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산수유부터 시작하고, 그 뒤를 개나리와 벚꽃이 따라 온다. 그리고 진달래와 철쭉이 필 즈음이면 봄은 중턱에 올라왔을 때이다. 그 다음에 라일락이 피면 정점을 찍게 된다. 요즘은 철쪽은 산에 가야만 가끔 보지만 공원이나 정원에는 철쭉의 한 종류인 영산홍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영산홍은 수원 서호공원에도 영산홍 동산이 있다.
영산홍에 관하여 백과사전을 보니, 박상진이 쓴 "우리나라의 세계1"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일본에서 자라는 철쭉의 한 종류인 사쓰끼철쭉(サツキツツジ)을 기본종으로 하여 개량한 철쭉의 원예품종 전체를 일컬어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영산홍(映山紅)’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영산홍이란 이름을 거의 쓰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일본인들의 꽃이었던 이 꽃나무는 강희안의 《양화소록》에서 보다 상세한 전래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세종 23년(1441) 봄, 일본에서 일본철쭉 두어 분을 조공으로 보내왔다. 대궐 안에 심어두고 보았는데, 꽃이 무척 아름다웠다. 일본철쭉은 중국의 최고 미인 서시(西施)와 같고, 다른 철쭉은 못생긴 여자의 대표인 모모(嫫母)와 같다”라고 하여 일본에서 보내온 꽃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여기서 일본철쭉은 사쓰끼철쭉으로 짐작된다.
조선 초에 들어온 사쓰끼철쭉은 일본철쭉, 혹은 영산홍이란 이름으로 왕조실록과 선비들의 문집에 등장한다. 영산홍을 가장 좋아한 임금은 연산군이다. 연산 11년(1505)에 영산홍 1만 그루를 후원에 심으라 하고, 움막을 만들어 추위에 말라 죽는 일이 없도록 하였으며, 다음해에는 키운 숫자를 보고하도록 했다. 《지봉유설》에도 영산홍이 나오며, 《산림경제》에도 왜철쭉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중후기로 오면서 영산홍은 선비들도 즐기는 꽃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다. 지금은 각종 정원수 중에 가장 많이 심고 있으며, 조선의 궁궐과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있는 제승당까지 아니 계신 곳이 없다.
영산홍은 정원수로 번식이 잘되고 조밀하게 심으면 원하는 곳 모두를 꽃 천지로 만들기 쉽기 때문인가 정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올해도 서호 공원에 어김 없이 영산홍은 피어 꽃동산을 이뤘다.
영산홍 꽃동산이다.
서호공원의 동쪽 끝 화서동으로 구름다리가 연결된 곳이다.
연산홍 꽃물결이다.
연산홍 꽃길이다.
영산홍 꽃언덕이다.
진달래는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피지만 영산홍이나 철쭉은 잎과 함께 꽃이 핀다. 영산홍은 꽃, 잎, 생김새까지 우리나라 산철쭉과 거의 비슷하다. 산철쭉보다 키가 작고 잎도 작으나 가장 큰 차이점은 영산홍은 상록이거나 반상록인 반면 산철쭉은 완전한 갈잎나무다.
빨간 꽃산홍꽃이다.
분홍색 영산홍꽃이다.
옅은 홍색 영산홍이다.
빨간 영산홍 꽃망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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