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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山金氏 이야기

퇴어자 김진상이 쓴 광산김씨 제병(祭事 屛風)

by 仲林堂 김용헌 2020. 11. 16.

병풍은 하나의 가림막으로 쓰이며 그 종류는 일월병, 장생병, 화조병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제사용으로 사용하는 병풍을 제병(祭屛)이라고 한다. 광산김씨 문중에서 제례로 많이 사용하는 제병은 퇴어자(退漁子) 김진상(金鎭商)이 지은 삼언8행시를 쓴 8폭 병풍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祭有本(제유본) 제사는 근본으로 한다.

誠與敬(성여경) 성(성실)과 경(존경)을

 

祭有式(제유식) 제사는 의식이다.

簡而淨(간이정) 간(간소하게 단도리)이며 정(깔끔)으로 하는

 

交神明(교신명) 신과 밝게 교신하며

如受命(여수명) 천명을 받듯이 한다.

 

如事生(여사생) 일(제사)을 살아 계신듯 하면

來福慶(래경복) 경사와 복이 온다.

 

아래 사진은 11월 15일(음력 10월 1일) 강원도 춘천시 칠전동 3길 8 모술재에서 봉행한 2020년(병자년) 광산김씨판군기감사공 세일사에서 사용한 제사 병풍이다.

 

퇴어자는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여익(汝翼), 호는 퇴어자(退漁子). 김반(金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판 김익훈(金益勳)이고, 아버지는 김만채(金萬埰)이며, 어머니는 이항(李杭)의 딸이다. 그는 1699년(숙종 25) 진사가 되고 1712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설서(說書)·지평(持平) 등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1720년 홍문록에 올라 수찬(修撰)을 지냈다. 1722년(경종 2) 신임옥사로 무산(茂山)에 유배당하였으나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풀려나 이조정랑으로 등용되었다.

이어 수찬·필선(弼善)·부교리(副校理) 등을 역임하던 중 1729년(영조 5) 기유처분(己酉處分)으로 실시된 탕평책에 반발하여 퇴거하기도 하였으나 다시 환로에 진출하여 1735년 부제학(副提學), 1738년 대사성, 1740년 대사헌을 거쳐 1753년 좌참찬에까지 이르렀다.

광성군(김정) 세일사에 차린 제상과 병풍이다.

 

위 작은 글씨를 번역하면 "우는 선조 퇴어자공이 제작한 제병(제사병풍)의 글이고, 단군기원 4335년 임오 정월 광성군 20대손 광수가 존경하며 썼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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