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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족 이야기/가족 이야기

내 동생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다

by 仲林堂 김용헌 2024. 4. 27.

내 동생 용길이가 지난 4월 23일 점심 무렵 그가 사는 집 부적면 신풍리 집에서  의식을 잃었고, 곧바로 충남대병원 응급실에 입원했지만 암 세포를 이기지 못하고 23시 10분 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처와 함께 지난 20일(토) 목포에서 1박 2일 모임이 있었고, 모임이 끝난 후 21일 진도에서 숙박하고, 22일 집으로 돌아온 후 23일 오전 10시부터 청산회 회원과 함께 수리산 등산하고 집으로 오후 2시쯤 돌아와서 연일 이어지는 행사에 몸이 힘든 상태였다. 그간 밀렸던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을 때 모르는 전화번호 하나가 떴다.  "미연이어요. 아빠가 위독하여 입원했어요. 의사가 보고 싶은 사람 다 오라고 했어요".라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때가 16시 44분이다. 

 

이런 날이 조만간 올 것만 같은 생각은 했다.. 용길이는 다섯달을 살지 못할 것이란 진단이 나왔다. 항암 치료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둘러 충남대병원 응급실에 20시경에 도착하여 면회를 하니, 의식을 찾지 못하고, 가쁜 숨만 쉬고 있었다. "용길아! 형이 왔다. 잘 가거라. 성실하게 이 세상을 살았다. 저 세상에서 편한하게 살라"라고 말을 건네고 손을 잡아 보았다. 

 

평소에 나를 많이 의지하고 따랐던 동생이다. 동생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비가 오고 나면 맑은 해가 뜰 때도 있지만 동생에게는 그런 날이 많지 않았다. 헤쳐나가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에는 병마까지 붙어 투병 끝에 세상을 떴다. 나도 도움을 주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 큰 도움이 못된 것 같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 떠난 동생에 진심으로 마음으로는 위로를 보낸다. "열심히 살았노라! 진인사 지 천명이다."라고, 동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으나 하늘이 그 뜻을 받아 주지 않았으니,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다.

 

운명하고, 충남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운구하고 장례식장 사무실에 가서 장례계약 수속을 하고, 그날 밤은 1시가 지나 유성 동생집에서 묵었다. 24일 하루 문상을 받고, 25일 정수원에서 화장하고, 유골은 신풍리 산 묘역 조성 예정인 곳 옆에 임시 매장했다. 

 

장례식을 보면서용길의 아들 효중이와 딸 미연이가 일 처리를 잘 했다. '반듯하게 컷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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