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공원은 정조가 수원화성을 축성했던 1794년 심한 가뭄이 들어 공사를 중단하고 수원 북쪽에 저수지와 그 아래 황무지를 개간하여 대유평을 1796년 완공했고 만석거(萬石渠)라고 불렀다. 원래 만석거라고 불렀으나 그 후 일왕저수지 또는 조개정방죽이라고 불렀으나 지난해 명칭이 원래 이름인 만석거라고 공식명칭이 변경되었다.
나는 이곳 이 저수지 북쪽 송죽동에서 1979년 1994년까지 살았다. 나의 두 아들에게는 이곳이 어린 시적을 보냈다. 이 동내로 이사 왔을 당시에는 백조아파트도 없었고, 단층 가옥 20여채가 있었고 가게라고는 3개가 있었던 시골마을이었다. 경수산업도로가 건설되기 이전으로 1번 국도로 버스가 동네 앞으로 지났다.
오늘 산책코스로 만석공원로 정하고 연초제조창을 지나 정자시장을 통과하여 40분만에 만석공원에 도착했다. 다시 찾아 옛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처음 이곳에 이사 왔을 때 이 저수지 제방에는 수 많은 낚시꾼들이 있었다. 오늘 다시 그 제방을 보니 그 때 보았던 석축은 그대로 있었다. 제방이 끝나는 곳에 수문도 그대로 있었다. 예전에는 수문이 있고 그 아래에 큰 나무 울타리가 있던 외딴집이 하나 있었고, 그 집 울타리에 만석거(萬石渠) 표지석이 있었 지금은 어디 갔나 보이지 않았다. 그 때 있었던 집도 없었고, 입석하나가 있어 읽어보니, 그 집이 진목정(眞木亭)이라고 했다. 수원유수로 부임하는 유수가 이곳 진목정에서 거북모양의 관인을 맞춰본 후 인수 인계했던 곳이라고 했다. 만석거는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저수지 면적은 좁히고 시민이 휴식할 수 있는 공원과 체육시설을 많이 만들었다.
송죽초등학교에서 파장동 삼풍농원까지 구도로 1번국도에 1979년까지는 노송이 있었다. 그래서 이 길을 노송지대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 있었던 소나무는 하나 없고 새로 심은 소나무가 있었다.
수원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병희 전 의원이며 무임소장관의 동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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