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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금능석물공원 조각에 이야기를 불어 넣다.

by 仲林堂 김용헌 2019. 7. 14.


우리 일행은 7월 8일 오전 9시 제주시 한림읍 한림로 176 "금릉석물공원"을 찾았다. 이 공원은  장공익(1931-2018) 선생이 오직 돌 조각에 평생 진력을 다해 만든 작품을 전시한 공원이다. 그의 이력을 보면 1943년 한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후 해병으로 5년 근무했으며, 제대 후에는 석공예사를 차리고 오직 석공예만를 하며 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공원에는 그가 한 평생 남긴 작품 3,5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비록 배운 것은 없더라도 무슨 일이든 한 가지 일에 정성을 쏟는다면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구스타프 비겔란의 조각공원이 생각났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생사고락 아주 순수하게 표현하고 있다. 제주에는 여러 볼 거리도 많다지만 이 공원은 이번 여행 중에서 내가 본 가장 인상이 깊었던 곳이다.


장공익 선생은 명장으로 기능인으로 알려지기보다는 조각예술가로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원의 이름도 부르기도 어렵고 의미도 알 수 없는 "금릉석물공원"보다는 "장공익 조각공원"으로 하면 좋지 않을 가 생각한다.


장공익 선생이다. 온화한 인품이다. 그 모습은 득도(得道)한 듯하다.

     

선생은 배운 것은 초등학교 수학뿐이나 명장 증서를 노동부장관으로부터 받았고, 이명박,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탑은 일붕기원사리탑(一鵬祈願舍利塔)이고, 뒷편에 있는 관음상은 일붕기원관음성상(一鵬祈願觀聖像)이다. 선생의 호가 일붕이 아닌가 싶다. 선생께서는 한번 날개짓을 하면 9만리를 날 수 있다는 한 마리 붕새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인간의 고통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이 되고 싶었던 것이라. 일봉의 후손은 사리탑에 일붕의 사리를 모셨다고 한다.   


이 공원 입구에 조롱굴이 있다.


인간의 고통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이 어리러운 인간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선과 악이 같이 존재한다. 때로는 선을 물리치고 악이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악을 경계하고 있다.


말을 탄 청년이 뱀의 목을 찌르고 있다. 이 조각은 휼민상(恤民像) 조각 작품이다. 제주에 내려오는 전설로 김령사굴에는 큰 뱀이 살았는데 농민의 피해가 무척 커 이 뱀을 달래기 위하여 처녀를 받쳤다고 한다. 이 무서운 뱀을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었는데, 서린이라는 청년이 19살에 제주판관으로 부임하여 이 뱀을 칼로 찔러죽이고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그 후 서린 판관은 이유도 없이 않다가 21살에 죽었다고 한다. 제주 백성을 구휼한 판관을 추모하기 위한 조각이다.    

자모(子母)상이다. 어머니는 자애스런 모습이다. 눈은 아래로 지긋이 보고 있다. 제주의 어머니는 먹을 것도 없는 땅에 바람 속에서 강인하게 고난을 뚫고 살아 왔다.  

천진난만한 하루방이다. 본디 사람은 선하다.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이다.


아홉동자가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에서 놀고 있다. 눈 껍풀을 찟으며 당겨보기도 하고, 입을 찟어고기도 하고, 수염을 잡고 있다. 또 다른 아이는 배 위에서 놀고, 미끄럼 타기도 한다. 어릴 적에는 깨끗한 마음으로 때가 묻지 않고 천진난만하다.


신선이 된 할아버지 상이다. 단 한번밖에 없는 인생 이렇게 살라고 한다. 배가 부르니 먹을 걱정도 없겠다 남에게 악하게 하는 일이 없고, 그러니 세상은 술술 가며 오래 오래 살으니 복이 아니랴! 

 

장공익선생의 사리는 사리탑에 모셨다는 표지석이다.


이 석물이 장공익 선생이 자화상으로 보인다. 부처와 같은 모습이다.


연자방아를 돌리고, 한 어멍은 돌아 가는 연자방아에 보리를 넣으며 살피고 있다. 말이 연자방아를 끌고 있다. 방아를 찧으려면 남편은 말을 몰고, 아내는 씨앗을 방아에 넣어야 했다. 이렇게 제주의 백성들은 살았다. 


명주 옷감을 만들려고 풀을 메기는 것 같다.


뙤약볕에 일을 하고 잠시 그늘에서 쉬고 있다. 편안한 모습이고, 행복해 보인다.


며느리는 멧돌을 돌리고, 시어머니는 살펴보고 있다. 남편은 뒹글며 놀고 있다. 제주에서 여성은 강하다.


가만히 방안을 들여다 보니, 사랑을 하고 있는 듯하다. 장공익 선생은 하나의 숨김 없이 제주인의 삶을 표현했다.

 

외양간이다.


코뚤레를 하지 않은 소 뿔에 끈을 매어 소를 몰고 있다. 한 어멈은 박아지에 개똥을 받아 내고 있다. 농사에 똥이 얼마나 소중했나 짐작이 간다.

 

앉아 있는 할아버지다. 늙으면 걷기도 힘들다.


배가 터져 있다. 사람 본능적으로 식색지성(食色之性)이 있다. 그런데 중용을 모르면 이렇게 배가 터지고 만다. 적당하게 먹고 즐겨야지 과하면 안된다.


말 한마리와 소 한마리를 가진 사람이다. 말과 소는 큰 재산이다.


똥을 누고 있고, 그 똥을 돼지가 받아 먹고 있다. 할멈의 얼굴은 시원하다.


동자들이 물놀이하고 있다. 서로 붙이치면서 큰다. 싸우면서 큰다.


새끼를 꼬고 있다. 제주는 바람이 많아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촘촘하게 지중을 새끼로 동여 매야 했다.


아이들이 놀고 있다.


대장간이다.


며느리가 아이를 씻기고, 할머니는 그 모습을 흡족한 모습으로 엿보고 있다.


골목에 한 아이가 울고 있다. 우측은 저승골목이라고 가리키고 있다. 인은 넓은 길도 좁은 길도 있고, 편한 길도 험한 길도 있고, 꼬부랑 길, 외나무다리 길, 돌아 올수 없는 길, 저승길, 대신 갈수 없는 길이다.


"삶이란 밝은 곳을 행하여 가는 길을 가는 것"이라고 했다. 선생의 인생 철학이 들어 있는 표지석이다.


일행과 함께 나도 저승길을 미리 가고 있다.


험하게 생긴 사람들이 저승길을 가는 사람을 뚜러지게 바라 보고 있다.


심판대 앞으로 가고 있다.


"너의 죄를 네가 알렸다. 나는 알겠다"고 한다. 저승길은 돌담이 굽이굽이 돌아 싸여 있었다.


저승길을 나오니  큰 돌하루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돌하루방은 눈이 튀어 나온 게 우리 한국인의 얼굴은 아니다. 이국적인 모습이다. 제주의 먼 조상은 이런 얼굴을 가졌을 가?


눈이 역시 튀어나온 한 남자이다. 이 남자도 한국인은 아니다. 배 속을 들어내고 있다. 비록 이방인의 얼굴은 하고 있지만 입모양으로 보아서는 빙그레 웃는 모습이다.


못난이가 기둥을 붙잡고 있다. 못난 백성이 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


장공익 선생이 생각하는 제주의 모든 이미지이다. 하늘, 땅, 해, 달, 별, 은하, 구름, 바람 등 우주와 천체가 있고, 제주로 내려 오면 해룡, 제주섬, 한라산, 백록, 계곡, 설문대 할망, 오백장군, 삼성신, 삼승할망, 동자북, 볼하르방, 거욱대, 사람, 말, 그리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원혼과 해골이 있다.


위에서 이야기 한 제주의 모든 형상을 조각해 놓았다.


장공익 선생의 대표작이다.


제주를 방문한 세계 정상에게 기념품으로 드린 하루방이다.


하나 하나가 힘겨운 역사가 있어 이뤄지게 된다.


끌고, 밀고, 당기며 발버둥치면서 끌자 바퀴는 움직이고 있다. 이 모든 작품은 이런 역경을 딛고 탄생했다.


돌하루방이 제주를 보호합세 하고 있다.


고난을 이겨낸 할멍이다.


편하게 누어 있는 할망이다.


힘들면 업고가고, 서로 돕는 이웃이 있는 제주다.


하루방이 꽃 가마를 탔다.


장공익 선생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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