원아파트 길 건너편 주택가에서 찾으면 찾을 수 있지 않을 가 생각하며 건널목을 건너자 상류천이란 표석이 눈에 띠었다. 이 표석은 정조의 명에 따라 지지대고개에서 현릉원까지 5리마다 그 지점의 지명을 새긴 18개의 표석을 세웠으며, 그 중 하나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표석은 이 상류천 표석을 포함하여 5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곳 표석은 복제품이고, 원본은 수원.. 2022. 6. 20.
하류천(下柳川) 표석(標石) 한글로 하류천표석이라고 바로 그 뜻을 알 수 없다. 하류(下流)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류천(下柳川)은 아래쪽에 버드나무가 있는 하천이란 뜻이다. 표석(標石)은 표시한 돌이다. 하류천표석은 버드나 있는 하천에 표시한 돌이다. 화성성역의궤를 보면, 정조대왕의 명으로 지지대고개부터 현륭원까지 왕의 행차로인 필로(蹕路: 임금이 탄 수레가 지나는 길)에 5리마다 그곳의 지명을 돌에 새겨 표석을 세웠다고 한다. 지지대고개(遲遲峴), 지지대(遲遲臺), 괴목정교(槐木亭橋), 여의교(如意橋), 만석거(萬石渠), 영화정(迎華亭), 대유평(大有坪), 관길야(觀吉野), 매교(梅橋), 상류천(上柳川), 하류천(下柳川),황교(皇橋), 옹봉(甕峯), 대황교(大皇橋), 유첨고개(?瞻峴), 유근다리(?覲橋),.. 2022. 6. 20.
문화재보호 지원사업: 수원의 역사와 수원의 문화재 모니터링(3차) 화성연구회(이사장 최호운) 주최 '제3차 문화재보호지원사업: 수원의 역사와 수원의 문화재 모니터링' 행사에 6월 12일 16시 화성박물관에서 참여자 16명이 모였다. 먼저 참가자는 등록하고 '화성연구회'라고 쓴 빨간 조끼를 입었다. 참가자가 유니폼으로 똑같은 옷을 입으니 화성연구회의 일원란 소속감과 함께 모니터링을 위한 준비 자세를 완료한 모습이다. 일행 중에는 화성박물관장이며 본 연구회 부이사장인 한동민 박사가 참여하여 해설을 맡아주셨다. 이번 행사는 3차로 진행되는 행사다. 1차는 4월 16일,, 2차는 5월 29일 있었다. 앞으로 2주 간격으로 수원지역 지정 또는 지지정 문화재를 대상 모니터링을 하게 된다. 일행은 첫 방문코스로 3.1학교에 있는 스미스박물관을 찾았다. 1시간 전까지도 열려 있었다고.. 2022. 6. 13.
영신연와(永新煉瓦) 영신연와는 수원의 유지로 알려진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에 박지원씨가 1973년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887-19에 세운 빨간벽돌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그는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에 1975년 영신여고를 세웠다. 영신연와는 당시 동보연와(현재 태산아파트 자리)와 경쟁하며 연간 1,000만장 붉은 벽독을 찍어냈다. 1990년대 고층아파트 도입으로 구조재와 마감재가 변화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20년간 영화를 뒤로 하고 1993년 문을 닫았다. 그 후 30년간 높이 솟은 굴뚝만 그 모습 그대로이지만, 지금 그 형체도 알아 보기 어려울 정도로 폐허가 되어 있다. 공장안으로 접근할 수 없게 폐건축 자재가 쌓여 있다. 수원일보 금년 3월 15일자 정준성 기자의 기사를 보면 "영신연와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 2022. 6. 1.
서둔야학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과 수의과대학 학생들이 1965년부터 1983년까지 수원 서부지역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못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중등과정을 운영하였다. 서둔 야학은 1954년 서둔교회에서 설립한 성경구락부로부터 시작되어 탑동 마을회관, 농사원 등지를 전전하며 활동하다가 1965년 당시 농학과 학생이었던 황건식 등이 야학교사들이 성금을 모아 이곳에 부지를 구입하고 교사와 학생들이 직접 건물을 설계하고, 건축하였고, 책상과 걸상을 직접 제작하여 사용하였고 매년 10-20명의 학생을 모집하여 가르치었다. 이 학교는 수원시 권선구 서둔로 261-90 수원시민농장 후문 주차장 옆에 있다. 당시 교장이었던 황건식 선생은 경향신문 기자와 인터뷰에서 "시설이 너무 열악해 선생님들(대학생들)이 모금해 .. 2022. 5. 31.
탑동 축산 싸이로 축산 싸이로는 가축의 사료를 저장하는 곳이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농장에서 사용했던 싸이로 2기가 수원시 권선구 서둔로 155 수원탑종시민농장에 남아 있다. 하나는 빨간벽돌로 쌓은 적색싸이로이고, 다른 하나는 흰색을 칠한 흰색싸이로 이다. 둘 사이의 거리는 약 50m가 된다. 적색싸이로는 원통형이 있고 꼭갈형 지붕으로 있다. 빨간 벽돌로 쌓고 그 1-2m간격으로 화강석 돌을 넣었다. 지면에서 50cm가량은 화강석으로 쌓았다. 그 속은 비어 있었다. 현대 축산 싸이로는 쇠로 만들고 있어 벽돌 싸이로는 희귀하다고 볼 수 있어 보존 가치가 높을 것으로 본다. 2022. 5. 31.
옛 수원극장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극장은 서울 종로구 단성사로 1907년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주관수원 최용석 기자가 쓴 2020년 4월 14일 자 "최초의 극장 - 수원극장"기사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언제 수원극장이 개장했다는 기록은 없으나 1922년 5월 7일 동아일보 기사에 "수원기생자선극"이란 기사로 보아 1922년 이전으로 192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1922년 수원 기생 공연 외에 1935년 서정권 선수의 권투경기, 1931년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 선생의 공연 등이 수원극장에서 있었다. 수원극장은 중동사거리에서 1933년 교동사거리로 이전하여 지금까지 그 건물은 보존되고 있다. 1951년 팔달문 옆에 중앙극장이 생길 때까지 유일한 수원의 극장이었다. 1999년 폐관 후 수원극장 건물은 나이트클럽, 웨.. 2022. 5. 30.
차계영(車啓榮)과 그의 생가(生家) 차계영은 1913년 9월 25일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산루리에서 출생했으며, 1930년경 경기도 경성부 삼청동에 거주했다. 수원군 수원면 산루리는 1949년 수원군에서 수원시와 화성군으로 나눠지기 전 지명으로 지금 주소는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 3가 123-2이다. 1930년 11월 중순 조선총독부 산림부 급사로 일하던 중 비밀결사 독서회에 참여했다. 1931년 6월 독서회가 개편된 적우회(赤友會)의 중앙집행위원을 맡아 활동하다가 발각되어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1년 6월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에도 공산주의 활동을 수행하다 1935년 8월 서울에서 조선공산당 재건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는 등 수차례 옥고를 치러야 했다. 1946년.. 2022. 5. 29.
날자별 문화재 지킴이활동 계획 모니터링 날자별 문화재지킴이 활동(2022. 05. 30) 모니터링 계획일자 대상 명칭 모임 장소 소재지 주소 블로그 중림곤충관 4월 6일 아담스기념관 화성박물관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 350 수원최초신식교육기관아담스기념관(daum.net) 5월29일 수원 구 부국원 수원시여성회관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30 일제강점기에이름났던부국원(daum.net) 구 수원시청사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 119 구수원시청사(현수원시가족여성회관)(daum.net) 구 수원문화원 경기 수원시 팔달구 팔달산로 28 https://blog.daum.net/kimyongheon/5172448 수원향교 팔달구 향교로 107-9 https://blog.daum.net/kimyongheon/5172064 6월12일 아담.. 2022. 5. 20.
성신사(城神祠) 성(城)을 지키는 신을 성신(城神)이라고 하고, 성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당을 성신사(城神祠)라고 부른다. 수원화성을 축조한 정조는 1796년 7월 11일 팔달산 중턱에 성신사를 준공하고 매년 봄 가을로 화성의 안녕과 보호를 기원하고자 제사를 봉행해왔다. 일제는 성신사를 해체하였고 해방 이후에 그 자리에 강감찬 동상을 세웠다. 강감찬 장군은 나라를 지킨 훌륭한 장군이지만 수원과는 어떤 인연이 없다는 것이 알려졌으며, 화성연구회를 중심으로 복원하자는 논의가 활발했고 2009년 10월 일제에 훼철된지 100여년만에 복원했다. 복원할 때 원래 위치에 복원이 어려워 남쪽으로 약간 내려 와 이건했다. 성신사는 정당(본건물)은 3칸이고, 솟을 대문에 좌우로 행랑을 두어 남쪽 행랑은 음식을 준비하는 전사청으로 썼고,.. 2022.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