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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킴(지정 미지정)

문화재보호 지원사업: 수원의 역사와 수원의 문화재 모니터링(3차)

by 仲林堂 김용헌 2022. 6. 13.

화성연구회(이사장 최호운) 주최 '제3차 문화재보호지원사업: 수원의 역사와 수원의 문화재 모니터링' 행사에  6월 12일 16시 화성박물관에서 참여자 16명이 모였다. 먼저 참가자는 등록하고 '화성연구회'라고 쓴 빨간 조끼를 입었다. 참가자가 유니폼으로  똑같은 옷을 입으니 화성연구회의 일원란 소속감과 함께 모니터링을 위한 준비 자세를 완료한 모습이다. 일행 중에는 화성박물관장이며 본 연구회 부이사장인 한동민 박사가 참여하여 해설을 맡아주셨다. 

 

이번 행사는 3차로 진행되는 행사다. 1차는 4월 16일,, 2차는 5월 29일 있었다. 앞으로 2주 간격으로 수원지역 지정 또는 지지정 문화재를 대상 모니터링을 하게 된다. 

 

일행은 첫 방문코스로  3.1학교에 있는 스미스박물관을 찾았다. 1시간 전까지도 열려 있었다고하는 교문은 닫혀 있었다. 첫 관문부터 막혔다. 수위실에 사람이 있나 불러 보았으나 대답이 없다. 누군가 잠긴 문을 손을 넣어 열어보자, 문은 열렸다. 사전에 방문 허가를 받았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고 무단 입장이라 항의를 받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일행은 스미스기념관 앞으로 걸어갔다. 그 때 저 멀리 화단에 물을 주던 수위가 나타났다. 그는 강력 항의를 한다. 한동민 박사가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행은 가까이 가서 보지도 못한채 먼 발치에서 보고 서둘러 나왔다.

 

나는 이번 방문에 앞서 2번이나 이곳을 방문하여 여러 곳을 사진 촬영을 해서 이 건물의 이모저모를 파악하고 있었다. 적벽돌 건물로 보존 상태가 아주 양호했다.

스미스기념과 전경이다.
스미스기념관을 배경으로 참가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다음 방문지는 수원시 북수동 251번지 이정수 가옥이다. 이 가옥의 대문이 열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계셰요?"라고 여쭸으나 인기척이 없다. 다소 예의에 벗어나지만 살금살금 들어 갔다. 이 가옥은 수원시근대문화유산 제94호로 지정된 건축물이다. 오래된 기와 한옥이다. 오랫동안 원형 그대로 보존은 잘 되고 있으나 너무 낡아 있었다. 고건축물은 원형보존도 필요하지만 그대로 되면 낡아 그 가치 모두 상실할 수도 있어 최소한의 보존 수리는 필요하다고 본다. 이 가옥은 더 이상 방치해서는 곤란할 것 같은 생각이다. 또한 이 가옥은 요즘 사람들이 살기에는 너무 불편이 많을 것 같았다.  

밖에서 본 이정수 가옥이다.
안에서 본 이정수 가옥이다. 함석치마 물받이가 낡아 녹이 슬었다.
이정수 가옥 대들보와 석가래이다.

 

이정수 가옥에서 50여미터 거리에 있는 금보여인숙이다. 이곳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지 않았으나 이정수 가옥과 같이 기와 한옥으로 비슷한 시기에 건축한 것으로 보였다. 금보여인숙이란 간판이 촌스러우나 오히려 정겨우며 진실됨을 이야기하는 듯하고 오랜 세월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또 벽화가 이채롭다. 큰 잉어를 왜 그렸을 까? 남미 사람이 그렸다고 했다. 

다음은 금보여인숙에서 옛 길을 따라 250미터쯤 걸어서 구 소화초등학교 후문에 도착했다. 이 좁은 도로는 팔달문에서 장안문을 지나는 정조로가 만들어지기 전에 있었던 도로라고 한다. 팔부자거리라고도 불린다.

 

밖에서 본 금보여인숙이다.
안에서 본 금보여인숙이다. 잡다한 물건들이 많다. 방문이 문 종이가 아닌 합판으로 된 게 특이하다.

 

구 소화초등학교는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42에 있다. 소화초교는 석조 건물이고, 그 옆에 있는 현대식 건물은 학생 수요를 감당 못하여 추가로 지은 건물이다. 이 학교 안내 표지판은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소화초등학교는 1934년에 설립된 "소화강습회"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소화란 테레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1934년 10월 1일 "애주애인"을 교훈으로 4년제 교육과정으로 "소화강습회"가 설립되었고, 천주교 수원본당의 4대 주임인 심응영 신부가 초대 원장으로 취임해 교육을 시작했다. 현재의 소화초등학교 명칭은 1946년 1월 24일 6년제 정규 국민학교로 인가를 받아 같은 해 10월 1일 6학급의 수원소화국민학교로 개교하면서 사용되었는데, 그 해 단층 목조로 3개 교실을 준공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건물이 전소되자 미군과 천주교 신자들의 지원으로 1954년 오늘날과 같은 6개 교실을 갖춘 2층 석조 건물을 완성하였다.

 

이 건물은 화강암 돌로 외벽을 쌓아 건고하였으며, 어느 곳 하나 손상받은 곳이 없이 보존 상태가 아주 양호했다.

구 소화초등학교이다.

 

일행은 구 소화초등학교에서 한동민 박사의 해설을 듣고 있다.
벽도 창문도 온전하다.

 

구 소화초등학교 정문으로 나와 정조로 다시 200m를 걸어 종로교회 앞에 잠시 머물렀다. 교회 앞에 세운 게시판에 옛 교회의 건물 사진이 있다. 사진에 있는 교회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했다면 문화재로 보존 될 수 있었겠지만 지금 건물은 신축 건물로 문화재가 될 수는 없다. 건물 신축도 좋지만 옛 건물 보존도 문화적 가치가 있음을 여기에서 다시금 본다.

1932년 세운 수원종로교회 사진이 보인다.

일행은 정조로 뒷 골목길인 팔달로 810번길로 들어서  독립운동가 박선태가 살았던 팔달로 1가 7-5에서 둘러보고 그의 생애와 살았던 유허지에 관한 이야기를 한동민 박사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구국민단 단장 박선태가 살았던 수원시 팔달로구 팔달로 1가 7-5에서 한동민 박사가 박선태 항일 비밀결사 조직을 이끈 박선태의 생애와 주거지를 설명하고 있다.

일행은 다시 정조로 큰 길로 나와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92에 있는 김세환 독립운동가의 집터에서 도착하여, 그 집터 건물에서 살고 있는 화성연구회 조성진 이사로부터 김세환 선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수원의 독립운동가 김세환 집터에 세원 표지판이다.

일행은 팔달문을 둘러보고 팔달산 입구에 있는 남문로데오청소년문화공연장에서 잠시 쉴가 했으나 공연 중이라 자리가 없어 수원화성 팔달산 입구 안내소 뒤편에서 잠시 앉아 일행 중 한 사람이 가지고 온 보리수 열매를 먹으면서 쉬었다.  

 

다음 코스는 팔달구 팔달로 3가 123-2 차계영 독립운동가의 생가 방문이다. 생가는 빈집으로 담장은 헐렸으나 천으로 막아 놓아 집안으로 입장할 수 없었고, 담 넘어로 건물을 낡았지만 수원에 얼마 남지 않은 해방 전 건물로 보존 가치가 있어 보였다. 지붕과 현관 일부는 보수했다고 한다.

 

차계영 선생은 1913년 9월 25일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산루리에서 출생했으며, 1930년경 경기도 경성부 삼청동에 거주했다. 수원군 수원면 산루리는 1949년 수원군에서 수원시와 화성군으로 나눠지기 전 지명으로 지금 주소는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 3가 123-2이다. 1930년 11월 중순 조선총독부 산림부 급사로 일하던 중 비밀결사 독서회에 참여했다. 1931년 6월 독서회가 개편된 적우회(赤友會)의 중앙집행위원을 맡아 활동하다가 발각되어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1년 6월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차계영 생가다.
차계영 생가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일행이다.

 

차계영 생가를 나와 일행은 향교를 따라 걸어서 5분 거리인 교동사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이춘택정형외과의 높은 건물 아래에 '한복맞춤 한복대여'란 간판이 보이는 건물이 '수원극장' 건물이다. 수원극장은 수원 최초의 영화관으로 설립년도 기록은 없으나 1920년경에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1922년 5월 2일자 수원 기생 공연 동아일보 기사가 있고, 1935년 서정권 선수의 권투경기, 1931년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 선생의 공연 등이 수원극장에서 있었다. 이 극장은 원래 중동사거리 지금 신한은행수원지점 자리에 있었으나 1933년 교동사거리로 이사왔으며, 1999년 폐관했다. 한동안 한복점으로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한복점도 이사갔고 빈 집으로 임대하려 부동산에 나와 있다.

이춘택병원 앞 한복집이 수원극장 건물이다.
일행이 수원극장 건물을 보고 있다.

이날 마지막 코스로 수원시 팔달구 중부대로 13번길 5(영동 43-2) 거북신당을 찾았다. 오늘은 대분 열쇠가 잠겨 있지 않아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좁은 시장 골목에 있고 건물과 그 터가 너무 좁아 광각렌즈가 없으면 전체 모습 촬영이 어려웠다. 이곳은 수원의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하나인 팔달문 서남쪽에 있는 영동시장에 있다. 이 신당은 수원시 향토유적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지 안내문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지역 영동시장의 번영과 상인들의 평안을 위하여 1790년경 창건되었던 도당인데, 그뒤 인계동에 거주하는 이씨성을 가진 할머니가 가재를 들여 경찰서 동사무소 등 각 기관의 협조를 얻어 지금의 건물로 중수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맞배지붕에 한식 골기와를 얹었는데 그 규모는 정면 4.19m, 정면 2.5m이다. 집 내부에는 제단과 거북산당 도당할아버지와 할머니, 염라대왕의 채색벽화가 있다. 지금도 음력 7월 7석과 10월 7일이면 영동시장번영회가 중심이 되어 시장의 수호신인 도당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제사를 올린다.

 

건물은 사방 한 칸으로 정면 507㎝, 측면 266㎝ 규모를 갖고 있으며, 지붕은 맞배지붕에 골기와를 얹었으며 동북쪽을 향하고 있다. 1964년에 지어졌으며, 1986년 수원시 향토문화유적 제2호로 지정되면서 새로 단청을 입혔고, 1994년에 다시 건물의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당집 내부에는 제단과 ‘대왕님(염라대왕님)’, ‘거북도당 할아버지’와 ‘거북도당할머니’의 신격의 형상을 그린 그림 두 폭이 걸려있다.

거북신당이다.
태극기가 보이는 집이 거북신당이다. 모니터링 대원 일행이 거북신당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3차 모니터링은 이 사업의 제목에 걸 맞게 수원의 역사와 모니터링이었다. 수원은 1795년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성하면서 만든 신도시이다. 그 때 이후 성안에부터 수원은 발전하였으며 오늘날 광역도시 만큼의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이번 방문에서는 1923년 건립한 스미스기념관, 1954년 준공한 구 소화초등학교, 일제강점기에 지은 차계영 생가, 1933년 건물인 수원극장 등 고 건물을 살펴보았고, 독립운동의 근거지인 종로교회와 삼일학교, 박선태 구국민단 단장의 주거지, 애국지사 차계영 선생의 생가 등 독립운동가의 활동 현장을 찾아가는 의미 있는 모니터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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