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 서호는 지금은 공원이지만 예전에는 우리나라 농업의 산실인 농촌진흥청 농사시험 연구에 사용하는 물을 대는 저수지였다. 남쪽으로 저수지 제방이 있다. 제방의 동쪽 끝에 물을 빼는 옛 수문이 저수지 안쪽에 있고, 다른 하나의 수문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제방 끝 매몰된 곳에 있다. 물을 정화시키는 큰 건물 동쪽에 있고, 이 건물 동쪽에 철조망으로 둘러 싸인 "서호지(西湖池)"라는 작은 건물이 있고, 그 앞에 비석 하나가 있다. 비문은 아래와 같다.
破坰改築 屯民安堵
前主事 朴文會 頌德碑
廢壓復完 公稅適當
이 비문은 전 주사인 박문회라는 분을 칭송하는 송덕비이다. 제방이 파괴되자 새로 쌓았다 破坰改築(파경개축)이 있고, 수압이 있어 제방이 무너지는 위기가 있었으나 복원했다 廢壓復完(폐압복원)는 글로 보아 이 분이 있어 큰 장마로 제방이 무너지는 위기가 있었으나 온전히 보전했다고 짐작이 간다.
파경개축(破坰改築) 구민안도("屯民安堵)는 "제방이 파괴되자 다시 쌓아 서둔동 사람은 모두 안도하게 했다"로 풀이할 수 있다. 廢壓復完 다음에는 公稅適當은 세금을 공평하게 매겨 무엇을 적합하게 했다는 뜻이다.
정조는 팔달산에 화성을 1796년 세우고 친위부대 장용영을 만들었다. 이 부대는 50명으로 시작하여 점점 증가하여 2만명까지 달했다. 이들 군사 양식을 위하여 둔전(屯田)을 조성했고, 이 둔전에 물을 대려고 저수지를 만들었다. 하나는 1795년 수원화성 북쪽에 만석거(萬石渠)를 만들었고, 다른 하나가서쪽에 축만제(祝萬堤)이다. 이 축만제는 1799년 세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 별칭이 서호(西湖)이고, 지금은 서호공원이라고 부리고 있다.
일제는 조선을 침략하고, 수리시설이 되어 있는 축만제 일원에 권업모범장이라는 농사연구시설을 세웠다. 그 이후 이곳은 우리나라 농업의 산실으로 역활을 해왔다. 이곳 만석거 아래 농지는 우리나라 벼 농사의 연구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벼 품종이 만들고, 농사법이 개발되었다. 당시에는 농업국가로서 만석거는 중요한 수리 시설이었다.
破坰改築 다음에 글자가 있으나 잘 보이지 않는다. 廢壓復完도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폐압복원 다음에는 잘 보이지 않으나 구민안제(救民安諸) 같다.
하얀 건물에는 서호지라는 글씨가 있고, 그 앞 우측편에 송덕비가 있다.
이 건물 안에는 수문을 조작하는 기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수문을 올리고 닫고 하는 수문이다. 건물 안쪽에는 이 수문을 돌리는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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