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국 향교

유구한 전통을 잇는 대정향교(大靜鄕校)

by 仲林堂 김용헌 2023. 12. 25.

향교마을 표지석이다. 좌측 산 아래에 대정향교가 있고 그 뒤에 산방산이 보인다.
대정향교 대성전이다.

 

주차를 하고 명류당으로 들어가는 대성문(大成門)이다.

 

유생이 공부를 하는 명륜당이다. 기둥은 원형이고 굵으나 그 높이가 앝다.
유생들이 기술사인 동재이다.
유생들의 기숙사인 서재이다.
내삼문이다. 가운데 문은 신문으로 성현의 혼이 출입하는 문이고, 우측문은 들어가는 문이고, 좌측문은 나오는 문이다.
공부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신 곳이고, 제향을 올리는 대성전이다 보통 현에 설치한 대성전은 3칸이나 이곳 대성전은 5칸 맞배지붕으로 규모가 크다.
향교에서 의례와 예절 등 교육을 하는 의전당(儀典堂)이다.

 

고목이 이 향교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오랜 세월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대정향교를 지키고 있다.
대성전에서 전사청이 담 넘어에 있고, 배경에 산방산이 보인다.
제례준비를 하는 전사청이다.
정면에서 본 전사청이다. 이렇게 훌륭한 전사청은 보기 드물다.
화장실이다.
전사청에서 동재와 명륜당이 보인다.
동재에 있는 의문당 현판이다. 이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명륜당 옆에 있는 화장실이다.

 

 

지금의 제주는 삼국시대에는 탐라국이었고, 고려 숙종 10(1105) 탐라군이 되었고 고려 후기에 탐라군은 제주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선 태종 16(1416)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을 설치했다. 조선시대에 대정은 제주의 세 고을 중 하나였으나 1946년 군정법령에 의해 제주도를 전라남도에서 분리하여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을 두었으며, 대정은 남제주군 7개 면 중 하나의 면이 되었다. 옛 대정현 구역은 지금의 안덕면과 중문 일부 지역까지 포함되었지만, 지금은 대정읍으로 작게 남이 있다. 그렇지만 대정의 역사와 전통의 명맥은 대정향교에서 이어오고 있다.

 

나는 한반도에 몰아친 폭설과 추위가 지나간 후 지난해 1224(일요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3125-1번지 (2,219) 대정향교(전교 이자신)를 찾았다. 빗 낯이 이따금 뿌리는 흐린 날씨라 출입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그런지 향교에는 관리인 한 사람만이 지키고 있어 자세한 대화를 나눌 수 없어 아쉬웠으나 널찍하고 반듯하게 자리 잡은 향교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흡족했다.

 

대정향교는 태종 16(1416) 창건하였고, 효종 4(1653) 향교 터가 비좁고 지세가 나쁘다고 하여 목사 이원진이 지금의 단산 아래로 옮겨 세웠고, 순조 11(1811) 명륜당 현판을 주자 글씨로 달았고, 현종 원년(1835) 대성전을 중건하였다. 현종 12(1846) 추사의 친필로 의문당(疑問堂) 편액을 달았다.

 

대정향교는 기생화산 중 하나인 단산(158.1m) 아래에 넓은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추사유배지에서 서쪽으로 1.9km이고, 산방산까지는 남서쪽으로 직선거리 2km가 되는 곳에 전학후묘(前學後廟) 형태로 배치해 있다. 1971년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대정향교는 제주에 있는 3개 향교 중 가장 원형을 잘 간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명륜당은 영조 48(1772), 대성전은 헌종 원년(1834)에 다시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차장만 넓게 아니라 건물도 넓은 대지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대정의 향교는 육지의 향교와 크게 보면 같으나 자세히 보면 다른 점도 많다.

 

보통은 향교에 가면 우선 홍살문을 지나면 외삼문을 통해 들어가나 이곳 향교는 홍살문과 외삼문 없이 들어가는 문은 대성문(大成門)이다. 예전에는 홍살문과 외삼문도 있었으나 아마 앞쪽에 길이 나면서 없어졌지 않았나 생각된다. 대성문 들어서자 바로 만나는 건물이 명륜당이다. 명륜당은 5칸 우진각지붕이고 마루가 없고, 바람이 많은 바람을 피하려고 그런지 기둥은 원형으로 굵으나 높이가 낮았다. 방문은 창호지가 있는 문짝이었다.

 

대성전은 정면 5, 측면 3칸의 중설 향교 규모의 큰 건물이다. 전면 기둥이 원형으로 굵고 반듯하다. 창호의 문살은 좁고 모양이 모두 정사각형으로 강풍에 잘 견딜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대성전 월대 중앙에 대형 철제 향교가 있고 그 앞에 큰 석재 향합이 있었다.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는 3칸 사각기둥이고, 방문은 창호지가 아닌 나무 문짝이었다.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은 원형기둥으로 높이는 작지만 강건한 모습이다.

 

대성전은 정면 5칸과 측면 3칸 팔작지붕으로 역시 높이는 작지만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5성위, 송조 4, 우리나라 18현 등 27위를 모시고 있다. 동무와 서무는 없었지만, 대성전 동편 뒤쪽에 한 그루와 대성전 동편 앞쪽에 수 백 년 된 고목이 향교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대정향교의 자랑은 의례와 예절 교육 교실로 이용하며 회의실로도 이용할 수 있는 정면 4, 측면 2칸 팔짝 기와지붕의 의전당이 대성전의 서쪽에 있고, 제사 업무와 제관 입재 유숙할 수 있는 곳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면 5, 측면 2칸 팔짝 기와지붕의 전사청이 대성전의 동쪽에 있다. 널찍한 마당에 웅장한 전사청과 정면 4칸 측면 2칸의 우아한 의전당(儀典堂)은 대정향교의 위상을 말해 주고 있었다.

 

대정향교는 춘추 석전과 삭망일 분향을 올리고 있고, 서예교실, 다도교실, 시조창교실, 청소년 인성교육, 갈옷체험(땡감 염색)을 실시하고 있다. 서예교실은 매주 일요일 오후 4~6, 시조창 교실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2~4시에 의전당에서 실시하고 있다.

 

이자신 전교는 전화 인터뷰에서 "대정향교에는 성균관 임명장의 21명, 수습장의 15명이고, 유림 2,000명이 있다. 유림은 대정읍에 700여 명, 중문면에는 600여 명, 안덕면에는 500여 명이 있다. 비록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향교지만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며 사문 진작과 유교 발전에 앞장서겠다."라고 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