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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킴(지정 미지정)

잠사과학연구100주년기념비(蠶絲科學百周年紀念碑)

by 仲林堂 김용헌 2022. 7. 31.

비석 전면이다.

"수원의 역사, 수원의 문화재" 모니터링 인솔자로서 8월 14일 옛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문화재 모니터링이 계획하고 있다. 그날 예정한 구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문화재 모니터링 이외에 내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 잠업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옛 잠업시험장을 추가하고자 사전 답사하기 위하여 옛 잠업시업장을 찾았다. 

 

이곳은 내가 퇴직 전 2014년 근무했던 곳이다. 이제는 퇴직한지 8년이 지났고, 휴일이라서 수위실에 방문허가를 득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2000년에 잠사인이 세운 비석을 찾아 본관 건물 서북쪽 울타리가 있는 곳을 찾아 가 보니, 변함없이 그대로 있었다. 현직으로 있을 때는 나는 곤충연구자이지 잠사인이 아니라 관심밖에 두고 있어 눈여겨 보지 않았다. 

 

전면에는  " 蠶絲科學百周年紀念碑"(잠사과학백주년기념비)라고 써 있고, 뒷편에는 연혁을 기록해 놓았다. 연혁 내용은 아래와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沿革

1900. 11. 農商工部蠶業課試驗場(농상공부 잠업과시험장)

1914. 3.  勸業模範場蠶種製造所(권업모범장 잠종제조소)

1957. 5.  農事院 蠶業試驗場(농사원 잠업시험장)

1962. 3.  農村振興廳 蠶絲昆蟲硏究所(농촌진흥청 잠사곤충연구소)

1998. 8.  農村振興廳 農業科學技術院 蠶絲昆蟲硏部(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 잠사곤충연구부)

비석의 뒷면이다.
비석 전면 하단에 "우리라라의 잠사업은 단군이래로 전승발전하여 조국의 경제발전과 근대화에 크게 이바지하였고 국위를 높이 선양하였다."라고 썼다.

잠사과학연구백주년기념비를 관찰하고, 내가 퇴직 전에 있었던 적벽돌 건물을 찾았다. 그러나 느티나무 거목은 여전 하나 그 옆에 100년일 버터왔던 적벽돌 건물은 흔적 하나 없이 사라졌다. 잠업은 나이롱이 나오기 전에 비단을 만드는 산업으로 먹고 사는 식량작물 못지 않게 중요했다. 특히 해방 전까지만해도 잠업의 위상은 대단했다. 우리나라 농업의 중요한 역활을 해왔던 잠업의 흔적은 거의 지워져 이제 남아 있는 건물 하나 없다. 옛전에는 잠사박물관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다.

 

잠업시험장에1994년 건축한 건물이다.

 

옛 잠사곤충연구소 건물을 헐어버리고 새로 세운 건물이다. 지금은 잠사인은 다 떠나고, 작물재배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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