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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족 이야기

제17회 연금수필문학상 작품 응모(2018. 6. 24)

by 仲林堂 김용헌 2018. 6. 24.


열차에서 자리 양보


수원역에서 호남선 행 무궁화열차를 탔다. 평택역에서 정차 후 한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집고 한 걸음 한 걸음 어렵게 내딛으면서 들어온다. 그는 내 뒤 빈 자리에 앉는다. 잠시 후 한 젊은이가 할아버지 앞으로 와 표가 있느냐 묻는다. 할아버지가 일어나자 그 옆에 앉았던 한 청년이 그 노인에게 자신의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그 노인이 사양하지만 청년은 괜찮다며 자리를 내준다. 그 노인은 청년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청년은 조치원이라고 대답한다. 그 날(55)은 토요일이며 어린이날이라서 빈자리가 없었다.


열차가 조치원에 도착하고는 다시 한 젊은이가 그 할아버지 앞으로 와 표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 말을 듣고는 이번에는 내가 일어날 차례라고 생각하고 나는 "저는 아직 서 있을 만 하니 어르신께서 앉으시오"라며 노인에게 말씀드렸다. 그러나 그 노인은 내 뒷좌석 의자팔걸이에 걸터앉으면서 괜찮다고 하지만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나는 다시 앉으시라고 극구 권했다. 결국은 그 노인은 내 자리에 앉았다. 자리를 양보하니 조금은 몸은 힘들겠지만 마음은 편했다.


노인은 나에게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논산'이라고 대답하자 그도 '논산'까지 간다고 했다. 나는 좌석 앞 의자 뒤에 달린 주머니에는 '유인물'을 챙기지 않고 그 대로 놓고 일어섰다. 그 노인은 내가 놓은 유인물을 읽어보더니 나에게 자기가 가지고 온 유인물을 가방에서 꺼내 읽어 보라며 준다. 나중에 보니 그 노인이 준 유인물은 김주식이란 사람이 쓴 우리나라 몇몇 애국 명문가에 관한 내용이었다.


젊은이는 지식정보사회에 익숙하지만 노인은 그렇지 못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컴퓨터나 휴대폰에서 기차표를 예매한다. 나는 이번에 휴대폰 앱 코레일톡에서 예매하여 좌석이 있었다. 코레일톡에서 예매는 처음에 회원가입하고 로그인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리고 첫 번 카드결재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2-3분이면 예매가 끝날 수 있어 참 편하다. 대부분의 노인은 컴퓨터나 휴대폰을 잘 다룰 줄 몰라 예매 없이 열차를 탄다. 기차역으로 직접 역에 와서 예매할 수도 있으나 몸이 불편한 노인이 그러기도 쉽지 않다. 이렇다보니 차표 예매를 손쉽게 하는 젊은이들은 다 자리가 있고, 예매 못하는 어르신은 입석으로 타고 있다.


논산역에 열차가 도착하자 나는 빠른 걸음으로 역전을 빠져 나와 역전버스정류소로 갔다. 나의 최종 행선지는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휴정서원이다. 휴정서원이 있는 신풍리 행 버스는 910분이라는 걸 인터넷 검색으로 미리 알아보았다. 한참 후 신풍리 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 노인이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만나니 인연이다. 그 노인은 내게 감사하다면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는 올해 86세이고, 논산중학교 2회 졸업생이고, 농촌지도소에서 근무했으며, 자신이 논산중학교 교장, 강경상고 교장 등을 역임했고, 논산 소재 천태종 삼화사(논산시 강산27-8 소재)를 창건했다고 말했다. 서로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며 대화는 계속되었다. 비록 잠시 만났으며 나이도 많이 차이가 나지만 대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앞으로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 것 같지만 사귀면 좋을 것만 같은 분이었다.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그 노인에게 내 명함을 드렸다. 그 노인은 삼화사까지는 택시를 타고 가도 될 만한 가까운 거리인데 간신히 걸음을 걸을 수 있으면서도 한참을 기다려 버스를 탔다.


나도 신풍리 행 버스를 타고 휴정서원에 가서 춘향사(春享祀) 봉행을 마치고, 시내버스와 기차를 이용하여 수원으로 돌아왔다. 이날은 어린이날이라 나를 제외한 우리가족도 용인 민속촌에서 보냈으며, 나는 용인시 수지에 있는 한 식당에서 가족과 합류했다. 저녁 식사 중 그 노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노인으로부터 어떤 이득을 보겠다는 생각도 하나 없었지만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필히 이웃이 있다는 덕불고필유인(德不孤必有隣)이란 글이 생각났다.


자리를 양보하는 순간 두 가지 마음이 있다. 하나는 내 몸이 편한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나만 편하면 되지 뭘 양보해 하는 마음 즉 신체상 욕구에 따라 나타나는 임심(人心)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몸이 불편하더라도 어려운 남의 처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양보하는 마음 즉 이는 원래 있는 마음으로 의리를 따라 나타나는 도심(道心)이다. 서경(西經)사람들의 마음은 위험해져 가고 있다(人心惟危: 인심유약)며 도심(道心)은 희미해지고 미약하다(道心惟微: 도심유미)”고 했다. 특히 물질만능의 현대사회에서 도심은 더 작아지고 있다.

내가 이번에 자리 양보는 도심이 인심보다 커서 할 수 있었다. 도심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본래 가지고 있는 의로움을 키웠고, 자리를 양보해 줄 수 있을 만큼 신체상 건강했기 때문이다. 도심을 높일 수 있게 한 내 자신에게 감사를 보낸다.

백세시대를 맞이하여 더 많은 노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약 문화가 없어지지 않는 한 노인은 정보사회에 어두워 입석표로 가고, 젊은이는 정보에 눈 밝아 좌석표로 가게 되는 것이 더 흔할 것이다. 몸이 불편한 어른은 서 있고, 몸이 건강한 젊은이는 앉는 예절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동방예의지국이란 우리 선조들이 쌓은 예절은 땅에 떨어지고 있다. 예약문화가 어쩔 수 없다면 인심보다는 도심을 높일 수 있는 도덕 부흥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용헌

010-8988-6324

농촌진흥청

연금수급자와 관계: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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