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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한바퀴

툴립 꽃길 서호천변 (2010. 5. 1.)

by 仲林堂 김용헌 2021. 10. 19.

꽃은 천사다

누군들 꽃 보면 착한 마음 아니 들소냐

꽃은 찌든 때 벗기고

본래의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가게 한다.

수 많은 튤립 천사가 서호천변에 내려왔다.

고운 자태의 천사가 형형색색의 옷을 입었다.

더 말고 오늘 같아라.

아름다운 네 모습 고이 간직하련다.

튤립이 반기는 서호 천변길

내년에도 걷고 싶다.

 

좌측 앞쪽에 보이는 곳이 옛 서울대학교 농대이다.

여러 종류 색의 튤립이다.

빨간색

보라색

흰색

노란색

빨간색에 흰 줄

보라색에 노란 줄

아름다운 튤립 그 자체로 보고 즐기면 그만이지만 사람들은 보기만으로는 충분치 못하여 꺾어 가지고 싶어한다. 인간의 욕심은 재앙을 불러왔던 유명한 "튤립투기 사건"이 아래와 같이 1630년대 있었다.

 

"스페인에서 쫒겨난 많은 유태인이 상거래가 자유로왔던 네덜란드로 들어 오면서 네덜란드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스페인의 군사적인 위협이 사라졌고 유럽국가들 중 최고의 국민소득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동유럽의 직물산업이 붕괴하면서 반대급부로 네덜란드의 모든 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검약정신이 사라지면서 사회분위기는 소비와 과시욕으로 치장되기 시작했다. 이때 사람들의 기형적인 집착이 모아진 곳은 다름아닌 ' 꽃밭'이었다. 특히 튤립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은 대단했다. 대중들이 튤립에 집착하면서 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튤립의 모양이나 색깔을 가지고 계급을 매겼고 이른바 '황제튤립'한 뿌리는 수도 암스테르담의 집 한 채 값과 맞먹었다. 농민들은 식량도 되지 않는 튤립 한 뿌리에 목숨을 걸었고 부자들은 희귀한 튤립 한 뿌리를 구하기위해 어떤 대가라도 치렀다. 프랑스인들까지 들어와 튤립시장에 뛰어들었다. 거의 광기였다. 당시 최고급 튤립의 값은 밀가루 27톤, 황소4마리, 버터 10톤, 양 12마리 값이었다.

 

결국 종말은 찾아왔다. 1637년 거품이 꺼지면서 튤립시장이 붕괴하자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사람들은 튤립밭을 파헤쳐 버렸고 많은 사람들이 도산의 길을 걸었다. 결국 정부가 튤립과 관련된 채무관계의 경우 매매 가격의 3.5%만 지불하면 없던 일로 한다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면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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