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작시

홍해부리의 땅 띄기 추억(원본/박상수 시인 첨삭한 수정본)

by 仲林堂 김용헌 2018. 1. 27.


홍해부리 땅 띄기 추억

김용헌

 

가을걷이도 끝나고 이제 허리를 좀 필 만할 즈음

바람 막힘 하나 없는 썰렁한 들판

추위는 바람 타고 스며온다.

어둠이 걷히며

우리 소는 늘 그러느니 길 따라 구루마를 끌고

구루마(수레)꾼이 있는 것도 잊어버린 듯 뚜벅 뚜벅 잘도 간다.

수레는 바퀴자국을 따라 쇄빙선이 되어 얼음을 깨고 쿨쿽 쿨쿽 굴러간다.

 

한 시간여 지나

굽이굽이 흘렀던 옛 노성천이 있었던 홍해부리다.

옛 강바닥은 평상시 물이 차는 수침(水浸)

벼가 한창 클 때 장마가 오면 큰 내가 되어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일 쑤다.

그리고 기름기이라고는 하나 없는 시커먼 모래땅이다.

한 두 자만 깔면 그래도 건질 수도 있는데...

 

수침 논 아래배미는 창복이네 논

창복이 아버지는 벌써 수침 논에 흙 한 바소쿠리 부리고는 헐겁게 나오신다.

뒤 돌아보니 피와 땀으로 키운 작은 동산

연병장에 까마득하게 좌우로 정렬해 있다.

다시 바소쿠리에 한 삽 두 삽 올리니 바소쿠리는 금새 고봉이 된다.

그리고 지게다리가 휘청하면서 지게 발목은 땅에서 띈다.

이렇게 한 바소쿠리 또 한 바소쿠리, 그리고 몇 년째인가?

 

수침 논 윗배미는 우리 논

지게 대신 소 구루마다.

소 구루마에 흙이 가득 실린다.

앞발은 땅 속으로 푹푹 들어가자 급하게 뿍뿍 빼낸다.

뒷발은 땅을 긁으며 밀어낸다.

작은아버지는 소고삐를 잡고 몰며

울 삼형제는 바퀴가 쑥쑥 빠지는 구루마를 민다.

 

어둠이 깔리며 귀가다.

소는 그제서야 멍에가 헐겁다.

우리는 소 구루마를 타고 꿈을 그려본다.

위 땅은 퍼내(띄기)니 밭에서 논이 되고

아래 땅은 받으니 수침에서 옥토로 된다.



홍해부리 땅 띄기

김용헌 / 박상수시인 첨삭

 

가을걷이 끝나고

허리를 좀 필 만할 즈음

바람 막힘 하나 없는 썰렁한 들판

초겨울 바람은 사방에서 모여든다

 

노성천 홍해부리

기름기라고는 하나 없는 시커먼 모래땅

물이 차는 수침(水浸)논이어서

벼가 클 때 장마가 오면 큰 내가 되어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일쑤인 땅

 

한 두 자만 흙을 깔면 그래도 나락 몇 섬은 건질 수 있어

 

아버지는 소를 부려

흙을 옮기기 시작한다

땅 띄기,

흙을 채워 저 낮은 땅을 돋우는 일

소는 늘 그래왔듯 길 따라

구루마를 끌고

 

바소쿠리에

한 삽 두 삽 흙을 올리니 금세 고봉이 된다

지게를 질 때마다 다리가 휘청하면서 나는 자주 발목이 꺾인다

벌써 몇 년째일까

돌아보면

피와 땀으로 돋워 키운 논

 

소 구루마에

다시 흙이 가득 실린다.

앞발은 땅 속으로 푹푹 들어가고

뒷발은 땅을 긁으며 밀어낸다

아버지는 소고삐를 잡고 몰며

나는 바퀴가 쑥쑥 빠지는 구루마를 민다

 

묵묵히

바람 타고 스며오는 추위

 

소 구루마를 타고

떠나는 꿈을 꾼다

 

끝없이 이어지는 바퀴자국을 따라

쇄빙선이 되어 얼음을 깨고

먼 겨울 끝까지 가고 싶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