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창 애국지사 순국 73주기 추모제가 봉행되고 있다.
독립애국지사 김용창 선생 순국 73주기 추모제가 6월 11일 11시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상두리에서 화성시장, 대한노인회 화성지회장,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장을 비롯한 지역인사, 마을 주민, 광산김씨판교공종중 임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있었다.
초헌관에 김용창 애국자시의 동생 김용무, 아헌관에 채인석 화성시장, 종헌관에 김종헌 광산김씨수원화성종친회 자문위원, 축에 김용국, 집사에 김선근과 김희중씨가 각각 맡았다. 이날 추모제는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사신례가 있었고, 이어서 아헌을 한 채인석 화성시장의 추도사와 이윤옥 시인의 추모시 낭송이 있었다.
독립애국지사 김용창은 이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덕수공립상업학교 야간반에 재학 중 "이번 전쟁에 일본이 패한다 하더라도 조선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오히려 못 이기는 편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민족정신 고취시켰다. 또한 동년 5월 초순 보험관리소 대변소의 판자벽에 연필로 “반도 2천6백만 동포여, 자 일어서라! 조선독립의 때가 왔다. 지금 와서 지원병이니 징병이니 하고 있다. 아아! 가련하도다! 라고 써 붙이는 등 민족정신 고취에 진력하다가 소위 치안 방해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었다. 1944년 12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4월3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윤옥 시인
나라가 제대로 돌아갔으면
아홉 형제 맏이로
줄줄이 동생들 챙기며
부모님께 효도했을 청년 김용창
식민지 땅에서 태어나
우편국 사환으로 뛰었지만
어찌 푸른 꿈까지 버렸을까
조선은 독립의 때가 곧 온다고
힘을 모으자 동포에게 외치던 몸
왜놈에 잡혀 모진 고문으로 옥중 순국하던 날
삼천초목도 울고 하늘도 울었어라
금쪽같은 아들 앞세운 아버지
피 토하며 뒤따르고
홀몸으로 아홉 형제 거둔 어머니
휘어 틀린 허리 사이로 무심한 세월만 흘러
모두가 떠난 상두리 고향마을엔
오뉴월 고추잠자리 한 마리
저 혼자 맴도네
이윤옥시인의 시를 대독한 우리문화신문 기자인 양인선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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