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대 농업연구는 홍영식(洪英植)이 미국 시찰 결과를 보고하면서 설치를 건의한 바, 고종의 토지 하사와 재정 지원으로 적전(籍田)이 위치한 서울 망우리에 농무목축시험장이 1883년 12월 20일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다. 1884년 봄 보빙사 일행이 미국에 체재할 때 주문한 농기구가 시험장에 도착해 미국 농무성으로부터 가져온 각종 작물·야채·과수 등 344종(재래종 포함)을 재배하였다. 왕실에서 관리하던 것으로 종목국(種牧局)으로 개칭하여 내무부(內務部) 농무사(農務司)에 속하게 되면서 흐지부지 되었으나 시험장은 1906년까지 존속되었으나 거의 방치되었다.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1906년 6월 15일 경기도 수원시 서둔동에 조선총독부 아래에 권업모법장을 설치했다. 권업모범장의 처음 설립한 곳은 출토한 표지석 위치로 보아 지금 답작(논농사) 포장이 있는 곳으로 보인다. 일제가 농업연구기관을 수원에 처음 설치한 이유는 수원은 서울에서 가깝고 축만제가 있어 수리시설이 있는 곳이라서라고 생각된다.
권업모범장은 1929년 농사시험장, 1944년 농업시험장, 1946년 미군정청 중앙농사시험장, 1949년 중앙농업기술원, 1957년 농사원, 1962년 지금의 농촌진흥청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위치는 1906년부터 2014년까지 108년간 수원시 서둔동 축만제 근처에 있었으나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에 따라 2014년 전주로 이전했다.
농촌진흥청 수원 서둔동 시대에는 그 산하에 국립농업과학원, 국립식량작물과학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립축산과학원이 있으며, 이 중 농촌진흥청 본청을 포함 국립농업과학원과 국립식량과학원은 서둔동에 위치했었다. 국립농업과학원에서는 토양, 식물생리, 농업기상, 병해충(식물보홈), 농약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고, 국립식량과학원은 벼, 보리, 콩, 밀, 옥수수, 고구마 등 작물의 우량 품종 육성, 재배법 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 농업연구기관은 보리고개가 있던 시절 통일벼를 육성하여 우리 국민을 배고품으로 해방시키는데 큰 역활을 하였고, 그 후에도 맛 좋은 우량 품종 육성하고 재배 기술를 확립하여 농업 발전에 기여한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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