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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향교/수원향교 안내38

유림회관(儒林會館)과 사무처(事務處) 건물 자. 유림회관(儒林會館)과 사무처(事務處) 건물 (1)유림회관 유림회관은 수원향교 유림의 활동을 강화하여 수원향교 대성전 옆에 1993년 신축한 지하 1층 지상 4층 벽돌 철근 슬래브 라면조 총 건평 525평 건물이다. 이 건물은 1996년 2월 임원회의 결의를 거쳐 유림회관을 신축하기로 하고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소재 대지 1,089평을 매각하여 본 회관을 건축했다. 총공사비 9억 5천만 원이 들었다. 공사비 조달은 대지 매각대금 7억 원과 도비 보조 5천만 원, 수원 시비 보조 5천만 원, 기타 수입 1억 5천만 원이다. 건립면적은 지하대피소 38.18평, 1층 124.9평, 2, 3, 4층 각각 120.0평으로 연 면적 525평이다. 현재 교육장, 회의실, 전통예식장, 식당, 피로연장 등으로 사용하.. 2021. 10. 24.
묘정비(廟庭碑), 중수기념비(重修紀念碑), 공적비(功績碑) 아. 묘정비(廟庭碑), 중수기념비(重修紀念碑), 공적비(功績碑) 수원향교에는 향교의 내력을 기록한 묘정비(廟庭碑)가 외삼문 밖에 있다. 묘(廟)는 선조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을 말한다. 이 비는 1998년 10월 7일 유림총회의결의 하에 건립했다. 최근덕 성균관장이 근찬(謹撰)했고, 김선병 수원향교 전교가 근서(謹書)했다. 이 비는 도의(道義) 천명과 더불어 전통문화 계승 발전에 기여하고 윤리 도덕을 순화시키고, 미래 사회의 도덕 문화에 새로운 장을 열고자 세웠다. 묘정비 옆에 인송(仁松) 설경동(薛卿東) 향교중수기념비가 있다. 인송 설동경 선생은 6.25사변으로 훼손된 향교 건물을 앞장서 중수한 공적이 있다. 그는 설경동은 대한방적주식회사, 대동증권, 대한전선, 대한제당 등을 창업하고 그 사장.. 2021. 10. 24.
하마비(下馬碑)와 홍살문(紅箭門) 사. 하마비(下馬碑)와 홍살문(紅箭門) 대소인원하마비(大小人員下馬碑)는 조선 왕조시대에 누구든지 이곳을 지날 때 말에서 내리라는 뜻으로 새긴 비석이다. 수원향교는 공자를 모신 사당으로 하마비가 있으며, 그 위치는 홍살문 밑 앞쪽에 있다. 정조도 수원향교에 오실 때 하마비에 이르자 말에서 내려 수레에 올라 향교로 들어가셨다. 말에서 내림은 공자님에 대한 하나의 예의 표시이다. 홍살문(紅箭門)은 능(陵)·원(園)·묘(廟)·궁전·관아 등의 정면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문이다. 홍살문은 ‘붉은 화살 문’이라는 뜻으로 홍전문(紅箭門), 홍문(紅門)이라고도 한다. 둥근 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이 없이 화살 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 놓았고, 그 중간에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다. 하마비와 홍살문이 위치한 .. 2021. 10. 24.
외삼문(外三門)과 내삼문(內三門) 바. 외삼문(外三門)과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은 홍살문에서 대성전의 정면에 세운 솟을대문으로 향교의 정문이다. 문은 3문으로 구성되었으며, 가운데 문(中門)은 신(神)이 다니는 문이고, 우측 문은 들어갈 때 사용하는 문이고, 좌측 문은 나올 때 사용하는 문이다. 외삼문은 평소에는 닫아 놓고, 제례를 봉행할 때 열어 놓는다. 내삼문(內三門)은 강학 공간인 명륜당 일원과 제향 공간인 대성전 일원과 사이에 있는 문으로 명륜당 뒤편에서 북향으로 층계 위에 있는 세운 문이다. 이 문에 들어가면 바로 대성전이 나타난다. 이 문도 3문이며 솟을대문이다. 3문의 역할은 외삼문과 같다. 외삼문과 내삼문은 균형미를 잘 갖추고 있다. 같은 점은 두 건물 다 같이 태극 문양이 있다. 차이점은 외삼문은 기둥이 원형이고.. 2021. 10. 24.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마.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는 명륜당의 좌우에 있는 건물로 유생들의 기숙사로 이용되던 건물이다. 동재는 양반 자재의 기숙사이고, 서재는 평민 자재의 기숙사로 알려졌다. 이 두 건물은 1789년 구읍치에서 현재의 자리로 이건할 때 명륜당과 함께 이건했다. 그러나 언제 화재로 소실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오랫동안 부재했던 서재를 1989년 5월 시도비와 자비로 중수했고, 동재는 1990년 6월 2일 화재로 소실되어 시도비와 자부담으로 복원했다. 현재 동재는 주로 제의 보관과 옷을 갈아 입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으며, 예절 교육 실습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서재는 교육 강의 관련 자재 보관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두 건물은 근래 건축물이며 기둥도 사각형으로 고건축물이며 기둥이 원형.. 2021. 10. 24.
옛 수원읍치에서 이건(移建)한 명륜당(明倫堂) 라. 옛 수원읍치에서 이건(移建)한 명륜당(明倫堂) 명륜당(明倫堂)은 유생들이 공부하는 강당이다. 수원향교 명륜당은 지금의 장소로 이건하기 전 구읍치 도고산 아래에 있던 오래된 건물이다. 이경원(李慶遠)의 “명륜당 중수기”에 의하면 1660년 수원부의 서쪽에서 도고산 아래로 향교를 이건하였을 때 명륜당의 기초공사가 견고하지 못하여 점차 축대가 무너지고 지붕과 기둥이 허물어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1725년(영조1) 수원부사로 부임한 김려가 자신의 녹봉과 쌀 10말을 희사하여 공사비를 마련하였으나 곧 벼슬이 갈림에 따라 공사를 수행하지 못했다. 그 뒤 후임으로 부임한 부사 조정만이 유대재 등 향교 유생들과 뜻을 모으고 돈 수백 꾸러미와 쌀 10 여 섬을 마련하여 1726년(영조2) 9월 공사를 시작하여 다음.. 2021. 10. 24.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다. 동무와 서무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는 대성전에 들어가지 못한 유현(儒賢)의 위패를 모신 건물로 대성전의 단하에 동서 양측에 있는 건물이다. 본래 1945년까지 이 건물에는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셨으나, 그 후 대성전에 봉안했던 중국 유현의 위패를 매안(埋安: 땅에 묻음)하고 그 자리에 우리나라 선현의 위패를 이안(移安: 옮겨 모심)했다. 이곳은 지금은 제기 등을 보관하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비가 올 때 이곳에서 참례자가 서립하여 제례 봉행하는 장소로도 이용하기도 한다. 이 건물은 정조의 어명에 의하여 대성전을 건축할 때 함께 건축한 3칸 맞배지붕 건물로 비록 건물의 규모는 작지만, 대성전과 같이 품격이 높은 아름답다. 지난해 (2020년) 새로 단장해 산뜻한 모습이다. 2021. 10. 24.
국가보물로 지정된 대성전 나. 국가 보물로 지정된 대성전(a shrine of Confucius) 대성전은 성현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수원향교 대성전은 1795년 윤2월 11일 을묘년 정조가 행차하여 참배한 후 어명에 따라 20칸 규모로 다시 지어졌는데, 대성전의 원형을 알 수 있는 자료가 『화성성역의궤』, 『원행을묘정리의궤』 등의 문헌에서 자세히 전해지고 있다. 수원향교 대성전의 규모는 서울 문묘(성균관), 나주향교, 상주향교, 제주향교, 대정향교와 함께 현존하는 조선 시대 향교 대성전 중에서 손꼽히는 큰 규모이며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경기도 내 향교 대성전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수원향교 대성전은 대지 조성부터 기단, 목조 가구 구성, 지붕, 세부 의장에 이르기까지 전국단위에서 동원된 .. 2021. 10. 24.
수원향교 건물 전체 배치도 4. 수원향교의 건물 향교 건물은 양질의 재료로 솜씨 좋게 가공하여 완성한 국가 보물이라 조선 시대 향교 건축물 중 보기 드물게 훌륭하네 공자의 고향으로부터 기증받은 공사상 힘이 아니라 인(仁)으로 세상을 다스리라 말씀 하셨네 가. 수원향교 전체 건물 배치도 수원향교는 수원 도심인 팔달산 남쪽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07-9에 있다. 맨 위에는 대성전이 있고, 대성전 좌우에 동무와 서무가 있다. 동무는 서향하고, 서무는 동향해 있다. 명륜당은 대성전 아래에 있으며 그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있다. 동재는 서향으로, 서재는 동향하여 있다. 명륜당은 동서재 사이에 남향으로 있다. 명륜당 아래에 뜰이 있다. 명륜당과 대성전 사이 중앙에 내삼문이 있고, 명륜당 앞 중앙에 외삼문이 있다. 명륜당을 중심으로 담.. 2021. 10. 24.
사람을 찾아서(수원향교 인물) 3. 사람을 찾아서 향교의 조직은? 향교 유생 중 높은 벼슬에 오른 인물은? 향교 발전에 큰 공로자는? 가. 향교 조직 조선시대 수원향교의 임원 조직은 도유사 1명, 유사 1명, 장의 2명, 색장 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도유사는 지금의 전교와 같은 것으로 향교에서 직접 선출하였다. 유사와 장의는 학교 운영에 관련 업무를 주관하였으며 도유사가 직접 임명했다. 색장 1명은 직접 선출했다. 임원 자격으로 순암 안정복에 따르면 도유사는 덕망이 뛰어나고 재주와 도량을 겸비한 사람, 장의는 생원과 진사 중에서 1명과 유학 1인으로 하되 문벌 가운데 인망이 있는 사람, 색장 2인은 나이가 적고 지체와 인망을 겸비한 사람으로 자격을 규정하고 있다. 조선 시대까지 도유사 체제였으나 일제에 의해 1907년 향교직원(鄕.. 2021.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