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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270

맹묘 관람: 맹자생평사적진열(孟子生平事蹟陳列) 아성전(亞聖殿) 관람을 하고 맹자의 생애사적전시실이라고 할 수 있는 맹자생평사적진열(孟子生平事蹟陳列)을 찾았다. 이곳은 공묘에서 공자의 탄신부터 영면할 때까지 그림으로 설명한 성적도(聖跡圖)와 비슷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성적도는 벽면에 각석(刻石)한 원래 모습에 유리상자를 씌웠놓았다. 각석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마모되어 흐릿하다. 그 옆에 있는 탁본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면 이곳 맹자생평사적진열은 현대적으로 잘 볼 수 있게 전시실을 꾸며 놓았다. 이곳 맹묘에 있는 전시물은 공묘에 있는 것보다 비록 오래되지 않았지만 깔끔하게 잘 보존되었고 보기좋게 전시했다. 이곳 전시관도 유학을 잘 모르는 사람도 알기 쉽게 중요한 대목을 도설해놓았다. 그림판에 있는 주요 내용을 아래에서와 같이 풀이한다. 아성전.. 2019. 6. 10.
맹묘 관람: 아성전 참배 맹묘(孟廟) 승성문(承聖門)을 지나자 맹묘의 중심 건물이며 맹자의 위패와 존영을 모신 아성전(亞聖殿)이 눈앞에 다가 왔다. 아성전(亞聖殿)은 대성전에 버금가는 궁전이다. 공묘에서는 공자의 위패와 존영을 모신 곳을 대성전이라고 하지만 이곳 맹묘에서는 대성전에 버금간다는 의미로 대성전 대신 아성전이라고 했다. 맹자는 공자에 버금가는 철학자요 사상가이지만 공자에는 못 미친다. 그럼에도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계승하여 꽃피운 대학자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공묘 대성전에는 학생들이 없었지만 이곳 맹묘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우리 일행이 이곳 아성전을 찾았을 때도 학생들이 단체로 교육을 받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참배를 바로 못하고 먼저 대성전 내부를 관람했다. 그후 학생들이 교육이 끝난 후 참배를 .. 2019. 6. 10.
맹묘(孟廟) 관람: 영성문(欞星門)에서 승성문(承聖門)까지 공자의 고향 취프에서 5월 30일 오전 8시 출발하여 맹자의 고향 추성시 맹묘(孟廟) 주차장에는 약간의 정체가 있어 예정보다 늦은 9시반에 도착했다. 곡부에서 무료입장을 했으나 이곳은 외국인 경노는 안되다고 한다. 입장권을 구입했다. 검표소를 통과하자 맹묘의 첫번째 문인 영성문(欞星門) 멀리 보였다. 취프에서 공묘, 공부, 공림을 모두 관람하고 이제 추성에서 맹묘와 맹부를 관람하면 중요 유교성지를 관람하게 된다. 아래는 맹묘에 관하여 검색한 내용이다. 【맹묘(孟庙)는 산동성 쩌우청시(邹城市, 추성시) 성 동북 13㎞ 거리의 쓰지산(四基山) 서남 기슭 맹가능묘(孟轲陵墓) 앞 맹자를 제사지내는 사당으로 아성묘(亚圣庙)라고도 불리며 송나라 경우(景佑) 4년(1037)년 건립되었다. 이 사당은 공자의 제45세손.. 2019. 6. 9.
취에리(曲阜厥里賓舍)호텔에서 만찬 여행은 눈으로 보는 경치뿐만 아니라 입으로 맛보고 즐기는 미식도 중요하다. 이번 여행에서 첫날 저녁은 지난시(濟南市)에서 유명한 취풍덕(聚豊德)에서 했고, 두번째 만찬은 취에리호텔(曲阜厥里賓舍)에서의 만찬이다. 오늘 만찬이 둘째 날 밤이다. 우리 일행이 여장을 푼 호텔은 공부(孔府) 바로 입구에 있으며, 단층의 전통기와집이다. 우선은 공묘와 공부가 가까워 좋고, 또한 고대유적과 잘 어울리는 호텔이다. 이 호텔 로비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강택민 중국주석이 다녀갔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호텔측에서 우리 일행을 분위가 좋은 방에 자리를 잡아 줬다. 연로하신 분이 많아 조금은 염려되었지만 공묘, 공부, 공림을 큰 탈이 없이 무사히 관람할 수 있었음도 다행이며 홀가분한 마음이다. 큰 두 테이블에 나눠 착석하자 .. 2019. 6. 9.
공자묘 친견(親見) 공자묘(孔子墓)를 접견하려면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일행은 만고장춘방(萬古長春坊)에서 신도(神道)를 지나 대림문(大林門)과 이림문(二林門)을 통과했고, 전통셔틀카를 타고 명대묘군으로 돌아 우씨방(于氏坊)을 지나 공자묘의 입구인 수수교방(洙水橋坊)에서 하차했다. 이 방 바로 앞에 수수천을 건너는 다리가 있다. 진시황제는 천하를 통일하고 정치적 비판을 막기 위하여 책을 불사르고 태우고 유림을 생매장을 했다(焚書坑儒). 그 때 생매장하기 위하여 땅(坑)을 판 곳이 이곳 수수하(洙水河)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수수교를 건너자 묘문(墓門)이 가까이 보인다. 수수교에서 묘문까지 길 양편에 많은 비석이 가로수가 있는 듯 도열해 있다. 묘문을 통과하자 양편으로 천년 향나무 고목이 늘어 서 있는 곧게 난 묘통도(墓.. 2019. 6. 8.
공림 관람: 만고장춘방(萬古長春坊)에서 우씨방(于氏坊)까지 일행은 공부 관람을 마치고 나와 공림(孔林)행 셔틀버스에 승차했다. 버스는 공부에서 공림까지 1km쯤 달려 일행을 만고장춘방(萬古長春坊) 입구에 도착했다. 도로 중앙은 보도가 있고 그 양쪽으로 관목(灌木)과 측백나무 고목이 연이어 있고, 관목화단 밖 양쪽에 도로가 있는 길이다. 중앙에 있는 길은 예전에는 대성지성선사공자신도(大成至聖先師孔子神道)라고 했다고 한다. 신도(神道)라 일반은 갈 수 없는 길이나 신도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없고 그 길을 다니지 못하게 하는 사람도 없다. 수 백년 된 측백나무 고목은 말없지만 방문객에게 역사의 숨결을 줬다. 다음 볼거리를 기대하며 일행은 만고장춘방(萬古長春坊)에 도착했다. 돌기둥 6개가 있고, 그 사이에 5개의 문이 있고, 그 위에는 돌 지붕의 거대한 석물이 있다. .. 2019. 6. 7.
공부(孔府) 관람 우리 일행은 공묘孔廟) 동문으로 나와 취에리호텔 옆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식당 이름이 우리 일행의 이름에 걸맞게 "유림찬청"이다. 일행은 점심 후 오후 1시 반에 공부(孔府) 정문으로 입장했다. 공부(孔府)는 공자 후손의 관청이며 자손들이 거주하는 저택이다. 공묘와는 담 하나 사이로 공묘 동문에서 나와 관광상품 가게를 지나면 바로 공묘 입구이다. 예전에는 연경공부(衍聖公府)라고 했고, 지금은 공부(孔府)라고 부르고 있다. 규모가 고궁에 버금가는 귀족 저택이다. 그 면적이 7만평방미터이고, 사당, 누각, 대청 등 건축물이 총 463칸이다. 공부(孔庙)가 보관하고 있는 문화제가 많은데, 그 중 제일 유명한 것은 “상주십기(商周十器)”이다. 원래는 궁전에서 보관 사용된 청동으로 만든 관혼상제 등 연회에서 사용.. 2019. 6. 6.
공묘 관람 후 잃어버린 사람을 찾다. 공묘 관람을 마치고 일행은 공부 근처 운전기사가 예약한 식당으로 갔다. 이 식당은 공부에서 100미터도 안되며 우리일행이 이날 밤 묵을 취에리호텔 옆에 있었다. 식당에 도착하여 인원파악을 해 보니 5사람이나 없었다. 나는 이분들을 찾으러 나섰다. 바로 한 분으로 전화가 왔으나 이곳 지리에 밝지 못하여 어느 지점인가 통화를 했지만 알기가 어려웠다. 이 분은 전화통화가 되니 걱정은 바로 찾을 수 없으나 걱정은 안되었다. 차후 찾겠다하고 나머지 네 사람을 찾아 공묘의 만인궁장 정문으로 갔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없었다. 그 때 전화가 걸려 왔다 끊어졌다. 다시 내가 전화를 하니 내가 찾는 행방 불명된 사람 중 한 분이었다. 다시 그 분과 통화하니 '셔틀버스에서 하차한 곳에 있다'고 했다. 약 5분을 걸어 하차.. 2019. 6. 4.
침전부터 동쪽 성문까지 관람 일행은 대성전에서 참배하고 기념촬영을 한 후 대성전 뒤에 있는 침전으로 이동했다. 침전은 대성전 뒤에는 당송대에 지은 공자부인 제사를 위한 궁전이다. 침전 안 가운데에 공자부인의 위패가 감실 안에 모셔져 있다. 위패에 "至聖先師夫人神位"라고 썼다. 위패는 우리나라에서와 달리 함(櫝)으로 씌우지 않고 노출된 상태다. 공묘에는 중로(中路), 동로(東路), 서로(西路)가 있으며, 중요 건물은 중로에 배채해 놓았다. 중로의 맨끝 건물이 성적전(聖跡殿)이다. 일행은 성적도를 관람하고 동쪽 동로에 위치한 토지신 제사를 올리는 후토사(后土祠), 공자의 후손의 사당인 가묘(家廟)를 지나 옛 우물인 고정(故井), 해자(垓字)를 지나 공묘의 관람을 마치고 동쪽 성문으로 나왔다. 성문부터 북쪽으로 관광상품을 판매하는 많은 .. 2019. 6. 4.
공묘 대성전 답사 공묘 대성전이다. 대성문을 지나자 대성전이 시야에 들어왔다. 중국 궁전건축물 중에서 자금성 태화전, 대묘의 천황전과 함께 중국의 3대 고건축물로 알려졌다. 비록 공자가 황제는 아니지만 황제가 거주하는 양식으로 지었다. 기와의 색깔도 자금성과 같은 황색이다. 높이와 폭이 균형이 잘 잡혀 안정된 모습이다. 대성전은 공묘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가로 54m, 세로 34m, 높이는 32m에 이른다. 28개의 장식된 기둥으로 받쳐져 있고, 각각 6m의 높이와 0.8m의 직경이다. 궁전 정면의 10개의 기둥은 휘몰아 감기는 용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러한 기둥은 황제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황제에 질투심을 일으키지 않도록 덮개를 걸 수 있었다고 한다. 대성전 안으로 입장은 금지라 문밖에서 살펴 볼 수 있었다. 우.. 2019.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