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서호공원 둘레길 한 바퀴 돌고나서 여기산 뒤를 지나 일월저수지에 도착해서 이 저수지 둘레길을 한바퀴 돌았다. 이제 입춘도 지나 날씨는 많이 풀렸다. 엊그제 내린 눈이 녹아 땅은 질척거리는 곳도 있었지만 걷기에 크게 장애는 되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라 산책하는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서호공원에 비하면 아주 적었다.
길 좌측편(동편)으로는 수목원 조성공사하면서 하얀 담이 둘러처 있었다. 이 수목원 2022년 완공예정으로 앞으로 완공이 되면 저수지에서 수목원 공원이 되면 더 좋은 시민의 휴식처가 될 거라 기대된다. 저수지 물 속으로 한가롭게 헤엄치는 흰빰검둥오리, 물닦 등 철새를 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걷는다. 북쪽 주차장을 지나자 땅이 좀 질었으나 별 개의치 않고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저수지 둘레길이 끝나는 지점에 저수지 물을 흘려보내는 취수탑에 글씨가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클 글씨로 "貯水灌田"와 그 옆에 작은 글씨로 "昭和十五年 六月 乾 重二" 글씨가 보였다. 貯水灌田(저수관전)은 "저장한 물을 논에 관수한다"라는 뜻이고 昭和는 일본 국왕 연호이다. 소화15년은 서기 1940년이된다. 乾 重二는 일본 사람 이름이다. 그는 아마 이 저수지 조성 공사를 맡은 책임자로 생각된다. 이 저수지는 일제강점기인 1941년에 완공되었다. 아마 완공 전 수문은 1940년에 만든 것 같다.
우리나라 땅에 다른 나라 사람 이름이 새긴 것을 보니 아픈 우리 역사가 떠 올랐다. 일제강점기 36년은 우리 오천년 역사 중에서 일제의 침략에 무참 밟힌 가장 치욕의 역사였다. 그들이 새겨 놓은 치적은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 있다. 지워버리고 싶은 일제의 상처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국력은 빠르게 성장하여 지금은 일본과 견줄 정도에 이르렀으니 그 때의 치욕을 반면교사로 삼아 더 잘 사는 나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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