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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북유럽

에르미타시 미술관 관람

by 仲林堂 김용헌 2018. 7. 21.

여름궁전을 관람하고 서둘러 상트페테르부르그로 돌아와 한 호텔 내 한국인 경영 일식당에서 한식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라 알려진 에르미타시 미술관으로 갔다. 이 미술관은 주로 명화가 많기 때문에 미술관이라고도 부르지만 미술품 이외도 유물이 많아 박물관이라고도 부른다. 


우리 일행이 7월 6일(금) 점심식사를 한 후 이 에르미타시에 도착하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버스에서 도착 전 이 박물관을 입장하려면 입장객이 너무 많아 몇 시간 기다리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관객이 많지 않아 바로 입장했다. 가이드는 이렇게 관람객이 적은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월드컵 기간 1개월간 중국인 비자를 발급 중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하나의 비오는 날씨도 한 못을 하지 않았나 쉽다.

지도: https://goo.gl/maps/7wAgDYsi9V82


이 미술관이 "어떻게 수 많은 세계 최고의 미술품을 수집했을 가?"를 알려면 러시아의 근대사를 알아야 한다. 러시아는 몽골의 지배를 받다가 이반 3세 때 독립했고, 이반 4세 때 연합체적인 국가의 모습을 가췄다. 그러나 그 후의 정권은 강력하지 않았다.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제국을 1721년 세우고 서구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서구의 일원으로 간신히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의 건국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표트르 대제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표트르의 두번째 왕후인 예리카리나가 왕위를 계승했으나 표트르 2세의 왕세자의 부인이 옐리자베타가 구테타를 일으켜 왕권을 찬탈했고, 열리자베타가 병으로 죽자 표트르 3세가 왕위에 올랐다. 표트르 3세의 왕후인 예카테리나 2세가 남편인 표트르 3세를 폐위시키고 자신이 황제가 되었다. 그녀는 러시아를 부흥시킨 대제로 예카테리나 대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카테리나 2세는 러시아를 잠자는 북극곰에서 유럽의 신흥강자로 견인한 리더이다. 표트로 대제 사망 후 개혁과 성장은 멈추었다. 그녀는 영토를 넓혔으며, 행정과 제도를 개선했다.


표트르 대제의 딸 Jason이 오늘날의 겨울 궁전을 건설했으나 그 후 1764~1787년 예카테리나 대제는 궁전 옆에 ‘소(小)에르미타시’와 ‘구(舊)에르미타시’를 건설하고, 겨울 운하를 따라 그것을 연결해 라파엘 회랑을, 그리고 1783~1786년에 에르미타시 극장을 만든다. 1799~1851년 니콜라이 황제가 화랑을 하나 추가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신(新)에르미타시이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밖으로 실내 정원이 나 있는 ‘시계의 방’에서 손님들을 접대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때 그녀는 겨울 궁전을 프랑스어 '에르미타시’(은둔지, 인적이 없는 방)라고 즐겨 불렀다고 한다. 이것이 에르미타시 명칭의 유래이다. 


나는 10여년 전 이 박물관을 러시아 상트페테브르그 9일간 체류할 때 한번 방문한 적이 있다. 러시아 현지인의 소개로 방문했지만 의사 소통이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술에 대하여 잘 아는 바도 없어 그림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짧은 시간 방문이지만 현지 가이드의 해설을 들으면서 작품을 감상하니 어렵지만 그래도 이해가 좀 되었다.


박물관은 소에르미타시, 구에르미타시, 신에르미타시, 겨울궁전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영문 팜프렛을 보니 방이 400개였다. 규모가 커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기 쉽지 않았다. 하나 하나 작품을 자세히 보려면 최소한 하루는 걸리겠지만 우리 일행은 2시쯤 걸려 관람한 것 같다.


네바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본 에르미타시 미술관 후면이다.


앞쪽 측면에서 본 에르미타시 미술관이다. 나무가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 일행은 후문으로 입장하여 전면을 잘 볼 수 없었다.


에르미타시 미술관 내부 배치도이다. 일련번호가 붙어있다. 400번이 마지막 방이다. 우리나라, 일본, 중국의 유물은 Far East and Central Asia로 빨간색 방으로 351-375번방이다. 아마 그림은 동양 유물이 적기 때문이 아닌가 본다.


궁전으로 들어 가는 회랑이다.


2층 올라 관람한다. 대리석 기둥이 참으로 매끈하다.



황제가 앉는 의자가 단상 중앙에 있다. 


궁전의 중심에 있는 방이다. 왼 방안이 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최고의 장식으로 치장해 있다.


창을 든 두 명의 전사 조각이 벽면에 있다.


돌기둥을 금으로 입혔다.


이곳 홀도 화려하다.


두 아이의 조각도 금이다.


장식의 중앙에 독수리가 있다.


천사도 금옷을 입었다.


화려함의 극치이다.


천정도 금 조각품으로 치장되어 있다.


이 여인이 옐리자베타가 아닐가?


용사의 방에 많은 관객이 벽면에 있는 용사의 얼굴을 보고 있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 군인들이다.


또 하나의 궁전에 황제가 옥좌(금좌)이다.

 

황제가 사용했던 방이다. 이 방은 바닦에 있는 무늬와 천정에 있는 무늬가 똑 같다.


바닦에 새긴 문양이다. 이 문양이 천정에 같은 위치에 있다.


천정의 문양이다.


이 여인이 러시아를 부흥시킨 에카테리나 황제이다. 그녀는 남편을 권좌에서 끌어 내리고 자신이 황제가 되었다. 남편은 바로 유배된지 8일만에 원인 모르게 사망했다고 한다. 그녀는 농업과 상공업을 진흥시켜 국력은 크게 향상되었고, 문인들을 후원하는 등 문화적인 면에서도 업적을 거뒀다. 예술에도 지대한 관심과 후원을 아끼지 않아서 유럽 각지에 퍼져있는 그림, 조각들을 수집, 현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만들었다.


남자 애인을 많이 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심지어 이미 60세가 넘어서 죽음을 앞에 두던 순간까지도 수많은 정부들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예카테리나 2세는 몇년에 한번씩 정부를 갈아치우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헤어진 정부들에게 막대한 재산과 영지, 관직 등을 하사하여 후히 대접하였다.


아름다운 탁자를 살피고 있다.


이 박물관에서 유명한 명품 중 하나가 이 공작시계이다.


이 공작새가 한 달에 한번(?) 시간을 알린다고 한다. 그 때 수 많은 관객이 모인다고 한다. 

 


가이드가 설명을 잘 한 유명한 명화이다.


이 작품도 유명한 명화이다.


예수의 탄생을 그린 작품 같다.


웅크린사람이란 조각품이다. 이 작품도 유명하다.


이 작품도 유명한 작품이다.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탕아를 아버지가 받아주고 있고, 늘 잘난 형이 아버지와 동생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 유명한 명화에 많은 관람객이 몰려 있다.


1층으로 내려 오니 대리석 기둥이 눈길을 끈다.


로마의 목욕탕?으로 보인다.

이집트관의 미라이다. 이집트관은 규모가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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