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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중국(태안, 곡부, 칭따오)

맹묘(孟廟) 관람: 영성문(欞星門)에서 승성문(承聖門)까지

by 仲林堂 김용헌 2019. 6. 9.

공자의 고향 취프에서 5월 30일 오전 8시 출발하여 맹자의 고향 추성시 맹묘(孟廟) 주차장에는 약간의 정체가 있어 예정보다 늦은 9시반에 도착했다. 곡부에서 무료입장을 했으나 이곳은 외국인 경노는 안되다고 한다. 입장권을 구입했다. 검표소를 통과하자  맹묘의 첫번째 문인 영성문(欞星門) 멀리 보였다. 취프에서 공묘, 공부, 공림을 모두 관람하고 이제 추성에서 맹묘와 맹부를 관람하면 중요 유교성지를 관람하게 된다.

 

아래는 맹묘에 관하여 검색한 내용이다.

【맹묘(孟庙)는 산동성 쩌우청시(邹城市, 추성시) 성 동북 13거리의 쓰지산(四基山) 서남 기슭 맹가능묘(孟轲陵墓) 앞 맹자를 제사지내는 사당으로 아성묘(亚圣庙)라고도 불리며 송나라 경우(景佑) 4(1037)년 건립되었다. 이 사당은 공자의 제45세손 공도보(孔道辅)가 창건하였다고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후 이 사당이 성으로부터 멀리 있어 제사 등 제반 활동이 불편하자 또 다른 맹묘를 쩌우청(邹城, 추성) 동쪽 교외에 건립한 것이 쩌우청(邹城, 추성) 사당의 기원이라고 한다.

송나라 선화(宣和) 3(1121) 현재의 위치인 쩌우청(邹城, 추성)의 청구(城区, 성구) 남부에  맹묘(孟庙)를 다시 건립하였고, , , , 청에 이르기까지 십 수차의 중수와 확대를 통해 비로소 현재의 규모가 되었다고 한다.

맹묘 내에는 진(), (), (), (), (), (), (), ()의 역대 비석 280개가 있으며 이 중 주요한 내용으로 역대 황제의 성지(圣旨), 맹씨가족보계(孟氏家族谱系), 역대 확장 기록, 문인묵객의 시와 글씨, 맹묘송(孟庙颂)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일행은 매표소 입장 후 영성문(欞星門), 아성묘방(亞聖廟坊), 태산기상문(泰山氣象門), 건륭비정, 승성문(承聖門), 아성전(亞聖殿), 맹자사적전시실(孟子生平事蹟陳列), 맹부(孟府) 순으로 관람했다.  

 

영성문에 들어 올 때는 우리 일행 외 다른 관람자는 없었으나 맹모단기처비가 있는 곳에 오자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아성전에도 많은 학생들이 있었고, 맹부에서도 우리 일행이 자유롭게 관람하기 어려울 정도로 학생들이 많았다.

 

공자는 성인(聖人)이나 맹자는 성인에 버금가는 아성(亞聖)이다. 맹자가 공자에 버금간다고는 하지만 공묘에 비하여 맹묘는 규모도 작고 역사도 훨씬 짧아 실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맹묘에는 맹모(孟母)가 있었고, 학생들의 실천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또한 매년 "맹모맹자대전" 행사를 크게 개최하고 있다.

 

검표소이다. 우측에 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한 후 입장했다. 이 건물에 全國中小學生 硏學實踐敎育基地(전국중소학생 연학실천교육기지)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이곳이 전국 중고등학교 학생 강습 장소라고 안내하는 문귀이다.

 

 

영성문(欞星門)이 멀리 보인다. 그 주변에 고목이 숲을 이루고 있다.

 

 

가까이 본 영성문이다. 돌기둥에 3문이 있고, 그 위에 솟을 기와누각을 세웠다. 문 좌우로 붉은색 성벽이 둘러 있다. 欞星(영성)은 고대 한족의 전설에 의하며 천상의 별로 문(文)을 주관하는 별이다. 한(漢)나라에서는 하늘에 제사지내는데 먼저 영성(靈星)에게 제를 지내면서 풍년을 기원했다고 한다. 맹자를 글을 주관하는 하늘의 별과 같이 비유한 것이다.

 

 

 

 

다음 관문은 아성묘(亞聖廟)방이다. 돌기둥이 4개를 연결하여 위쪽에 돌판을 연결하고  그 가운데에 황색으로 亞聖廟라고 새겨 넣었다. 이 방은 아성묘를 알리는 홍살문과 같은 것이다. 

 

 

맹묘 안에는 오래된 고목이 300여주가 있다. 사료에 의하면 북송 선화시대에도 이미 900여년의 수령의 고목이 있었다고 한다.

 

 

태산기상문 못미처 서쪽편에 있는 큰 종이다. 김대안철종(金大安鐵鐘)으로 불린다. 종은 불교 사찰에나 있는데 유교성지에 종이 있음은 특별하다.

 

 

이 종은 맹자대전 행사 때 울렸다고 한다.

 

 

아성묘방을 지나면 태산기상문(泰山氣象門)이 보인다.

 

 

태산기상문(泰山氣象門)이다. 태산(泰山)은 천하를 상징하는 최고의 산이다. 그런 산의 정기를 받은 문을 뜻하는 것이 아닐가?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 를 펼치라고 했다. 호연지기란 "하늘과 땅 사이에 넘치게 가득찬 넓고도 큰 원기나 자유롭고 유쾌한 마음,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운 바 없는 용기 등을 뜻한다." 태산의 호연지기를 펼친다고 생각해 본다. 정호(程顥)는 "공자는 하늘과 땅이고, 안회는 바람과 구름이며, 맹자는 태산의 높은 기상이다"고 말한 데에서 '태산기상'를 따왔다고도 한다.

   

 

 

청나라 1대 황제인 강희비각이다. 비석에 정자를 세운 비각(碑閣)도 흔치 않은데 강희비각은 황제답게 2층으로 된 비각이다. 이렇게 2층으로 된 비각은 세상에 여기 말고 또 있을 가! 대단한 비각이다.

 

 

 

강희 황제가 세운 비각에 대한 설명하고 있다. 건융황제는 비정을 건융원년(1736년)에 세웠고, 그 비석은  강희황제가 1687년 세운 "어제맹자묘비(御制孟子廟碑) 이다. 건융은 강희의 손자이다.

 

 

孟母斷機處(맹모단기처)비석이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가 노나라에 유학하는 도중으로 공부를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맹모께서 베틀에서 짜던 비단의 날 줄을 끊어 버렸다는 곳에 세운 비석이다. 그 옆에는 孟母三遷祠(맹모삼천사)비석이다. 이 비석은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위하여 3번 이사를 하여 맹자를 교육시킨 것을 숭모하는 사당에 세운 비석이다.

 

우리 일행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많은 학생들이 맹자의 맹자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대학생으로 보인다.

 

 

좌측 비석은 孟母斷機處(맹모단기처)이다. 우측 비석은 孟母三遷祠(맹모삼천사)비석이다.

 

 

仁(어질고)廉(청렴하고)公(사보다 공을)勤(부지런하고) 비석에 있는 탁본하여 맹자의 말씀이다.

 

 

중요한 비문으로 보이나 비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청의 3대황제인 건융황제의 비석이다.

 

건융황제의 비각은 건융 1761년에 세웠고, 비석은 1748년에 세웠으며, 글씨는 건융황제의 친필이다.

 

 

천진(天震)우물이다.

 

 

우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공묘에 오래된 우물이 있었고, 안묘에도 누추하지만 우물이 있었고, 증삼묘에도 솟아나오는 우물이 있었으나 오직 맹묘만은 우물이 없었다. 그런데 강희10년 어느 봄날 홀연히 우뢰소리가 들려 모두 놀랐다. 그 때 맹묘의 가운데 쯤에서 땅이 매몰되었다. 찾아보니 옛 우물이었다. 언제부터 우물이 있었나 알 수 없고, 하루 아침에 이유없이 함정에서 나와 이름을 하늘이 진동하였다하여 "天震井"이라고 지었다.

 

 

承聖門(승성문) 현판이다. 이 문은 아성전 앞 정문이다. 承聖(승성)은 성인을 이었다는 뜻이다. 공자의 사상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로 이어저 맹자가 이어 송대에 꽃을 피웠다. 도통(道統)은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탕왕, 문왕, 무왕, 주공이 이었고, 이를 공자가 집대성했고 다시 자사를 거쳐 맹자로 이어졌다.

 

 

이 문은 북송 때 1121년 세웠다. 承聖은 성의 뜻을 계승함을 찬양한 것이고 풀이하고 있다.

 

 

아성전(亞聖殿)이 나무 사이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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