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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화양구곡 암각문 촬영기

by 仲林堂 김용헌 2017. 7. 27.

나는 지난 7월 19일 청주향교에서 유교활성화 교육 참가 했을 때 유교현장 교육 일환으로 화양동구곡을 일행 40명과 함께 처음으로 방문했다.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9곡에서 2곡까지 가면서 보고 듣고 사진을 촬영하면서 유학에 관한 기행문을 남기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관심을 가지고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지만 한 시간 반은 너무 짧았다. 꼭 있어야 할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화양동구곡 재 촬영계획을 7월 26일 오후로 잡았다.   


성균관에서 임원 고유와 임명식이 끝나자 바로 서둘러 집으로 왔다. 하늘에는 뭉게 구름 떠 있는 맑은 날씨다. 사진 촬영에는 좋은 날이다. 화서역까지 집사람에게 차를 가지고 나오라고 했다. 전철에서 14시 20분에 내리자 논스톱으로 달려 16시 30분경에 화양동구곡에 도착했다. 화양동주차장에 도착하니 한산했다. 십여대 차가 보였다. 카메라 베낭을 메고 나섰다. 국립공원이라 입장료는 없으나 주차요금은 좀 세게 5,000원을 받았다. 


넓은 신작로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고, 아름다운 곳에 하나의 곡을 붙여 모두 9곡이다. 한 여름이지만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 들리고, 그늘 속으로 가로수 길  공기는 시원하다.


먼저 주차장에서 2km쯤 올라가 계곡 건너편에 있어 가까이 갈 수 없는 운영담에 새긴 암각을 200mm렌즈로 촬영했다. 제4곡 금사담으로 갔다. 암서재 아래 절벽에 전서체로 암각한 금사담(金沙潭)을 찍었다. 이어 암서재에서 우측으로 20여미터 절벽에 큰 글씨로 명나라 태조의 글씨인 충효절의(忠孝節義) 를 촬영했다. 충효절의 옆에 있다고 알려진 창오운단 무이산공(蒼梧雲斷 武夷山空)은 잘 보이지 않았다. 망원렌즈로 충의절의 옆 바위를 여러 차례 찍었다. 


그 다음 촬영지는 제5곡 첨성대 암각이다. 먼저 방문 때는 멀리서 첨성대만 바라 보았을 뿐 가까이서 보지 못했다. 다리 옆에 있는 오솔길을 5분여 오르니 첨성대 바위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글짜가 또렸이 보였다. 


다음 촬영 차례는 비례부동(非禮不動)과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이다. 이 암각은 '우암 송시열의 생거지와 적거지' 책자에서 "첨성대에서 계곡으로 내려와 조금 오른쪽으로 올라가면..."은 이 암각문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첨성대 바로 앞에 계곡이 작지만 있고, 화양천 계곡도 있어 어느 계곡인지 분명치 않았다. 이리 저리 첨성대를 오르고 내리고 돌아 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멀리서 보니 큰 암각문이 있어 여기가 비례부동과 대명천지 숭정일월의 암각문이 있겠구나 하면서 접근하니, 다른 암각이었다. 그것은 전서체로 쓴 첨성대(瞻星臺)란 암각이었다.


하는 수 없지! 포기하고 내려 오다가 다시 생각했다. 이럴 수는 없다. 다시 찾아 보자 마음 먹었다. 계곡 다리에서 마음을 가다 듬고, 화양동 관광팜프렛에 나온 전화를 하니, 관광해설사는 그곳을 알고 있다고 하며 화양천 계곡에 있다며 지금은 수위가 낮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계곡을 따라 70-80미터 올라가니, 애써 찾았던 비례부동(非禮不動)과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이 있었다. 꼭 숨겨놓은 비밀을 찾는 것 같았다. 어찌나 기쁜지 몰랐다. 여러 각도로 작게 크게 여러번 촬영했다. 비례부동은 중국명나라 황제 의종의 글씨라 위에 썼고, 우암의 글 씨는 그 옆쪽 아래에 있었다.


그 후 덤으로 능운대로 갔다. 능운대의 큰 바위 정상에 올라 능운대(凌雲臺)란 암각을 촬영했다. 와룡암의 와룡암각은 시간이 너무 늦어 포기하고 내려 왔다.


지난번과 이번 모두 제1곡에 있는 우임이 쓴 화양동문(華陽洞門)은 촬영못했다. 접근이 쉽지 않아 촬영못했다. 이번에도 제1곡은 화양동 주차장에서 1km 아래에 있어 걸어서 가기는 쉽지 않았다. 차로 나오는 길에 제1곡을 전망대를 발견하고 잠시 차를 정차시키고 급하게 나왔다. 암각문은 보이지 않았으며 제1곡 전체 경치만 촬영했다. 중앙분리대가 있는 길이라 정차하면 뒤에 오는 차가 앞으로 갈 수 없었다. 뒤에 따라오는 차가 있었지만 잠시 정차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급하게 길가에 있는 전망대에 가서 셧터를 눌렀다.


다음 날 아침에 이번에 찍은 사진을 고르고 편집했다. 이미 써 놓은 글을 일부 수정한 후 사진과 함께 기사를 올렸다. 글도 다듬고 사진도 정성을 드려서 그랬는지 올린 후 10여분 지난 후 검색해 보니 유교신문 싸이트에 올라 와 있었다. 

첫 술에 배불를 수 없다. 좀 더 챙겨보고, 검토한 후에 작품이 나오게 된다. 이번 촬영이 없었으면 "화양구곡을 찾아서"란 기행문은 미완성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비록 시간과 비용을 들었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있어 만족한다.



제1곡 화양동문이다. 우암이 쓴 "華陽洞門" 암각이 있다고 한다. 가까이 가지 못해서 암각을 보지 못했다.


구름 그림자가 못에 빛춘다는 운영대이다. 운영대(雲影臺)란 글씨는 3개의 바위 중 오른쪽에 있는 큰 바위 맨 아래에 있다.


멀리에서 당겨서 잡아 본 운영대(雲影臺) 암각이다.


절벽 가운데 전사체로 쓴 금사담(金沙潭)이란 암각이 보인다.  


우암이 쓴 창오운단 무이산공(蒼梧雲斷 武夷山空) 암각이다.


명나라 태조의 글씨인 충효절의(忠孝節義)이다.

 

선조의 어필인 만절필동(萬折必東)과 숙종의 어필인 화양서원(華陽書院)이다.


첨성대瞻星臺) 암각이다.


좌측 비례부동(非禮不動)은 명나라 숭정황제의 어필이다.


우측 대명천지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은 우암의 글씨이다.



좌측 비례부동은 명나라 숭정황제의 어필이고, 우측 대명천지숭정일월은 우암의 글씨이다.


멀리서 본 비례부동과 대명천지 숭정일월 암각문이 있는 바위다. 


 능운대 바위 정상에 암각한 능운대(凌雲臺) 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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