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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기술

올 처음 모내기를 보다.

by 仲林堂 김용헌 2023. 5. 20.

모내기 한 논이다.
기계로 심었지만 생육상태가 양호하다.
해가 뜨기 전 모내기 한 논의 풍경이다.
육묘상에 기른 모이다.
이양기로 심으니 수 백년 내려오던 손모내기에서 기계 모내기로 바꿨다.

오늘 새벽 수원시 권선구 입북동에서 올해 첫 모내기한 논을 보았다. 바로 며칠 전에 심은 것 같았다. 지금은 모내기 철이지만 들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 대신 기계가 하기 때문이다.

 

"모내기"를 보니 어린 시절 그머리(충청도 사투리 거머리)가 생각난다. 내 어릴 적에는 줄모를 사용하기 전 방틀모를 심었다. 방틀은 양쪽 끝에 철사 다리가 있어 한쪽 다리가 논에 박히고 앞줄 6포기와 가운데 줄 6포기를 다 심고나서 방틀을 들어서 돌려 앞 뒤 6주씩 계속 심는 방식이다. 한 사람마다 방틀을 가지고 6줄씩 심어 나간다.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이 빨리 심으면 앞 사람을 빨리 심으라 무언의 독촉을 받는다. 앞에서 심는 사람은 뒤에서 쫒아오며 심는 사람보다 앞서 나가려고 허리가 끊어 질 듯 힘들어도 쉬지 못하고, 그머리가 장단지를 뜯어먹어도 여유가 없어 그머리를 장단지에서 떼어 던지지도 못한채 모내기를 했었다. 

 

모내기는 한 해 농사의 시작이다. 모내기를 하려면 사전 준비작업이 만만치 않다. 논을 갈고, 물을 대고, 쇠스랑으로 갈아 두덕을 꾸미고 판판하게 써레질을 해야 했다. 낮은 논뚜렁은 흙을 바르는 "바르테치기(아마 충청도 사투리)를 했다. 씻나락을 담가 싹을 티우고, 못자리를 만들고, 모가 다 크면 모를 쪄서(뽑아) 기게로 지고 모 심을 논에 중간에 고르게 놓아야 했다.

 

그 시절에 모내기는 여러 사람이 함께 했다. 농사가 많은 우리집은 일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웃 사람을 모셔 왔다. 그 후 한동안은 논산역에 가서 모심는 일꾼을 모집해 데리고 왔다. 그 때는 서울 등 대도시에서 모심으러 시골로 내려와서 열흘 또는 보름간 모를 심고 아랫역으로 내려가서 다시 일을 하는 모내기꾼들이 있었다.

 

예전에 비하여 기계화되어 사람 대신 기계가 일을 하지만 그 중에서 모내기만큼 기계화가 잘 된 것은 없는 것 같다. 예전에는 뼈빠지게 일을 해도 양석(한 마지기에 쌀 2가마: 2섬) 소출밖에 얻을 수 없었지만 지금 편하게 농사를 지면서도 4섬 수확은 보통이니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었나! 우리 세대에 놀라운 발전이 이뤄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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