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여행/중국(태안, 곡부, 칭따오)

맹묘 관람: 아성전 참배

by 仲林堂 김용헌 2019. 6. 10.

맹묘(孟廟) 승성문(承聖門)을 지나자 맹묘의 중심 건물이며 맹자의 위패와 존영을 모신 아성전(亞聖殿)이 눈앞에 다가 왔다. 아성전(亞聖殿)은 대성전에 버금가는 궁전이다. 공묘에서는 공자의 위패와 존영을 모신 곳을 대성전이라고 하지만 이곳 맹묘에서는 대성전에 버금간다는 의미로 대성전 대신 아성전이라고 했다. 

 

맹자는 공자에 버금가는 철학자요 사상가이지만 공자에는 못 미친다. 그럼에도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계승하여 꽃피운 대학자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공묘 대성전에는 학생들이 없었지만 이곳 맹묘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우리 일행이 이곳 아성전을 찾았을 때도 학생들이 단체로 교육을 받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참배를 바로 못하고 먼저 대성전 내부를 관람했다. 그후 학생들이 교육이 끝난 후 참배를 했다. 

 

우리 일행은 아성전 향로석 앞에 서립했고, 나는 집례를 맡아 배례를 창홀하고 일행은 나의 창홀에 따라 4배를 했다. 공묘 대성전에서 참배하고, 다시 맹묘 아성전에서 참배하니 더 할 나위 없이 가슴이 뿌듯했다.

 

참배 전에 아성전 안을 살펴보았다. 관실도 아름답고, 그 안에 모신 공자상도 정갈하게 모셔저 있었다. 제기, 악기 등도 깨끗하게 잘 보관되어 있었다. 공묘 대성전은 감실과 공자상은 지저분해 안타가운 마음이었다.  
우리 일행이 아성전에 도착했을 때 학생들이 미리 이곳을 선점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교육이 끝날 때를 기다려 먼저 아성전 안을 관람하고 참배를 했다. 이재용 유림, 조전영 수원향교 장의, 윤금열 간성향교 원임전교는 대표로 큰절로 4배를 했고, 나머지 일행은 입배로 4배를 했다.

참배 후 아성전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근접하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감실에 존영상이 홀을 쥐고 앉아 있다. 위패는 홀 아래에 "亞聖孟子位"라고 있다. 존영상도 말끔하다.

 

 

맹자 감실 전체의 모습이다. 앞쪽에는 촛대가 양쪽으로 있고, 두(좌측 흑색)과 두(우측 적색)이 보이다. 존영상 앞에 휘장으로 얼굴이 보이게 가려져 있다. 감실의 좌측에는 편경, 우측에는 편종이 있다.

 

 

감실 위에 편액은 청 옹정황제가 쓴 "守先待後(수선대후)"이다. 그 뜻은 "선대의 업적을 지켜 후대를 기다린다"이다. 맹자는 공자의 업적을 잘 지켜 후세에 잘 전했다고 칭송한 말이다.

 

 

위패와 존영상을 모신 감실 좌우 기둥에 주련이 있었다. 문턱과 너무 가까워 전체 사진을 찍지 못했으나 좌측에 있는 이 주련은 "憂世心同切禹顔(우세심동절우안)"이다. 그 뜻을 풀이하면 맹자는 우임금과 안자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걱정하셨다. 우임금은 남이 물에 빠지면 자신이 물에 빠진 것과 같이 염려했다. 안회는 나물먹고 팔베고 살았지만 그 어려움에도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으며 배우기를 좋아했다. 맹자께서 우임금과 안회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걱정하고 그 분들과 같은 정치를 펼치려 했다고 넓게 해석하면 맞지 않을 가 싶다.

  

 

우측에 있는 주련이다. 이 주련에 "尊王言必稱堯舜(존왕언필칭요순)이다. 이 글을 풀이하면 존왕은 말씀하시면 요임금과 순임금을 칭송했다. 존왕은 대성지성문선왕이신 공자를 가리킨다. 공자께서는 요임금과 순임금의 정치를 이상 정치로 보셨다는 뜻이며, 맹자도 요임금과 순임금과 같이 공평하고 백성이 편안한 정치를 펼치셨다는 뜻이다.

 

 

아성전에는 공묘의 대성전 보다 악기 등 내부가 잘 보전되어 있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앞쪽에는 거문고, 좌측에 촛대와 제기가 있다.

 

 

 

우측 앞에 작은 북이고, 뒤에 편경이다. 좌측에는 큰북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