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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서원

호남의 대표적인 서원 필암서원

by 仲林堂 김용헌 2024. 5. 19.

문루인 확연루이다.확연(廓然)은 크고 넓은 무한한 영영을 뜻한다. 하서 김인후의 인품과 학문이 정자가 "군자는 학문이 확연하여 크게 공정하다"라는 말씀에서 우암 송시열이 확연루라고 현판을 썼다고 한다.

 

필암서원의 조감도이다.
사당인 우동사(祐東祠)이다.
정조가 쓴 경장각 현판이다.

 

강당인 청절당(淸節堂) 뒷편 모습이다.
동재인 진덕재(進德齋)이다.

 

서재인 숭의재(崇義齋)이다.
묘정비와
보물 제587-13호로 지정된 봉심록이다.

작성 중

 

첨성대 아래 큰 바위에 선조의 글씨인 만절필동(萬折必東)과 숙종의 글씨인 화양서원(華陽書院)이란 암각이 있다. 만절필동은 황하(黃河)가 만 번 굽이 처도 결국은 동()으로 간다는 뜻으로 동()은 원래 중국의 동쪽을 가리키나 우리나라로도 볼 수 있다. 황화의 문명은 결국은 조선에까지 이른 다는 의미로 넓혀본다

 

 우암은 금사담 계곡 건너편에 초가 3칸 집(溪堂)을 지었다고 한다. 우암이 서거한 후 암서재(巖棲齋)를 지었다고 한다. 암서재 옆 직립한 바위에 창오운단 무이산공(蒼梧雲斷 武夷山空)이란 우암의 쓴 암각문이 있다. 창오운단에서 창오(蒼梧)는 순임금이 죽은 곳이다. 창오에 구름이 끊어졌으니 더 이상 요()()()()(文王)(武王)주공(周公)으로 이어지는 도통(道統)이 끊겼음을 이야기하고, 그 끊긴 도통을 무이산에서 공부한 주자(朱子)가 이었으나 이제 무이산도 비었다며 도통이 끊어졌음을 한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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