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 세 가지 중 하나가 "나누며 살지 못했다."라고 죽음을 많이 목격한 의사가 전하는 말이다.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라는 옛 말이 있듯이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빈 손으로 왔다가 죽을 때는 한 푼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빈 손으로 간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평생을 돈을 쫒으며 한 푼이라도 더 모으려고 애를 쓰며 산다. 이웃의 어려움은 거들떠 보지 않고 내 배만 채우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흔하다. 나누며 사는 것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올 해 큰 나눔은 못했지만 작은 나눔은 여러 차례 했다. 용역사업으로 비름과 상추 시험 재배를 하면서 덤으로 비름과 상추를 많이 수확했다.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은 비름과 상추 생산이라 수확하여 이웃이나 친지에게 많이 나눔을 했다. 시험포장의 주변에 번외 작물로 옥수수, 가지, 호박을 재배했으며, 이것 또한 이웃과 친지와 나눴다.
이렇게 이웃과 나눌 수 있음도 나 자신이 이타심(利他心)이 많아서 그렇다고 자위할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내게 주어진 환경에 의해서 나눔이 가능한 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런 환경은 누구의 힘으로 되었을 까? 나의 주변에 있는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나눔도 결국은 내가 받은 도움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눌 때는 기분이 좋다. 작은 농산물이라도 하나의 선물로 남에게 남에게 주면 받는 사람도 기분 좋지만 나눠 주는 나 자신도 기분 좋다. 나눔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나눔을 통해 나로 하여금 그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다면 나의 자존감을 높이게 되며, 나 자신은 이것으로 보람을 느낀다.
오늘은 전혀 생각치 못한 일이 있었다. 집사람 지인으로부터 "고구마를 캐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집사람과 함께 네비를 찍고 의왕시 왕곡저수지 근처에 있는 고구마 밭에 도착하니, 고구마 농사 주인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준다.
밭 한 두둑을 가리키며 여기부터 저 끝까지 캐라는 것이다. 고구마 줄기가 많지 않았다. 지상이 부실하면 지하가 풍성한게 고구마의 특성이다. 고구마 밑이 많이 들어 있을 것 같은 감이 왔다.
우선은 고구마 넝쿨을 뽑고, 비닐을 제거했다. 집사람은 호미로 고구마를 캤고, 나는 작은 쇠스랑으로 겉에 있는 흙을 긁었고 다시 삽으로 흙을 파냈다. 고구마가 제법 들었다. 캐낸 고구마는 붉은 색으로 이쁜 모양이다. 아마 30여분 작업하고, 캐낸 고구마를 박스에 담으니 큰 박스에 두 개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량이다. 두 박스를 차에 실고 반 박스는 안 가지고 간다고 하자, 주인인 "반 박스도 다 가지고 가서 아들에게 주라고 한다."
내가 심지도 않은 고구마를 그냥 캐 가지고 가라 하니! 이런 일도 처음이다. 공짜 선물 받으니, 기분 좋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도 있지만 오늘은 "순수한 공짜"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해 타산이 아니라 순수한 줌이라 생각하니 더 즐거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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