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원향교/수원향교 안내

사람을 찾아서(수원향교 인물)

by 仲林堂 김용헌 2021. 10. 24.

3. 사람을 찾아서

 

향교의 조직은?

향교 유생 중 높은 벼슬에 오른 인물은?

향교 발전에 큰 공로자는?

 

 

. 향교 조직

조선시대 수원향교의 임원 조직은 도유사 1, 유사 1, 장의 2, 색장 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도유사는 지금의 전교와 같은 것으로 향교에서 직접 선출하였다. 유사와 장의는 학교 운영에 관련 업무를 주관하였으며 도유사가 직접 임명했다. 색장 1명은 직접 선출했다.

 

임원 자격으로 순암 안정복에 따르면 도유사는 덕망이 뛰어나고 재주와 도량을 겸비한 사람, 장의는 생원과 진사 중에서 1명과 유학 1인으로 하되 문벌 가운데 인망이 있는 사람, 색장 2인은 나이가 적고 지체와 인망을 겸비한 사람으로 자격을 규정하고 있다.

 

조선 시대까지 도유사 체제였으나 일제에 의해 1907년 향교직원(鄕校直員) 체재로, 1911년 문묘직원(文廟直員) 체재로 바뀌었다가 1948년 성균관 직제 변화에 따라 향교전교(鄕校典校) 체제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김자운이 쓴 수원 e-book>역사자료>문화자료. 수원시사16이곳에 가면 수원의 역사가 보인다.”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수원향교의 고문서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조선 시대 수원향교의 실질적인 주도한 사람들을 알 수 없다. 1910년에 수원향교 직원으로 선출된 사람은 윤태익(尹泰翊), 1938년의 장의는 김헌주(金憲周), 이창복(李昶馥), 홍종후(洪宗厚), 박용기(朴容基), 정리섭(鄭理燮), 조재승(趙載承) 10인이었다.

 

지금의 수원향교 임원과 정원은 대표인 전교 1, 부전교 1, 감사 2, 장의 100, 감사 2, 습의장의 30인이 있다. 현재 임원은 전교 1, 장의 70, 감사 2인이 있다. 장의 중에서 총무, 의전, 재정, 교화, 연락, 섭외 부서를 두고 각 부서에 1명의 수석장의가 있다. 그리고 사무국에 사무국장과 직원 1명을 두고 있다.

 

향교의 중요 시책 수행을 자문하기 위하여 원로회의를 두고 있다. 원로회의는 원로위원으로 구성하고 있다. 원로위원회는 전교를 포함하여 30인 이내로 구성하고 있다.

 

임원은 아니지만 부설 조직으로 명륜대학을 1990년부터 개설하여 임기 1년 과정으로 80명 정원의 교육생이 있고, 명륜대학교 부설학원으로 한문반 70, 서예반 40, 한글반 40, 한시반 30, 다도교실 30명의 학생이 있다. 수원향교 관련 동호인 모임으로 한시 모임인 화홍한시회(華虹漢詩會)’ 회원 15명이 있다. 그 외 경전 스더디 그룹인 문진회(問津會), 경전윤독회(經典輪讀會) 등이 있다.

 

 

. 수원향교 출신 고위 인물

 

조선시대 향교의 역할은 첫째 성현(聖賢)에 제향(祭香)하고, 그들의 가르침에 따르며 본받자 함이고, 다음으로는 국가 교육기관으로 지방 교육을 통하여 인재를 양성함에 있었다. 향교 교육은 사서삼경, 근사록, 삼강행실록 등 주로 과거시험 과목을 배웠고, 우수한 유림은 성균관으로 올라가거나 직접 과거에 응시하여 관직에 등용되었다. 이처럼 향교는 과거시험을 공부하는 통로로 많은 우수 인재들이 몰렸다.

 

관찰사는 도내에서 우수한 유생을 뽑아 매년 6월 도회소(都會所)를 열고 문관 3명을 보내어 강론과 저술로서 시험을 보아 성적이 좋은 자는 생원과 진사 복시에 응실 할 자격을 주었다.

 

수원향교지(水原鄕校誌)에 수원향교 출신으로 벼슬을 한 사람의 목록인 증경록(曾經錄)에 진사나 생원 이상의 벼슬한 사람의 목록이 있다. 이 증경록은 언제부터 기록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제2대 수원향교 도유사를 역임한 박제당(朴齊堂)은 박영효(朴泳孝, 18611939)의 조부라는 점으로 볼 때 1800년 무렵부터로 보인다.

 

이 증경록에 문과에 등과(登科) 한 사람은 엄석정(嚴錫鼎), 홍필모(洪弼謨), 박태환(朴台煥), 박장환(朴璋煥) 4인이고, 이 중 박태환은 알성문과에 합격했다. 등과 기록은 없지만 높은 관직에 오른 사람은 현감에 이학우(李學愚), 참봉군수에 윤수연(尹守淵), 목사에 조연호(趙然浩), 수원판관에 정교(鄭喬) 등이 있다.

 

향교를 관리하는 최고책임자를 지금은 전교(典校)지만 조선 시대에는 도유사(都有司) 또는 직원(直員)이라고 칭했다. 수원향교지에 기록된 초대 도유사는 이운상(李運翔)이었고, 2대 도유사는 박제당(朴齊堂)이었고, 그 후에 23대 유택희 도유사가 1897년 마지막으로 역임하고, 그다음에는 직원에 이용규(李容奎)가 부임하고 그 후 직원으로 4대 이필상(李弼商)까지 마감하고, 그 후부터는 지금까지 전교로 임명되고 있다.

 

도유사 중에서 높은 관직에 오른 분은 공조판서에 박원양(朴元陽), 도정(都正, 3)에 김기준(金箕俊), 최덕준(崔悳峻), 윤수룡(尹守龍)이었고, 본부 판관에 정기명(鄭基命)이 있다. 이 중 11대 도유사 박원양은 아버지가 제2대 도유사인 박제당이고, 그의 아들이 친일파로 알려진 박영효(朴泳孝)이다.

 

. 향교발전에 큰 공로가 큰 인물

수원향교지포상록에 있는 공로 또는 감사패를 받은 분 중에서 여러 사람의 본보기가 될만한 훌륭한 분을 선정했다. 선정 기간은 1983816일부터 20001120일까지이다. 다음은 포상록에 있는 그분들의 공적 사항이다.

 

이서운.1983. 8. 26. 공로패 수상. 향교 수호인으로서 40년을 한결같이 책무를 다했으며 특히 6.25 사변 중에도 교궁과 제기물을 잘 보조 유지한 공이 지대함

 

정일환. 1984. 1. 6. 감사패 수상. 경기도향교재단 이사장과 향교전교를 20여 년간 재임하면서 유교진흥과 교궁의 보수와 유림회관의 신축, 조경 그리고 예절교육 등에 공이 지대함.

 

조백겸. 1984. 9. 22. 감사패 수상. 19843월 수원 세무서장으로 부임하자 향교를 방문 분향 헌작하는 한편 매월 삭망에 헌주를 계속 보내오는 등 유림상 정립에 본보기가 됨

 

대한그룹회장 설원식. 1988. 8. 16. 감사패 수상. 유문의 후예로서 유교 사상이 남달리 투철하여 수원향교 운영과 발전에 물심양면으로 적극적으로 협조한바 그 공적이 지대함. 그의 부친인 설경동 향교 중수 기념비가 수원향교외삼문앞에 있다. 그는 1천만 원을 1988322일 공적비재건과 교지 찬조금으로 희사했다.

 

이천우. 1989. 5. 17. 공로패 수상. 유학 가문의 후예로서 모성준현의 정신이 출중하여 수원향교지의 주필로서 향교 발전에 이바지한 공이 지대함.

 

김득중. 2000. 11. 20. 감사패 수상. 묘성존현하는 정신이 현저하며 수원향교에서 1990년부터 명륜대학에서 10년간 교육을 하여 향교 발전에 공헌한 바가 지대함.

 

. 역대 도유사(都有司) 직원(直員) 전교(典校)

직명 성명 본관 관직 임명일 직명 성명 본관 관직 임명일
도유사 李運翔 여주 진사
도유사 沈宜允 청송 감역
도유사 朴齊堂 반남

도유사 柳宅熙 전주 도유사 1897.
도유사 李能彬 덕수

직원 李容奎 여주 직원 1915. 11.
도유사 李容達 여주 생원
직원 朴晦陽 반남 직원 1926. 3.
도유사 尹致咸 해평

직원 尹泰重 파평 직원 1936. 4.
도유사 金應商 경주

직원 李弼商 여주 직원 1940. 5.
도유사 朴宗赫 반남

전교 李昌根 우계 전교 1956.
도유사 金箕俊 광산 도정
전교 李在信 용인 전교 1958.
도유사 李容達 여주

전교 鄭一煥 동래 전교 1964. 4.
도유사 尹日懋 파평

전교 李千雨 경주 전교 1980. 12.
도유사 朴元陽 반남 참판
전교 李秉奎 신평 전교 1990. 9. 14
도유사 鄭基命 동래 본부판관
전교 李永秀 전주 전교 1992. 9. 14.
도유사 李容元 여주

전교 金善炳 김해 전교 1996. 9. 14.
도유사 元世胤 원주

전교 申源植 고령 전교 2002.
도유사 李陽翼 연안 진사감역
전교 鄭龍敎 영일 전교 2004.
도유사 徐敦淳 달성 진사
전교 慶度浩 청주 전교 2006.
도유사 崔悳峻 전주 진사도정
전교 崔麟寧 삭녕 전교 2010.
도유사 鄭基億 동래 진사
전교 朴源俊 밀양 전교 2014.
도유사 尹守龍 파평 도정
전교 宋仲燮 여산 전교 202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