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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킴(지정 미지정)

문화재보호 지원사업: 수원의 역사와 수원의 문화재 모니터링(제4차)

by 仲林堂 김용헌 2022. 6. 27.

제4차 문화재보호 지원사업: '수원의 역사와 수원의 문화재 모니터링'이 2022년 6월 26일 16시부터 화성연구회 회원과 일반 시민 참여자 21명이 참가한 가운데 팔달문 팔달산 입구에서 출발하여 홍남파노래비, 6.25 민간사망자 위령탑, 지석묘, 일장기게양대, 고성조용사공훈비, 대한민국독립기념비, 삼일독립운동기념탑 순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이번 모니터링에도 한동민 화성박물관장이며 화성연구회 부이사장께서 해설을 맡아주셨다. 그리고 최호운 연구회 이사장님께서 참가하시어 모니터링에 힘을 주셨다. 

 

팔달산에는 선사시대 고인돌 유적이 있다. 그 후에는 별다른 유물 유적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정조가 수원읍치를 지금의 융건릉 자리에서 팔달산 아래로 이건하면서 팔달산에 화성을 쌓고, 행궁을 팔달산 동쪽에 지었고, 수원향교를 남쪽에 세웠고, 또 성신사를 산 중턱에 웠다. 해방후에는 대한독립기념탑을 세웠고, 3.1독립운동기념탑, 위령탑 등이 세워졌다. 근래에는 경기도청, 문화원, 정조대왕동상, 경기도지사 관사 등 많은 유물유적과 기관이 자리잡음으로 수원의 메카가 되었다.  

 

이번 모니터링 대상은 팔달산 중턱 또는 능선에 있는 유적이고, 제5차 모니터링에서는 팔달산 남쪽에 있는 유적이고, 10월 9일 모니터링에는 북서쪽에 있는 유적이다. 

 

홍난파 노래비이다. 얼굴조각 동판이 원형 조각 안에 있었으나 누군가가 떼어 없어졌다.
2018년 4월 16일 촬영한 사진에는 얼굴동판과 '홍란파'란 세 글자가 있었다.
수원 노래비 건립위원회가 노래비를 세운 뜻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조병규 경기도지사, 유기천 수원시장 등이 참석하였고, 수원여중학생들이 고향의 봄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일행은 먼저 찾은 곳은 '홍난파 노래비'이다. 노래비가 세운 곳은 팔달문에서 성곽을 끼고 팔달산으로 오르는 중턱에서 만나는 팔달산 순환도로 위에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당시에는 남양군 활초리였고, 그 후 수원군으로 변했고, 지금은 화성시에 속한다. 이 노래비를 세울 때는 남양 활초리가 수원시에 속해 있어 수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팔달산에 노래비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훼손된 얼굴동판과 '홍난파' 글자 복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 쓰레기가 있어 청소가 필요했다.

 

모니터링 일행이 노래비를 살펴보고 있다.

다음 찾은 곳은 6.25 때 공산당에 의해 목숨을 잃은 우익 인사들의 유령탑이다. 이곳은 팔달산 중턱 순환도로에서 팔달약수터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100여미터 지점에 있다. 찾은 날이 6월 26일로 6.25 하루 뒤로 이재준 수원시장 당선인 등 조화가 있었다. 일행은 먼저 묵념을 하고 모니터링을 했다. 글씨를 새긴 돌이 화강암이나 재질이 좋지 않아 마모되어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위령탑이다.
모니터링 일행은 먼저 묵념을 하고 있다.

위령탑에서 남쪽 방향으로 오솔길을 돌아 팔달산 남쪽 산기슭에 있는 '팔달산지석묘군'을 찾았다. 고인돌 주변은 철제 울타리가 있어 잘 보존되고 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곳에서 돌칼이 발굴되어 박물관에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안내판에 돌칼 사진을 넣은 안내판을 제작하여 다시 세웠으면 좋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고인돌 앞에서 모니터링 일행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간판을 살펴보고 있는 일행이다.

 

다음 행선지는 팔달산 채석장이다. 이곳은 고인돌이 있는 곳에서 등산로를 따라 100여미터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이곳은 화성을 축성하면서 필요한 돌을 뜨던 곳이다. 당시 채석은 팔달산, 숙지산, 여기산에서 했다는 기록이 있다. 

채석하기 위하여 쐐기를 심으려고 파냈던 흔적이 보인다.
일행이 채석 흔적을 살펴보고 있다.

 

다음은 문화재는 아니지만 일제가 세운 일본 국기를 세웠던 '일장기게양대'와 청일전쟁 때 죽은 일본군인 기념비가 있던 유적이다. 이곳은 채석장에서 위쪽으로 50-60m 지점이며 화양루 아래에 있다. 일장기 게양대는 숲 속에 있어 잘 보이지 않으나 지금도 시메트 초석 위에 철재로 만든 게양대가 녹은 쓸었지만 온전한 편이다. 일본군 기념비는 해방 후 부셔버렸으나  일부 그 초석으로 추정되는 시멘트가 남아 있었다.  

일행이 일장기 게양대 앞에서 한동민 박사로부터 해설을 듣고 있다.

 

낙엽이 덮혀있는 시멘트가 일본군 소좌 기념비의 초석으로 추정된다.

다음 행선지는 6.25 때 전사한 공군 고성조 용사 공훈비이다. 이 비는 매산동에 거주하는 고성조 용사의 아버지가 아들의 전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이 비는 한 개인이 세운 비로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일행이 고성조 용사 비를 관찰하고 있다.

다음 모니터링 장소는 팔달산 능선 서남암문에서 약 70m지점에 있는 대한민국독립기념비이다. 이 비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수립을 맞춰 지금의 삼일상고 주차장에 있는 동공원의 노구찌순직비를 부수고 난 뒤 그 비좌 위에 세운 대한독립기념비이다. 이 비석은 1969년 3월 1일 3.1운동 50주년을 맞이하여 팔달산에 삼일운동기념탑을 세우면서 팔달산으로 이건하여 삼일운동기념탑과 나란히 세웠다. 

 

이 비석의 모양은 상부로 가며 좁아지는 형태로 우리나라 비석의 모양과는 다르다고 한다. 이 비문의 글씨는 당시 북중학교 교사였던 서예가 유근홍 선생이 쓴 것이다. 이 탑을 세울 때 내부부장관이었던 신익희 선생께서 오셨다고 한다. 

 

안내문 제목은 삼일운동기념탑이라고 되어 있으나 그 내용을 보면 대한민국독립기념비이다. 안내판을 수정하여 세워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일행이 한동민 박사의 해설을 듣고 있다.

 

마지막 일정으로 삼일독립운동기념탑이다. 이 탑은 1969년 3.1운동 50주년을 맞아 10월 15일 수원시민의 날을 맞아 팔달산에 세운 탑이다. 일행은 이 탑 앞에서 기념 촬영한 후 이번 4차 문화재 모니터링을 마쳤다.  

삼일독립운동기념탑이다.
모니터링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번 4차 모니터링에 장마철에 무더운 날씨에도 참여자가 적을 가 걱정했으나 기본인원 15명이나 6명이 초과한 21명이 참여 성황속에 진행되었다. 한동민 박사의 훌륭한 해설이 있어 더욱 빛이 났다. 이번 모니터링을 통해 팔달산에 있는 홍난파 노래비 등 여러 유적이 세운 의미를 알게 되었고, 유적을 살펴보며 보존 상태를 살피고 문제가 있는 점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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