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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山金氏 이야기

광산김씨 유적 사진 촬영기(2018년 2월 3일, 안동, 봉화, 양평)

by 仲林堂 김용헌 2018. 2. 5.

전날(2월 2일) 구담에 도착하여 국현 일가를 만나 저녁을 같이하고, 여관에 와서 담암공에 관한 몇가지 전설을 채록했다. 시골 여관이라서 그런지 외풍이 심해 방이 썰렁했다. 아침에 일어나 세면을 하고 나서 썰렁한 방에 있기도 편치 않아 여관을 7시 10분쯤 나왔다. 아침하는 식당을 찾고 있을 때 국현 일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같이 아침식사를 한 후 구담 마을 뒤에 있는 담암공 김용석 묘를 찾았다. 일출하는 햇살이 비추는 가운데 묘소 촬영을 했다. 묘표에는 가는 글씨로 "성균관 진사 김공지묘"란 가는 글씨만 보이고 다른 글자는 없었다. 묘소 아래 마을 가옥 속에 있는 재실 국도재(菊島齋)에 들려 촬영을 했다. 그 다음 담암공 유허비를 찾았다. 담암공유허비는 구담 읍내의 중심지에 있었다. 이 유허비는 1756년 세웠으며, 2005년 중수했다는 표지석이 있었다. 이 비각의 문양이 보기 좋았다. 


담암공 김용석의 묘


다음 행선지는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 유일재 고택이다. 이곳 구담에서 와룡까지는 41.4km로 먼 거리이다. 국현 일가는  와룡리 유일재고택까지 안내하겠다면서 앞장을 섰다. 내 차를 같이 타자고 하니 돌아 올 때 따로 와야 한다면서 두 차로 갔다. 유일재 고택에 도착하니 유일재종중의 도유사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택의 밖과 안에서 여러 각도로 촬영을 했다. 방아간 초가집 별채가 있는 게 특이했다,. 방아간에는 디딜방아가 다른 가구와 함께 어질게 있었다. 경상북도 지정문화재이지만 집안이 여러 가지 살림사리로 혼잡했다. 


유일재 고택의 안채


그리고 와룡가구리에서 2-3km에 있는 긍구당을 찾았다. 긍구당 종손은 훈민정음 원본을 보존했다. 긍구당 종손 대중씨는 올해 85세로 겨우 양 지팡이에 의지해서 겨우 걸었다. 내가 방문 목적을 이야기하자 그는 훌륭한 일을 한다면서 우리집에는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있다면서 사당으로 안내했다. 사당에 있는 감실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것이다. 긍구당은 원고에는 없었으나 추가하려고 취재를 했다.


긍구당 사당의 감실


다음은 봉화읍 거촌리 쌍벽당이다. 안동시 와룡에서 쌍벽당까지는 43.8km이다. 유일재 고택에서 나와 국현 일가는 앞서 갔다. 구담으로 돌아 갈 줄 알았으나 봉화방향으로 계속 달렸다. 점심 때 쯤 봉화읍 거촌리 쌍벽당에 도착했다. 국현 일가는 마을 사랑방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광산김가 일가 5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맞절로 인사를 한 후 이곳에 방문 목적을 말씀 올렸다. 쌍벽당 김두순 종손께서 쌍벽당 고택을 안내했다. 집에 도착하자 먼저 팔순 기념으로 지은 자서전을 줬다. 그는 이 큰 고택을 혼자 지키고 있었다. 터도 넓고 건물 규모도 컸으며, 아름드리 기둥이 다른 곳에 보기 쉽지 않았다. 쌍벽당 두순 종손은 사당을 보여준 후 4대조 후 매안하지 않고 얼마간 위패를 보존한다는 체O당(遞O堂)을 보여줬다. 두순 일가는 내게 영어로 질문을 툭툭 던졌다. 그는 한국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봉화에서 영어교사를 43년간 재직했다고 한다.  


쌍벽당 고택


다음 괴산군 칠성면 진사공 김총의 묘이나 안내할 사람도 없고, 혼자 어떤 정보 없이 찾기 어려워 보기 하고 양평으로 행했다. 양평에서 용복일가를 만난 양평군 옥천면 신복1리 혜순옹주와 부군인 광천위 김인경의 묘를 쉽게 촬영했다. 그 다음 양평군 옥천면 신복2리 병조판서 김기석의 묘이었으나, 용복일가는 모른다고 하고, 용복 일가가 안내로 권중씨를 만나 묘를 어렵게 찾았다.  그러나 묘가 너무 초라했고, 석물이 옛 것은 없고 새 것뿐이다. 촬영을 했으나 자랑이 아니라 흠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복1리에서 재실을 촬영하려고 하니 어두웠다. 감도를 높여 겨우 촬영했다.

광천위 인경과 혜순옹주의 묘소 장명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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