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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킴(지정 미지정)113

유서 깊은 향미정(杭眉亭) 향미정은 1831년 화성유수 였던 박기수가 서호저수지 제방 끝에 세운 정자다. 항미정(杭眉亭)의 항미(杭眉)는 소동파가 중국 항조의 서쪽에 있는 서호(西湖)를 미목(眉目) 같다고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항(杭)은 항주에서 따왔고, 미목에서 眉자를 따온 것이다. 모처럼만에 수원에 눈이 와 향미정도 설경을 보여주고 있다. 늘 서호공원 둘레길 돌기가 평소 나의 운동이지만 그냥 지나치기만했는데 오늘은 구석 구석을 살펴 보았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현판이 새로 걸렸다. 예전에 아주 작은 간판이 걸려 건물 격에 맞지 않았는데 이번 새로 걸은 현판은 큼직하고 글씨도 명필로 품격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 내용에 "순조 황제가 1908년 10월 2일 이곳에서 차를 마셨다는 유서 깊은 곳이라는 내용이 눈에 띠었다. 본 .. 2021. 2. 5.
수원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수원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는 고려말 승려 진각국사(眞覺國師) 천희(천희, 1307-1392)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탑비이다. 이 탑비는 보물 제14호다. 그는 57세에 원나라에 2년간 선종을 공부하고 돌아와 국사에 봉해졌다. 국사(國師)란 나라의 스승으로 훌륭한 인물만이 받을 수 있는 직위이다. 진각(眞覺)은 "진실로 깨닮음"이란 뜻이다. 광교산 창성사에서 입적했다. 이 비석 글은 당대 최고의 인물인 이색이 지었다. 창성사지는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다. 창성사지 절터에 방치되었던 이 비를 방화수류정 옆 수원상업고등학고 입구로 이건했다. 비석을 보호각이 감싸고 있어 비 전체를 촬영이 어려워 휴대폰 카메라로 보호각 창살 안으로 집어 넣어 겨우 촬영했다. 2020. 9. 11.
서울대학교 농과대학교 자취를 찾아보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은 2003년 서울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고 지금은 일부는 창업센터로 활용하고 대부분은 사용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은 수원의 자랑이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서울대학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수원고등농림학교는 우리나라 최고의 수재들이 모이는 학교였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의 전신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1904년까지 올라간다. 1904년 농상공학교 1906년 농림학교 1907년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전 1910년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 부속 농림학교 1918년 수원농림전문학교(3년제) 1922년 수원고등농림학교 1944년 수원농림전문학교 1946년 수원농림전문학교에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으로 명칭 변경 1992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서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으로 2003.. 2019. 3. 26.
수원시립 중앙도서관 수원시립중앙도서관은 수원시 팔달구 팔달산로 318 팔달산 남쪽 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통상 중앙도서관이라고도 부른다. 중앙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 도서관을 중앙일보와 지금의 JTBC의 전신인 TBC에서 건설하여 수원시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이 도서관은 1980년 7월 2일 개관했다. 본래 이 도서관 자리는 수원향교 부지의 일부였다. 이 도서관 아래는 수원향교가 있다. 지금은 수원시에 선경도서관을 비롯한 16개의 도서관이 있지만 그 중에서 1970년 개관한 경기도도립중앙도서관 다음으로 오래된 도서관이다. 오래 된 도서관 답게 장서는 많은 편이다. 1층에는 장서 열람할 수 있고, 책을 볼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있다. 2층에는 큰 공부방과 작은 공부방이 있고, 컴퓨터실이 있고, 작은 식사 장소 겸 휴게.. 2019. 3. 13.
일본 신사가 세웠던 자리에 세운 수원시민회관 건물 「수원시민회관」은 팔달산 아래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 28(매산로 3가)에 팔달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1971년 4월 12일 준공하였으며, 부지면적 7,826㎡, 총면적 3,147㎡의 지하 1층·지상 3층 건물로, 시민들을 위한 문화 예술 공연·강연회·학술 연구회 등과 각종 행사가 열린다. 무대를 갖춘 대강당(대공연장)의 총면적은 606㎡, 객석 규모는 총 457석(1층 372석·2층 86석)이고, 중회의실(80석)과 소회의실을 갖추고 있다. 1995년부터 수원문화원에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다. 수원생활문화센터도 이곳에 들어 와 있다. 일제는 이곳에 일본을 상징하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수원신사(水原神社)를 세웠다. 일제 패망하고 나서 신사는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1971년 이 건물을 세웠다. 본 .. 2019. 3. 13.
수원 대한민국독립기념비 팔달산에는 화성이 있고, 그 외에 정조대왕 동상, 3.1독립운동기념탑, 대한민국독립기념비 등이 있다. 이 중 대한민국독립기념비는 대한민국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해방 후 3년이 지난 1948년 8월 15일 수원읍민과 수원군내 학생이 세운 비석이다. 당시에 수원군에는 지금의 수원시, 화성시, 오산시가 포함된다. 당시에는 수원은 수원읍이었다. 이 비석은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산 23-1 동북공심동 건너편 동공원에 세웠으나 1969년 10월 15일 팔달산 서남암문 앞 3.1독립운동기념탑 옆으로 두 탑이 함께 이건했다. 2019. 3. 3.
수원 3.1독립운동기념탑 3.1운동 100주년의 열기가 식지 않은 3월 3일 오후 팔달산에 올라 3.1운동기념탑을 보았다. 수원에서 3.1운동은 전국의 어느 도시 못지 않게 뜨거웠지 않나 생각된다. 당시 수원은 수원군이라고 했고, 수원군에는 지금의 수원시, 화성시, 오산시가 포함된다. 수원에서 만세운동은 방화수류정에서 출발하여 행궁까지 만세행군이 있었고, 발안지역에서 만세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일제에 항거한 순국한 애국지사를 비롯한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고자 1969년 3월 1일 삼일중학교 뒷산인 중포산에 세웠던 것을 그 해 10월 15일 팔달산 서남암문 옆으로 이건했다. 당초 이 탑이 세웠던 중포산 그 자리는 수원경찰서 사범계 주임 노구찌 소위의 순국기념비가 있었던 자리이다. 일본 경찰의 순국비를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이 탑.. 2019. 3. 3.
수원 매산초등학교 방문 매산초등학교 전통어린이 연희단이 지난 10월 7일 수원화성문화제 행사 중 2018정조능행차 본 행진에 앞서 펼처진 2018조선백성환희마당 퍼레이드에서 11번째로 참가하여 장안문 앞에서 공연을 했다. 나는 장안문을 배경으로 이 어린이 연희단의 공연 장면을 사진을 촬영했다. 이들 어린이들의 공연이 너무 멋졌고, 내가 찍은 사진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사진이라서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까워 오늘 10월 10일 매산초등학교를 찾아 갔다. 안무 담당 선생님은 수업 중이라 만나지 못하고 교무실에서 다른 선생님에게 그 선생님에게 전해드리라고 UBS에 가지고 온 사진 26장을 드렸다. 매산초등학교는 1906년에 개교하였으며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 팔달산 아래 경기도청 동남쪽에 있다. 매산초교를 나오기 전에 학교의 모습.. 2018. 10. 10.
수원 팔달산에 홍난파 노래비 수원 팔달문(남무)에서 성곽을 따라 팔달산에 오르는 중턱에 홍난파의 '고향의봄' 노래비가 있다. 홍난파(1898-1941)는 본명이 홍성우이고, 난파는 호이다. 그는 1898년 남양군 둔지곶면 활초동(현 화성시 남양읍 활초리)에서 태어나 그 다음 해 서울로 이사 갔다. 그가 태어난 곳은 당시에는 남양군이었고, 그 후 수원군으로 변했고, 지금은 화성시에 속한다. 이 노래비를 세울 때는 남양 활초리가 수원시에 속해 있어 수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팔달산에 노래비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가 살았던 서울 종로구 송파동 집은 등록문화재로 제90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아담한 노래비이다. 꽃 문양 둘레 속에 동판으로 홍난파의 인물조각을 넣었다. 50년 전 조각품으로 우수하다. 그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2018. 4. 16.
축만제(서호) 제방에 세운 '전 주사 박문회 송덕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 서호는 지금은 공원이지만 예전에는 우리나라 농업의 산실인 농촌진흥청 농사시험 연구에 사용하는 물을 대는 저수지였다. 남쪽으로 저수지 제방이 있다. 제방의 동쪽 끝에 물을 빼는 옛 수문이 저수지 안쪽에 있고, 다른 하나의 수문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제방 끝 매몰된 곳에 있다. 물을 정화시키는 큰 건물 동쪽에 있고, 이 건물 동쪽에 철조망으로 둘러 싸인 "서호지(西湖池)"라는 작은 건물이 있고, 그 앞에 비석 하나가 있다. 비문은 아래와 같다. 破坰改築 屯民安堵 前主事 朴文會 頌德碑 廢壓復完 公稅適當 이 비문은 전 주사인 박문회라는 분을 칭송하는 송덕비이다. 제방이 파괴되자 새로 쌓았다 破坰改築(파경개축)이 있고, 수압이 있어 제방이 무너지는 위기가 있었으나 복원했다 廢壓復完(폐압복원.. 2018.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