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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북유럽

스웨덴 바사박물관(Vasa Museum)

by 仲林堂 김용헌 2018. 7. 26.

일행은 스톡홀롬항구를 조망한 후 스웨덴 왕궁을 관람한 다음 행선지는 바사박물관이었다. 버스는 고풍스런 건물 앞에 주차를 했다. 일행은 그 건물로 입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우중충한 시멘트 건물로 갔다. 좀 의아했지만 따라가니 그곳이 유명한 바사박물관(Vasa Museum)이었다. 주차한 곳은 나중에 알고 보니 노르딕박물관(Nordisk Museet)였다.


바사박물관은 스웨덴의 바사왕조 때 구스타프2세 아돌프(Gustav II Adolf)가 명하여 건립한 전함이다. 이 배는 1628년 8월 10일 수 많은 사람들을 초청한 가운데 진수식을 열던 그날 1km쯤 가서 축포를 쏘는 순간 침몰했다. 침몰 직접 원인은 설계 잘못이었다. 이 배를 건조 책임을 맡은 사람이 완공 1년전에 죽었고, 조선에 관하여 잘 모르는 국왕이 욕심으로 당초 1층에만 대포를 장착하는 설계였으나 국왕이 2층에도 대포를 설치하라고 해서 2층에도 포대를 설치했다고 한다. 무거운 대포는 중심을 나출 수 있은 아래에 설치하는 해야 되나 안전을 무시하고 2층에서 설치하여 침몰되었다고 한다. 이 배는 길이가 69m, 높이가 52.2m, 돛대가 4개, 선원 142명, 전투병력 300명으로 총 승선인원이 445명이었다. 대포가 총 64문이 설치되었다. 당시 최고의 무적함대라고 할만큼 엄청난 전함이었다.


국왕이 잘 못 해 침몰하여 어느 누구도 이 배에 관해 말 못했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 후 333년이 지나 1961년 우연하게 발견되어 인양되었고, 그 다음 해 임시 박물관으로 옮겨 보존처리를 했고, 1990년 바사박물관으로 개관하여 지금 스웨덴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으로 알려졌다.


이 침몰 배는 놀라울 정도로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 원인은 염분이 다른 바닷물에 비하여 낮아 세균이 번식을 못하며, 빙하에서 끊임없이 물이 흘러 나와 물이 깨끗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자 전등은 드문 드문 있었지만 어둠 컴컴했다. 아마 보존을 위하여 어둡게 했는지 모르지만 구경에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 배를 보고서 몇 가지 점에서 놀라왔다. 배가 너무 커서 놀랐고, 보존이 너무 잘 돼 놀랐다. 그리고 배에 있는 수 많은 조각품에 놀랐다. 세상 어느 곳에서 이런 곳은 없을 것 같았다. 


한 때 국왕이 무적 전함을 만들겠다는 욕심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333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나자 그 때의 비극은 하나의 역사로 남았을 뿐이고 이제 그 비극은 관광자원으로 세계 속에서 빛나고 있으니 세상일이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영원한 비극은 없다는 생각이다.


지도: https://goo.gl/maps/p7Sr83xmbZD2


바사박물관 겉 모습이다. 침몰선은 이 건물의 안에 있다.


배 앞쪽에서 본 배의 모습이다. 배는 너무 커서 한 화면에 잘 안 잡혔다. 어둠 컴컴해서 사진 촬영이 쉽지 않았다. 조명이 없으니 아사를 높이고, 조리개도 좀 나췄지마 촬영속도는 늦다. 카메라를 흔들리지 않게 인물 사진은 움직이지 말라하며 사진을 찍었다.


배 아래 쪽은 지하 1층에 있다. 배 밑바닦은 바다의 지면으로 추정된다.


놀라웁게 하나의 부패도 없이 온전하다.


돛을 다는 그물이 천정 높이 보인다.


뱃머리 장식이다.



배 겉에 많은 장식이 있다. 이런 장식이 배의 안전에는 쓸모 없거나 해가 될 것이다. 그라나 지금은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 관광객에 눈길을 끌고 있다.

일행이 포즈를 취했다.


제주도에서 오신 부부이다.


시흥에서 오신 친구팀이다.






배미의 장식이 참 화려하다.


인물 조각 작품이다.


멋지나 비극의 전함이다.


갑판이다.




뱃머리이다.



일행이 타고 온 버스가 노르딕박물관 앞에 주차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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