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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족 이야기

열차에서 자리를 양보하다.

by 仲林堂 김용헌 2018. 5. 6.

열차가 평택역에서 정차 후 한 할아버지가 차문이 열리고 지팡이를 집고 한 걸음 한 걸음 어렵게 내딛으면서 들어온다. 그는 내 뒤 빈 자리에 앉는다. 얼마 후 한 젊은이가 할아버지 앞으로 와 표가 있느냐 묻는다. 할아버지가 일어나자 그 옆에 앉았던 한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신의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노인이 사양하지만 젊은이는 괜찮다며 자리를 내준다. 그 노인은 젊은이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청년은 조치원이라고 한다. 어제(5월 5일)는 토요일이며 어린이날이라서 빈자리는 없었다.

 

열차가 조치원에 도착하고는 다시 한 젊은이가 할아버지 앞으로 와 표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일어서 "저는 아직 서 있을 만 하니 어르신께서 앉으시오"라며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 노인은 청년의 의자 팔걸이에 걸터앉으면서 괜찮다고 하지만 모양새가 좋지 않다. 나는 다시 앉으시라고 극구 권했다. 결국은 그 노인은 내 자리에 앉았다. 나에게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논산'이라고 대답하자 자기도 '논산'까지 간다고 했다. 나는 좌석 앞 의자 뒤에 달린 주머니에는 '유인물'을 놓았다. 그 노인은 내가 놓은 유인물을 읽어보더니 나에게 자기가 가지고 온 유인물을 읽어 보라면 준다. 나중에 보니 그 노인이 준 유인물은 "김주식이란 사람이 쓴 글"로 우리나라 몇몇 애국 명문가에 관한 내용이었다.

 

지식정보사회에 젊은이들은 잘 적응하지만 노인은 그렇지 못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기차표를 예매하지만 노인은 컴퓨터나 휴대폰을 잘 다룰 줄 몰라 직접 역에 와서 차표를 구매를 한다. 노인이 별도 시간을 내서 기차역까지 온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차표 예매를 잘 하는 젊은이들은 자리를 앉고 노인은 예매를 못해 자리가 없는 경우가 흔하다.

 

논산역에 열차가 도착하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역전을 빠져 나왔다. 나의 최종 행선지는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휴정서원이다. 휴정서원이 있는 신풍리 행 버스는 910분이라는 걸 미리 알아보았다. 한참 후 논산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신풍리 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중 그 노인이 내가 있는 정류장으로 오고 있었다. 다시 만나니 인연이다. 그 노인은 내게 감사하다면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는 올해 86세이고, 논산중학교 2회 졸업생이고, 농촌지도소에서 근무했으며, 자신이 논산중학교 교장, 강경상고 교장 등을 역임했고, 논산시 강산27-8 소재 천태종 삼화사를 창건했다고 말했다. 택시를 타고 가도 될 만한 거리인데 간신히 걸음을 걸을 수 있으면서도 한참을 기다려 강경 행 버스를 탔다.

 

나는 버스를 타고 신풍리 휴정서원에 가서 춘향사 봉행을 마쳤고, 다시 신풍리에서 외성리까지는 휴정서원 제향에 오신 분의 차를 이용했고, 외성리에서 논산역까지는 시내버스를 탔다. 그 후 기차를 타고 수원으로 돌아왔다. 어제는 어린이날이라 나를 뺀 우리가족도 용인 민속촌에서 하루를 보냈고, 나는 수지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 모임에 가족과 합류했다. 저녁 식사 중 그 노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노인으로부터 어떤 이득을 본다는 것은 생각도 않지만 덕불고필유인(德不孤 必有隣: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필히 이웃이 있다)이란 논어의 글이 생각났다.

 

나는 남보다 자리를 잘 양보하는 편이다. 그것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더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그 보다는 내가 비록 서 있어도 많이 힘들지 않으며, 자리를 양보해 주므로 서 "내 자신이 남을 위하여 하나의 일을 했다"는 보람이 크기 때문이라고 본다. 근래 걷기를 많이 하고, 서울로 전철 타고 다닐 때 서서 타고 다녀서 남보다 다리가 튼튼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자리를 양보하는 작은 선이라도 베풀 수 있는 내 자신에게 감사를 보낸다.



때로는 열차가 텅 빈채로 가지만 주말이라 특별한 날은 만원이다. 지난 5월 5일 수원에서 6시15발 목포행 열차는 첫차로 이른 시간이었지만 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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