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걷이도 끝나고 이제 허리를 좀 필만할 즈음
바람 가림막 하나 없는 썰렁한 들판
추위는 바람 타고 스며온다.
어둠이 걷히며
우리 소는 늘 그려느니 길 따라 구루마를 끌고
구루마(수레)꾼이 있는 것도 잊어버린 듯 뚜벅 뚜벅 잘도 간다.
수레는 바퀴자욱(자국)을 따라 쇠빙선이 되어 얼음을 깨고 쿨쿽 쿨쿽 굴러간다.
한 시간여 지나
굽이 굽이 흘렀던 옛 노성천이 있었던 홍해부리다.
옛 강바닦은 평상시 물이 차는 수침(水浸) 논
벼가 한창 클 때 장마가 오면 큰 내가 되어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일 쑤다.
그리고 기름기이라고는 하나 없는 시커먼 모래 땅이다.
한 두자만 깔면 그래도 건질 수도 있는데...
수침 논 아랫배미는 창복이네 논
창복이 아부지는 벌써 수침논에 흙 한 바소쿠리 부리고는 헐겁게 나오신다.
뒤 돌아보니 피와 땀으로 키운 작은 동산
연병장에 까마득하게 좌우로 정렬해 있다.
다시 바소쿠리에 한 삽 두 삽 올리니 바소쿠리는 금새 고봉이 된다.
그리고 지게다리가 휘청하면서 지게 발목은 땅에서 띈다.
이렇게 한 바소쿠리 또 한 바소쿠리, 그리고 몇 년째인가?
수침논 윗배미는 우리 논
지게 대신 소구루마다.
소구루마에 흙이 가득 실린다.
앞발은 땅 속으로 푹푹 들어자 급하게 뿍뿍 빼낸다.
뒷발은 땅을 긁으며 밀어낸다.
작은아버지는 소고삐를 잡고 몰며
울 삼형제는 바퀴가 쑥쑥 빠지는 구루마를 민다.
어둠이 깔리며 귀가다.
소는 그제서야 멍에가 헐겁다.
우리는 소 구르마를 타고 꿈을 그려본다.
위 땅은 퍼내(띄기)니 밭에서 논이되고
아래 땅은 받으니 수침에서 옥토로 된다.
노성천: 일제강점기에 직선으로 새로 제방을 쌓아 만들었다. 옛 노성천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50-5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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