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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중국(태안, 곡부, 칭따오)

맹부(孟府) 관람

by 仲林堂 김용헌 2019. 6. 11.

 

맹묘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길 하나 건너에 맹부(孟府)가 있다. 이곳은 맹자의 직계자손이 거주하는 저택이다. '아성부(亚圣府)' 라고도 부른다. 전통양식을 따른 건축물로서 평면은 장방형이고 대지 점유면적은 약 22,400이다. 앞뒤로 7개의 원락(院落)148칸의 방이 있다. 중심 건물인 대당(大堂)은 관원을 접견하거나 공적 업무를 보던 곳이다.

 

우리 일행은 맹부대문(孟府大門), 예문(禮門), 의문(儀門), 맹부대당(孟府大堂), 내삼문(內三門), 세은당(世恩堂), 사서루(賜書樓), 후상방(后上房), 연록루(延祿樓), 후학당(后學堂), 습유관(習儒館), 맹씨소학교(孟氏小學校) 순으로 관람했다.

 

이곳을 관람을 마치면서 맹부대당(孟府大堂) 주련에 있는 "居仁由義淵源百代仰先烈(거인유의연원백대앙선열) 인에 살고 의에 따르는 연원이 100대이며 선열을 우러러본다."를 다시금 생각했다. 인(仁)에 살고 의(義)에 따름은 맹자의 맹자 후손뿐만 아니라  중국인을 넘고, 우리나라 사람을 포함한 전 인류에게 천년을 넘고 100대를 넘게 펼쳐나갈 거라 생각했다.

 

 

맹부(孟府)는 우측변에 있다. 좌측은 맹묘(孟廟)이다. 맹부를 알리는 아성방이다.

 

 

맹부 안내판이나 퇴색이 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충 윤곽은 정방형이다.

 

 

맹부대문이다.

 

 

맹부대문의 현판은 아성부(亞聖府)이다. 아성은 맹자를 가리켜 맹부대신 아성부라고도 부른다.

 

 

맹부의 조감도인 맹부유람시의도이다. 반사되어 잘 보이지 않으나 자세히 보면 건물의 이름을 알 수 있다.

 

 

예문(禮門)이다.

 

 

예문의 현판은 예문의로(禮門義路)이다. 맹자의 중심 사상은 의(義)다. "예문으로 들어가 의로운 길로 간다."는 의미이다.

 

 

의문(儀門)이다. 이 문은 큰 의례를 거행할 때 여는 문이다. 맹부에서는 맹부희경대전(喜慶大典), 황제가 거동할 때에 열었다. 문을 열고 대제(大祭)를 지낼 때 예포(禮炮)를 쏘았다. 문에 사람 그림을 넣은 좀 처럼 보기드문 형태의 문이다.

 

 

의문(儀門) 현판이다.

 

 

맹부의 중심 건물인 맹부대당(孟府大堂)이다. 맹부의 일종의 관청 집무실이다. 맹자의 적손은 한림원 오경박사의 관직을 세습했다. 집무실 앞 두 기둥에 주련이 있다. 주련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繼往開來私塾千年承燕翼(계왕개래사숙천년승연익): 앞서간 성인의 가르침을 이어 본받아 도와 학문을 닦아 천년을 이어왔고 조상은 자손을 편안하게 살도록 한다. 繼往開來는 성인의 가르침을 이어 받아 후세에 전한다는 뜻이다. 私塾은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으나 마음속으로 본 받아 도나 학문을 닦는 것이다. 燕翼은 조상이 자손을 편안하게 살도록 한다.

 

居仁由義淵源百代仰先烈(거인유의연원백대앙선열): 인에 살고 의에 따르는 연원이 100대이며 선열을 우러러본다. 居仁由義는《맹자》진심상 33에 "居仁由義 代人之事"에서 따온 말이다. 先烈은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죽은 열사이다.  

 

 

대당(大堂) 현판이다. 七篇貽矩(칠편이구)는 청 옹정제가 쓴 친필이다. 맹자의 저서 《孟子》은 七篇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梁惠王〉〈公孫丑〉〈腾文公〉〈離樓〉〈萬章〉〈告子〉〈盡心〉를 기리킨다.

 

 

 

맹자의 적손 오경박사가 근무하는 곳이다. 책상은 노란 볼로 싸여 있다.

 

 

대당은 엄숙하고 정숙하라(肅靜). 비켜라(回避)라는 간판에 보듯 위험을 나타내고 있다. 世襲 翰林院은 맹자의 적손은 한림원 벼슬을 세습한다. 五經博士(오경박사)도 관직이름이다.

 

세은당(世恩堂)이다. 한림원 오경박사가 거주하는 집이다. 현재 맹자 74대손 손맹번이와 그 부인 왕숙방 여사가 살고 있다.

 

 

 

옛 사숙(私塾)이다. 사숙은 직접 가르침은 받지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본 받아 도나 학문을 닦는 학교이다. 이곳에서는 맹자 등 유학 경전을 수업받고 전통문화 전승, 국학정신의 교육장이다. 현재 전국청소년 교육기지이고 산동대학교 교학과 연구기지이다.

 

 

강유당(講儒堂)이다. 유학을 배우는 곳이다.

 

 

孟府感恩堂(맹부감사당)이다. 원래는 아성부 소학루였다. 맹자 74대손 뱅번이가 1943년 세웠다. 이 학교에서는 맹자, 국어, 산수, 자연 등을 가르친다. 감은(感恩)은 어머니 은혜에 감사하고 사회에 보답한다는 의미이다.

 

 

맹부 관람을 마치고 나가려고 했을 때 누군가 이상 한 글자가 있다면서 무슨 글자인 줄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한 사람이 孔은 공자이고, 女는 좋다(짝짓는다)는 의미이고, 다른 사람이 갓변은 배울 학(學)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그릇 명(皿)은 맹자의 받침이라고 했다. "공자와 맹자가 같이 학문을 하니 좋다"란 의미의 합성어라고 답 했다. 중국발음은 "화하오콩밍"이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우리 일행과 중국 여학생이 만났다. 우리 일행이 몇 마디 영어 말에 여학생들이 좋아 어쩔줄 몰라 한다.

 

 

담장과 문이 이채롭다.

 

 

해시계이다. 이 시계는 중국에서 발명한 최초의 시계 중 하나이다. 해시계는 진한시대 민간에 유행했다.고 한다. 이 시계는 1835년 맹자의 70대손 맹창균이 제작했다.

 

 

嘉量(가량)이다. 말이나 되를 측정하는 기구라고 한다. 이것도 맹자의 70대손 맹창균이 1835년 만들었다. 

 

 

맹부를 출구를 나오나 도로변에 맹자의 명언을 그림과 함께 전시해 놓았다. 君子不怨天(군자불원천) 不尤人(불우인)이다. 《孟子-公孫丑下》에 나오는 글로 그 뜻은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또한 다른 사람도 원망하지 않는다.

 

 

밖으로 나오니 또한 단체로 관람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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