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부리 땅 띄기 추억
김용헌
가을걷이도 끝나고 이제 허리를 좀 필 만할 즈음
바람 막힘 하나 없는 썰렁한 들판
추위는 바람 타고 스며온다.
어둠이 걷히며
우리 소는 늘 그러느니 길 따라 구루마를 끌고
구루마(수레)꾼이 있는 것도 잊어버린 듯 뚜벅 뚜벅 잘도 간다.
수레는 바퀴자국을 따라 쇄빙선이 되어 얼음을 깨고 쿨쿽 쿨쿽 굴러간다.
한 시간여 지나
굽이굽이 흘렀던 옛 노성천이 있었던 홍해부리다.
옛 강바닥은 평상시 물이 차는 수침(水浸) 논
벼가 한창 클 때 장마가 오면 큰 내가 되어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일 쑤다.
그리고 기름기이라고는 하나 없는 시커먼 모래땅이다.
한 두 자만 깔면 그래도 건질 수도 있는데...
수침 논 아래배미는 창복이네 논
창복이 아버지는 벌써 수침 논에 흙 한 바소쿠리 부리고는 헐겁게 나오신다.
뒤 돌아보니 피와 땀으로 키운 작은 동산
연병장에 까마득하게 좌우로 정렬해 있다.
다시 바소쿠리에 한 삽 두 삽 올리니 바소쿠리는 금새 고봉이 된다.
그리고 지게다리가 휘청하면서 지게 발목은 땅에서 띈다.
이렇게 한 바소쿠리 또 한 바소쿠리, 그리고 몇 년째인가?
수침 논 윗배미는 우리 논
지게 대신 소 구루마다.
소 구루마에 흙이 가득 실린다.
앞발은 땅 속으로 푹푹 들어가자 급하게 뿍뿍 빼낸다.
뒷발은 땅을 긁으며 밀어낸다.
작은아버지는 소고삐를 잡고 몰며
울 삼형제는 바퀴가 쑥쑥 빠지는 구루마를 민다.
어둠이 깔리며 귀가다.
소는 그제서야 멍에가 헐겁다.
우리는 소 구루마를 타고 꿈을 그려본다.
위 땅은 퍼내(띄기)니 밭에서 논이 되고
아래 땅은 받으니 수침에서 옥토로 된다.
홍해부리 땅 띄기
김용헌 / 박상수시인 첨삭
가을걷이 끝나고
허리를 좀 필 만할 즈음
바람 막힘 하나 없는 썰렁한 들판
초겨울 바람은 사방에서 모여든다
노성천 홍해부리
기름기라고는 하나 없는 시커먼 모래땅
물이 차는 수침(水浸)논이어서
벼가 클 때 장마가 오면 큰 내가 되어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일쑤인 땅
한 두 자만 흙을 깔면 그래도 나락 몇 섬은 건질 수 있어
아버지는 소를 부려
흙을 옮기기 시작한다
땅 띄기,
흙을 채워 저 낮은 땅을 돋우는 일
소는 늘 그래왔듯 길 따라
구루마를 끌고
바소쿠리에
한 삽 두 삽 흙을 올리니 금세 고봉이 된다
지게를 질 때마다 다리가 휘청하면서 나는 자주 발목이 꺾인다
벌써 몇 년째일까
돌아보면
피와 땀으로 돋워 키운 논
소 구루마에
다시 흙이 가득 실린다.
앞발은 땅 속으로 푹푹 들어가고
뒷발은 땅을 긁으며 밀어낸다
아버지는 소고삐를 잡고 몰며
나는 바퀴가 쑥쑥 빠지는 구루마를 민다
묵묵히
바람 타고 스며오는 추위
소 구루마를 타고
떠나는 꿈을 꾼다
끝없이 이어지는 바퀴자국을 따라
쇄빙선이 되어 얼음을 깨고
먼 겨울 끝까지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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