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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식물과 꽃

식물 속으로 들어가다.

by 仲林堂 김용헌 2018. 5. 10.

세상에는 이치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 이치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格物) 앎에 이른다(致知)고 했다. 나는 5월 9일 서호공원에서 햇살이 쏟아지는 포근한 날씨에 여러 식물을 살펴 보았다. 나의 입장이 아니라 식물의 입장에서 식물 속으로 들어가 본다.


나의 이름은 노란붓꽃이다. 농사철이 되면 창포가 핀다고 했다. 하얗게 세상을 놀라게 하던 조팝나무 꽃을 지켜 보았던 붓꽃이 이제 내 차례라며 앞으로 나선다. 녹색의 몸속에 노란 자태의 옥동자를 키워냈다.     


작은 연못의 노란붓꽃이 마을에 이제부터 잔치가 벌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멀지 않은 날에 초록무대에 노랑향연이 펼쳐질 게다.   


조팝나무 잔가지 하나 하나 뭉쳐 한 무리가 되었고, 한 울타리가 되었다. 좁쌀이 하나 하나 모여 한 섬을 이뤘으니 이목을 끈다. 가지마다 잎새가 달려 햇빛을 받고, 뿌리로부터 물을 받아 공장을 돌려 몸을 불리고 있다.   



조팝나무 잎새다. 지금은 아무 색을 칠하지 않은 깨끗한 바탕이다. 지금 그 바탕은 순수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 바탕에는 때가 낀다. 세상 풍파에 어쩔 수 없다지만 순수함을 얼마나 유지하며 살아가느냐?가 관건이다. 밝은 모습으로 살아 간다면 그 삶은 선비와 같을 테고, 그 바탕이 때가 끼고 찟겨 지면 고달픈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영산홍 꽃이 시들고 있다. 소풍을 나왔던 연산홍은 한 순간 끝나고 그 영혼은 저 하늘 나라로 올라가고 그 육신이 썩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고 있다.


공원 풀 속에 씀바귀 꽃이 활짝 피었다. 누구의 돌봄도 없어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자리를 확고하게 잡고 있다. 별 볼일이 없는 잡초 중의 하나라고 뽑혀지기도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자신은 당당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뱃는다는 속담과 달리 그 쓴맛은 은근하게 입맛을 땡겼다. 한 평생 단 맛은 얼마나 되랴? 쓴 맛을 보는 게 일상이지.  


봄의 전령사 산수유나무이다. 노랑 꽃 산수유는 작은 열매를 만들었고, 지금은 잎이 햇살을 받아내고 있다. 엽맥(葉脈)이 단자엽식물과 같이 세로이다. 봄의 전령사로 한 때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지금은 다가올 내년의 그 때만을 기다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게 風流이다. 풍류란 풍치 있고 멋스런운 게 노는 것이다. 버들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풍류(風柳)이다. 직(直)이 있어야 하나 때로는 버들가지와 같이 부드러운 류(柔)도 필요하다. 버들가지가 그네를 타며 즐기고 있다. 


하얀 천사를 하늘로 보낸 목련이 초록 옷으로 갈아 입었다. 넓직한 잎새여! 큰 그릇이구여!  넉넉함을 보여주고 있다.  


고운 목련잎새 실팍한 소녀 같다.  


칠손이나무 꽃이다. 한가지에 7개의 잎새가 있다고 하여 칠손이라 부른다. 큼직한 잎새에 걸 맞는 꽃송이다. 벌 한 마리가 꿀을 따라 왔다. 처녀총각은 님을 만나고 싶으나 다리가 없으니 굉장한 꾀를 냈다. 벌을 중매쟁이로 끌어 들었다. 꿀을 만들어 내 벌을 유인하고, 꿀을 따는 벌이 암꽃에 수꽃을 만나게 해준다. 만남이 이뤄지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하고, 쉼 없이 이렇게 진화하여 만든 세상이 바로 지금 이 세상이다.   



복숭아 잎새가 해충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다른 식물은 멀쩡한데, 사람이 귀히 키우는 작물은 서로 먹으려 경쟁이 치열하다.


청록 매실이 탑스럽다.


명자나무 잎새가 우거지고 있다. 잎새 하나 하나는 경쟁자이지만 희노애락을 같이 하는 형제요 동료이다. 


명자나무 잎새가 곱게 자라고 있다. 서로 햇살을 보려고 경쟁이 치열하지만 신사적으로 싸울뿐이다. 그러나 동물은 물어 뜯고 할퀴며 똥을 싸며 남을 못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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