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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 아래 큰 바위에 선조의 글씨인 만절필동(萬折必東)과 숙종의 글씨인 화양서원(華陽書院)이란 암각이 있다. 만절필동은 황하(黃河)가 만 번 굽이 처도 결국은 동(東)으로 간다는 뜻으로 동(東)은 원래 중국의 동쪽을 가리키나 우리나라로도 볼 수 있다. 황화의 문명은 결국은 조선에까지 이른 다는 의미로 넓혀본다.
우암은 금사담 계곡 건너편에 초가 3칸 집(溪堂)을 지었다고 한다. 우암이 서거한 후 암서재(巖棲齋)를 지었다고 한다. 암서재 옆 직립한 바위에 창오운단 무이산공(蒼梧雲斷 武夷山空)이란 우암의 쓴 암각문이 있다. 창오운단에서 창오(蒼梧)는 순임금이 죽은 곳이다. 창오에 구름이 끊어졌으니 더 이상 요(堯)→순(舜)→우(禹)→탕(湯)→문(文王)무(武王)→주공(周公)으로 이어지는 도통(道統)이 끊겼음을 이야기하고, 그 끊긴 도통을 무이산에서 공부한 주자(朱子)가 이었으나 이제 무이산도 비었다며 도통이 끊어졌음을 한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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