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지킴(지정 미지정)138 수원 대한민국독립기념비 팔달산에는 화성이 있고, 그 외에 정조대왕 동상, 3.1독립운동기념탑, 대한민국독립기념비 등이 있다. 이 중 대한민국독립기념비는 대한민국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해방 후 3년이 지난 1948년 8월 15일 수원읍민과 수원군내 학생이 세운 비석이다. 당시에 수원군에는 지금의 수원시, 화성시, 오산시가 포함된다. 당시에는 수원은 수원읍이었다. 이 비석은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산 23-1 동북공심동 건너편 동공원에 세웠으나 1969년 10월 15일 팔달산 서남암문 앞 3.1독립운동기념탑 옆으로 두 탑이 함께 이건했다. 2019. 3. 3. 수원 3.1독립운동기념탑 3.1운동 100주년의 열기가 식지 않은 3월 3일 오후 팔달산에 올라 3.1운동기념탑을 보았다. 수원에서 3.1운동은 전국의 어느 도시 못지 않게 뜨거웠지 않나 생각된다. 당시 수원은 수원군이라고 했고, 수원군에는 지금의 수원시, 화성시, 오산시가 포함된다. 수원에서 만세운동은 방화수류정에서 출발하여 행궁까지 만세행군이 있었고, 발안지역에서 만세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일제에 항거한 순국한 애국지사를 비롯한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고자 1969년 3월 1일 삼일중학교 뒷산인 중포산에 세웠던 것을 그 해 10월 15일 팔달산 서남암문 옆으로 이건했다. 당초 이 탑이 세웠던 중포산 그 자리는 수원경찰서 사범계 주임 노구찌 소위의 순국기념비가 있었던 자리이다. 일본 경찰의 순국비를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이 탑.. 2019. 3. 3. 수원 매산초등학교 방문 매산초등학교 전통어린이 연희단이 지난 10월 7일 수원화성문화제 행사 중 2018정조능행차 본 행진에 앞서 펼처진 2018조선백성환희마당 퍼레이드에서 11번째로 참가하여 장안문 앞에서 공연을 했다. 나는 장안문을 배경으로 이 어린이 연희단의 공연 장면을 사진을 촬영했다. 이들 어린이들의 공연이 너무 멋졌고, 내가 찍은 사진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사진이라서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까워 오늘 10월 10일 매산초등학교를 찾아 갔다. 안무 담당 선생님은 수업 중이라 만나지 못하고 교무실에서 다른 선생님에게 그 선생님에게 전해드리라고 UBS에 가지고 온 사진 26장을 드렸다. 매산초등학교는 1906년에 개교하였으며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 팔달산 아래 경기도청 동남쪽에 있다. 매산초교를 나오기 전에 학교의 모습.. 2018. 10. 10. 수원 팔달산에 홍난파 노래비 수원 팔달문(남무)에서 성곽을 따라 팔달산에 오르는 중턱에 홍난파의 '고향의봄' 노래비가 있다. 홍난파(1898-1941)는 본명이 홍성우이고, 난파는 호이다. 그는 1898년 남양군 둔지곶면 활초동(현 화성시 남양읍 활초리)에서 태어나 그 다음 해 서울로 이사 갔다. 그가 태어난 곳은 당시에는 남양군이었고, 그 후 수원군으로 변했고, 지금은 화성시에 속한다. 이 노래비를 세울 때는 남양 활초리가 수원시에 속해 있어 수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팔달산에 노래비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가 살았던 서울 종로구 송파동 집은 등록문화재로 제90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아담한 노래비이다. 꽃 문양 둘레 속에 동판으로 홍난파의 인물조각을 넣었다. 50년 전 조각품으로 우수하다. 그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2018. 4. 16. 축만제(서호) 제방에 세운 '전 주사 박문회 송덕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 서호는 지금은 공원이지만 예전에는 우리나라 농업의 산실인 농촌진흥청 농사시험 연구에 사용하는 물을 대는 저수지였다. 남쪽으로 저수지 제방이 있다. 제방의 동쪽 끝에 물을 빼는 옛 수문이 저수지 안쪽에 있고, 다른 하나의 수문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제방 끝 매몰된 곳에 있다. 물을 정화시키는 큰 건물 동쪽에 있고, 이 건물 동쪽에 철조망으로 둘러 싸인 "서호지(西湖池)"라는 작은 건물이 있고, 그 앞에 비석 하나가 있다. 비문은 아래와 같다. 破坰改築 屯民安堵 前主事 朴文會 頌德碑 廢壓復完 公稅適當 이 비문은 전 주사인 박문회라는 분을 칭송하는 송덕비이다. 제방이 파괴되자 새로 쌓았다 破坰改築(파경개축)이 있고, 수압이 있어 제방이 무너지는 위기가 있었으나 복원했다 廢壓復完(폐압복원.. 2018. 4. 2. 지지대(遲遲臺) 정면에서 본 지지대비와 비각 지지대(遲遲臺) 고개 정조가 현륭원 참배하러 갈 때 아버지의 묘가 내려다보이는 지지대 고개에 도착해서 현륭원까지 가는 시간이 너무 더디다면서 "왜 이리 더 딘가" 한탄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후 임금의 행차가 늦어지는 곳이라 하여, 느릴 지(遲)자를 두 번 붙여 지지대(遲遲臺)라고 부르고 있다. 지지(遲遲)라는 글은 맹자 만장장구하에서 "孔子之去齊 接淅而行 去魯 曰 遲遲(노나라를 떠날 때 ‘느리고 느리도다, 나의 걸음걸이)"라 나온다. 공자께서도 부모의 나라를 떠날 때 어쩔 수 없이 떠났으며, 정조도 부모가 계신 수원 땅을 더디게 차마 떠났던 것이다. 이 고개는 수원에서 서울 가는 길목 중 맨 먼저 만나게 된다. 수원시와 의왕시 경계 지점으로 경수대로가 지나.. 2017. 5. 29. 충양공(忠襄公) 김준룡(金俊龍) 승전기(勝戰記) 충양공(忠襄公) 김준룡(金俊龍) 승전기(勝戰記) 수원에는 자랑거리 중 하나가 산에 오르기 좋은 광교산이 있는 것이다. 광교산은 대도시에 있어 수많은 등산객이 오르고 있다. 경기대 입구에서 출발하여 형제봉을 지나고 비로봉을 통과하고, 최고봉인 582m 시루봉까지 오른다. 하산은 온 길을 돌아 올 수도 있고 절약수터지나 광교버스 종점까지 온다. 광교산에 오면 또 하나 꼭 보고 가야할 곳이 하나 있다. 비로봉 바로 앞 ...등산로에서 70m지점에 있는 김준룡장군 전승지(戰勝地)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모르고 지난다. 김준용 장군은 누구와 언제 어떻게 싸웠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은 것 같다. 명나라를 누르고 새로 일어선 청나라는 조선을 1636년 침입하였다. 당시 인조 임금은 본래 강화도로 피신하려다.. 2013. 12. 25. 농촌진흥청의 4월 풍경 농촌진흥청은 수원의 명소인 서호를 끼고 여기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꽃 피는 4월은 경치가 볼만하다. 농진청 내의 경치와 함께 농진청의 주요 건물을 소개한다. 농촌진흥청장이 있는 본청이다. 먹기 살기 어렵던 60년대와 70년대는 이곳은 나라의 중요한 곳 중 하나였으나 지금은 농업의 비중이 줄어 들면서 관심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 건물은 60년대 지은 오래된 건물이나 지금도 건축미가 있다. 이 건물은 3층으로 이 사진에서는 1층은 반 지하로 보이지 않는다. 후문에서 서호를 따라 정문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은 예전에는 농업유전공학연구소이며, 지금은 국립농업과학원의 생명자원부이다. 이 건물 앞에 벚꽃이 아름답다. 서호변에 있는 농진청 운동장 옆에 감나무와 벚꽃이 사이사이 있다. 농촌진흥청 운동장 잔.. 2013. 7. 30. 이전 1 ··· 11 12 13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