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공 김만균의 묘소를 전화를 안내받아 찾고나서 다음 목적지는 홍성군 서부면 양곡리에 있는 14년간을 정승자리에 있었던 문헌공(文憲公) 직하(稷下) 김상복(金相福) 묘소 찾기였다. 문헌공은 영조때 1772년 영의정에 올랐다. 그는 14년간 정승 자리에 있었다. 그는 사계 김장생의 6대손이며, 고조부는 대제학에 올랐던 창주 김익희이다.
김창수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양곡리 문헌공의 묘소를 찾는 다고 하자, 자신이 그 묘소를 관리하여 잘 알지만 전화로 이야기 해서는 찾지 못할 것 같다며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은 이야기 한다. 그래도 나는 오늘 수원에서 왔다면서 다시 찾아 오기 어려우니 한번 시도해보겠다고 하니, 그는 전화로 다음과 같이 찾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광천방향으로 500미터를 가면 저수지가 나온다. 그 저수지 이호저수지이다. 저수지가 끝나면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양곡고개가 나온다. 양곡고개에서 400m를 내려가면 왼쪽으로 묘가 있다. 길에서도 잘 하면 보인다. 다시 모르면 전화를 하라"
그의 말대로 차로 500미터 쯤 가니 저수지가 도로변에 있었고, 역시 길을 오르막이었고, '저기 보이는 게 양곡고개를 가리키는 구나' 하면서 차를 몰았다. 역시 길은 내려 갔다. 그 분의 말대로 약 400미터를 내려가소 왼쪽을 보니 외딴집 옆에 큰 묘가 하나 있고, 비석이 있는 다른 하나의 묘도 보였다. 주차를 하고 나니 외딴집 개가 짖어댔다. 잠시 후 할머니가 나오신다. 광산김씨 묘가 어디 있느냐 묻자 모른다고 한다. 개가 물기라도 하면 어쩌나 해서 차를 돌려 100미터 아래로 내려와 주차를 하고, 큰 묘를 가서 보니 안동김씨 묘였고, 또 다른 하나도 역시 찾는 묘가 아니였다.
다시 차를 오던 길로 돌려 찾았으나 찾을 수 없고, 창수씨에게 전화를 했다. 돼지막이 보이는 곳에서 우회전을 하라고 한다. 400미터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1km를 가서 양돈축사가 나왔다. 전화를 끊으면 어렵겠다 싶어 통화를 하면서 천천히 차를 끌며 주변 환경을 이야기하면서 갔다. 양돈 축사에서 우회전하여 논길로 난 길을 100미터쯕 가니 개울이 하나 있고 개울을 지나 좌우로 길이 갈라졌다. 우측 길로 따라 올라가니 빨간 기와집이 보였다. 그 집에서 예전에 묘지기를 했었다고 했다. 빨간 기와집을 찾으니 이제 찾았구나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였다.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가 내가 주차를 하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서둘러 그 할아버지에게 광산김씨 정승묘가 어디냐고 묻자 하우스 아래 포도나무가 있는 밭이 있는 쪽을 가리킨다. 너무 연세가 많아 대화가 안되었다. 겨우 걸었으며 말 소리는 너무 작아 들을 수 없었다.
포도나무가 있는 밭뚝을 따라 산 넘어로 가니 근사한 묘사 하나 보였다. 반갑게 가서 보니 한산이씨 묘였다. 그 아래 집 한채 있어 "계십니까" 큰 소리로 사람을 찾으니 화장실에서 한 할머니가 나오신다. 이 할머니도 허리가 굽어 발 거름을 띄기 힘이 들어 보였으나 그래도 말소리는 알아 들을 수는 있었다. 광산김씨 정승 묘가 어디냐 묻자 내가 왔던 곳을 가리킨다. 포도나무가 있는 곳에는 묘가 없는데 왜 저쪽을 가리키나 알 수 없었다. 그래 다시 빨간 기와집을 왔다. 그러나 다시 물어 볼 사람도 없어, 다시 허리굽은 할머니댁으로 가서 여쭸다. 역시 내가 왔던 곳을 가리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할머니가 맞게 알려줬으나 나는 숲으로 난 길도 없는 곳이 산소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않고 거기는 아니다라고 가지 않았다.
할 수 없구나 못 찾겠다. 창수씨에게 전화를 해도 도무자 알 수 없었다. 거의 포기한 채 주차한 곳으로 오니, 70대 할머니가 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 할머니께서 산 중턱을 가리키면서 저 산속에 있다고 했다.
도무지 산소가 들어설 자리가 아니었다. 산소는 양지바른 곳에 있는데 이 산소는 북향을 하고 언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고랑에 있다는 것이다.
그 할머니가 이야기 한대로 포도나무밭길을 지나 한산이씨 묘 위쪽으로 낙엽이 푹 쌓인 숲속으로 올라가니 드디어 산소가 보였다.
14년간 정승을 한 묘가 이럴 수 있을 가? 신도비도 없고, 갓이 없는 비신만 있는 묘갈이었다. 묘갈의 앞면에 새긴 글씨도 잘 보이지 않았다. 뒷면을 보니 아무 글씨도 없다. 평민의 묘만도 못했다. 좌향도 북향이고, 석물도 형편이 었다. 숲 속에 있어 그늘이라 잔디도 살 수 없는 곳이었다. 그의 아호가 직하(稷下)는 기장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기장은 요즘 곡식으로 치지 않는 아주 가난한 사람이 먹는 곡식이다. 그의 아호와 같이 그의 묘는 기장 만도 못했다.
겨우 묘소를 찾았다. 여러 각도로 사진을 촬영했다. 그러나 너무 시간이 지체하여 계룡IC에 있는 수사공 김현의 묘소를 안내해주신다는 분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촬영은 어려우니 내일 방문하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사진 촬영이 쉽지 않다.
40번도로를 타고 가다가 이호저수지에서 우회전하여 빨간 선으로 표시한 길을 따라 양곡고개를 넘어 실선으로 된 곳까지 차로 간다. 그곳에 주차를 하고 점선으로 된 곳은 아래 사진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이호저수지에서 홍남서로 285번길을 따라 오다가 빨간선으로 표시한 곳에서 우회전하여 논 사이길로 간 후
작은 개울을 지나 우회전하여 약300미터를 가면 빨간 기와집이 나온다. 거기서 주차하고 걸어서 점선으로 된 곳을 따라 한산이씨묘에서 나무 숲속으로 올라가면 문헌공 묘가 나온다.
비석이 없는 이름 모르는 묘에서 낙옆 쌓인 가운데로 올라간다.
두 갈래 길에서 아래(우측)으로 가야 한다.
망주석이 보인다.
약간 구릉에 있고, 북향하고 있다.
그늘이 많아 잔디가 살 수 없고, 묘갈은 앞쪽으로 기울어 있고, 글씨도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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