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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향교

칠중성 아래에 자리한 적성향교(積城鄕敎)를 찾아서

by 仲林堂 김용헌 2023. 9. 17.

홍살문과 외삼문이다.
유생들이 공부하는 명륜당이다.
대성지성문선왕을 비롯한 25위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다.
유생의 기숙사인 동재이다. 동재 뒤에 느티나무가 있다.
유생들의 기숙사인 서재이다. 서재 옆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적성향교는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구읍리 476-2에 자리 잡은 옛 고을에 있는 향교이다. 지난 9월 16일 2023년 적성향교 추기석전 봉행하던 날 최상권 경기도향교재단 이사장 일행과 함께 적성향교를 찾았다. 대부분 향교는 구도심(舊都心) 복잡한 곳에 자리하고 있으나 이곳 향교는 한가한 시골 마을 같은 곳에 있었다. 그러나 마을 이름이 '구읍리(舊邑里)'이다. 그 뜻은 옛 읍이 있었던 마을이다. 향교의 이름 적성(積城)도 흔치 않은 이름으로 성(城)을 쌓은 곳이란 뜻이다. 성(城) 이름도 7겹이라는 칠중(七重)으로 칠중성(七重城)이다. 7겹의 성이니 대단한 성이라고 짐작이 간다.

 

홍살문 앞에서 서니 외삼문, 명륜당, 대성전이 일이관지(一以貫之)로 서 있고 그 위로 중성산이 솟아 있었다. 중성산에 유명한 국가 사적 437호 칠중성(七重城)이 자리하고 있다.

 

칠중성은 임진강 중류의 남쪽 강가에 있는 교통의 요지라 고구려가 남쪽으로 쳐들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고, 신라 처지에서는 핵심 방어선 중 하나였다. 칠중성 전투는 서기 638년부터 675년까지 4차례의 전투가 벌어졌고, 6.25 전쟁도 이 근처에서 벌어졌을 정도로 시대를 넘나드는 남북의 군사요충지로 알려졌다.

 

이곳은 남북한 군사분계선이 멀지 않은 최전방으로 남북한군이 대치하고 있는 곳이다. 군사요충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이 이곳 향교를 찾았을 때는 전쟁의 위협은 전혀 느낄 수 없었으며 평화로운 한적한 시골 풍경이었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전쟁의 상흔은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곳이다.

 

근처에서 6.25 전쟁 때 영국군 글로스터 부대 800명이 중공군 7만 명과 3일간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영국군실마리전투' 추모공원이 있다. 적성향교도 6.25의 참화에 모두 소실되었다. 남아 있는 것은 대성전 서쪽 담장 아래 옛 주춧돌 5개뿐이었다. 불에 타 없어진 향교는 1970년 복원을 시작하여 1971년 명륜당을 신축했고, 1975년 대부분 건물을 중수했다.

 

현재 향교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외삼문, 홍살문, 동재, 서재가 있고 서무와 동무는 없다. 그리고 교육관이 외삼문 동편에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공익계 양식 겹처마에 맞배지붕으로 방풍판이 있다. 명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연등 천장에 민 도리 집으로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파주시 향토 유적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적성향교는 6.25의 전쟁으로 건물이 소실되는 재난이 있었을 그럴 뿐만 아니라 적성현이 없어지며 관할 구역이 찢어지는 아픔이 있었다. 고려말부터 적성현은 고종 18년인 1895년 적성군으로 승격하였으나 일제강점기 1914년 적성군이 해체되고 파주시 적성면, 양주시 남면, 연천군 백학면으로 연천군에 편입되었다가 1947년 파주시로 편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정구채 전교께서는 "관할 구역이 행정구역과 다르니 불편한 점이 크다"라고 말했다.

 

적성향교 대성전 서쪽 담장 아래는 화산석 주춧돌 5개가 있다. 이 주춧돌은 아마 6·25 때 불타기 전 세운 대성전의 주춧돌로 추정된다. 자세히 보면 구멍이 있는 화산석이다. 이 주춧돌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김진석 장의가 다음과 같이 들려줬다.

 

후고구려를 건국한 견훤은 "나는 돌이 좀 먹어야 내가 망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이곳 한탄강 일대에 화산이 폭발하여 돌이 구멍 뚫린 돌이 생겼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돌이 하룻밤 만에 좀 먹지 않았느냐"고 했다. 말이 씨가 되어 궁예는 돌이 좀이 먹은 후 망했다고 한다.

 

적성향교는 6.25 전쟁에 모든 건물이 소실되는 피해를 받았고, 인구도 적으며 관할 구역이 2개 면이 파주시가 아닌 타 시군에 속한 지역으로 행정적으로 지원받기 쉽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도 정구채 전교를 중심으로 유림이 화합하여 성현의 공덕을 기리고 학문과 인격을 닦으며 덕행의 실천에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번 추기석전에 생존하신 원심전교 3분 모두 참석하여 보기 좋았다. 석전봉행도 손색없이 집례의 홀기 창홀에 따라 알자의 인도로 차질 없이 봉행하였다. 다만 아쉬운 것은 청년 유림이 많이 참여하여 유교가 활성화 될 수 있기 바람이다. 

대성지성문선왕 위패를 모신 신위전이다.
동국18현 신위를 모신 신위전이다.

 

홍살문 옆에 남도손 현감송덕비, 오경연 현감송덕비, 강한영 덕성면장 송덕비가 나란히 있다.
외삼문 앞에는 파주시 적성면장, 양주시 남면면장, 연천군 백학면장 등 3개 면장이 세운 유적기념비이다.
화산석으로 보이는 주춧돌 5개가 대성전 앞 서쪽 담장 아래에 있다.
주춧돌을 가까이서 보면 구멍이 뚫린 화산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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