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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기타 외국여행

캐나다에서 있었던 일 (2000년 10월)

by 仲林堂 김용헌 2017. 7. 11.


세월이 지나고 나면 좋았던 일은 다 잊어버리고 어려웠던 때는 오래 기억이 남는다. 나는 지난 해(2000) 10월 캐나다에서 잊지 못할 씁쓸한 추억이 하나 있다.

 

해로우(Harrow)연구소에서 3주간 체재를 한 후 다음 목적지인 벤쿠버(Vancouver)로 가는 동안 있었던 일이다. 해로연구소는 윈저(Winzor)까지는 차로 한 시간 거리이고 윈저는 미국의 디토로이트(Detroit)를 마주하고 있는 도시이다. 윈저에서 캐나다의 제1의 도시인 토론토 (Toronto)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을 가야하고, 토론토에서 태평양 연안에 있는 벤쿠버까지는 비행기로 5시간이 걸리는 긴 여행이었다. 마누라와 같이 하는 여행이라서 토론토에서 직접 벤쿠버로 가지 않고, 관광 차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Ottawa)에 들린 후 다시 토론토로 와서 벤쿠버로 갈 계획을 세웠다.

 

해로우를 떠나기 전에 계획을 수립하고 열차, 고속버스, 호텔 등 모든 것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철저하게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예약을 끝냈다. 아무런 걱정이 없이 계획대로 보내기만 하면 되는 일정이었다.

 

해로우에서는 대중 교통수단이 거의 없어 자기 차가 없이는 거의 움직일 수 없다. 해로도 인구가 3,000명되는 도시이지만 이곳에서 윈저까지 아무 대중교통 수단이 없어 외국인이 방문할 때는 윈저까지 마중을 나오고 데려다 줘야했다. 나의 파트너였던 쉽(Shipp)박사가 윈저까지 데려다 주었다. 기차역에서 도착을 하여 여권과 예약차표를 찾았으나 가방 속에 분명히 넣은 여권이 어디 간데 없었다. 가방의 안쪽 주머니에 넣었으나 아무리 뒤져도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넣었는데 없으니 내가 어디에 잃어버린 것인가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여권을 가방 속에 넣지 않고 주머니에 넣고 다녔기 때문이다. 정신이 아찔했다. 어디서 분실한 것인지 생각이 나질 안 했다. 어제 저녁에 맥주홀에 가서 이곳에 사는 한국사람들과 잠시 여권이 든 잠바를 의자 위에 올려놓고 술을 혹시 어제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 날 그 곳에 들린 것이 얼마나 후회되는 지 몰랐다.

 

해로우에는 한국 사람이 2가구가 살고 있다. 한 사람은 미국음식 음식점을 하는 사람은 늘 손님이 많고 이곳에서 뿌리를 내린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은 조그마한 슈퍼(구멍가게)를 하고 있었으며 늘 혼자서 하루 16시간을 일을 하고 있었으며, 술을 좋아 하나 몇 달 동안 일만 했으며 그럴 시간이 없다고 했다. 해로우에서 10월 중순 아침 7시면 어두운데 이 시간에 이곳의 50여 개의 상점 중 한국사람이 하는 2점포만 불이 켜 있었다. 돈 쓸 시간이 없이 일을 하기 때문에 돈을 벌지 않나 생각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슈퍼를 하는 사람과 같이 이곳을 떠나기 전날 술집에 간적이 있다. 그 때 잃어버린 것이 아닌 가 먼저 생각이 났다.

 

내가 떠나기 전 날 인사를 하러 가자 술 한 잔 하자고 했다. 우리는 해로우에서 차로 30즘 분 걸려 킹스빌(Kingsbill)에서 가장 큰 술집에 도착했다. 홀에 들어서자 대화가 힘들 정도로 음악 소리가 요란했다. 그 술집은 광주에서 역사 선생님을 하다 이민 왔다는 분이 경영하고 있었다. 소란해서 사장의 사무실에서 맥주를 같이 먹으면서 이곳 사회의 아웃사이더에서 주류가 되기까지의 성공담을 나누며 술을 거나하게 먹었다.

 

기차시간은 다가오고,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하기 참 어려웠다. 다시 해로우로 돌아가야 할 것인지 아니면 계획대로 가야 할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일단은 미리 사 놓았던 차표가 없어 다시 구입한 후 토론토 대사관과 현지 경찰서에 여권 분실 신고를 했다. 경찰에 분실신고를 한 후 영사관에서 여권을 재발급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가면 분실한 여권도 재발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지 만 문제는 벤쿠버에서 계획에 차질이 생긱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벤쿠버를 예정된 날 못 가면 그 쪽에서의 일정도 차질이 생기는 것이었다. 이곳 캐나다에 오기 전부터 만남을 계획한 것인데 큰 문제였다.

 

쉽박사와는 작별하고 토론토로 가는 열차를 탔다. 기차표를 예약 안 해도 표가 없어서 못 타는 것은 아닌데 그것도 모르고 기차표를 예약한 것이 아쉬웠다. 쉽박사도 기차를 이곳에서 타 못 일이 없어 예약을 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캐나다는 오직 자동차와 비행기만이 교통 수단으로 이용하고 기차나 버스는 대중교통 수단으로서 그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다. 기차 손님은 학교 기숙사에 있다 주말이라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뿐이고 일반 손님은 거의 없었다. 열차는 지정 좌석도 없었고 우리의 우등 열차 보다 못해 보였다. 오후 25분 윈저에서 출발한 열차는 토론토에 541분 도착할 예정이었다. 토론토에 도착 후 어떻게 대처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토론토에 도착을 하면 토론토의 한국영사관은 문을 닫을 것이며, 다음 월요일에나 여권 재발급 신청을 할 수 있으니 벤쿠버에서 약속은 어쩌나 걱정만 앞섰다. 이 열차가 토론토에 도착하면 근무시간이 지나기 때문에 열차에서 한국대사관에 여권 재발급을 신청 후 언제 받을 수 있는 지 알아 봐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뒷좌석에 앉은 학생이 휴대폰을 어찌 큰 소리로 떠드는지 신경을 쓰게 하고 있었다. 그 학생에게 전화를 사용을 했다가 거절당하고, 열차 승무원에게 얘기해서 전화를 빌려 영사관에 걸었지만 통화를 할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열차는 토론토 중앙역에 도착하였다.

 

먼저 할 일은 한국영사관으로 전화를 하는 일이었다. 비록 근무시간이 지났지만 당직자라도 있를 것 같아 서둘러 전화카드를 샀고, 공중전화 박스로 가서 전화를 했으나 지금은 근무시간이 아니니 월요일 찾아오라는 자동응답기의 답답한 메시지를 울려 왔다. 계획 대로라면 1830분에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로 오타와에 가서 숙박을 하는 것을 예약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권도 없는 비상시에 오타와를 가야 하는 것인지 무척이나 망설인 끝에 토론토에서 일단은 숙박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중앙역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추천하는 호텔로 가기로 했다. 모르는 곳을 처음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아 택시를 타야만 했지만 실수로 인한 추가 경비가 많이 드는 관계로 지하철을 탔고 호텔 근처에서 내렸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우리가 찾는 호텔을 찾을 수 없었다. 여러 차례 돌고 돌았지만 찾을 수 없어, 한 청년에게 묻자 그 청년이 자기 휴대폰을 전화를 걸자 잠시 후 이곳에 기다리면 사람이 온다고 했다. 잠시 후 젊은이가 오더니 따라 오라고 한다. 찾아 간 곳은 간판도 없는 우리의 연립주택과 같은 민박집이었다. 10만원이나 되는 호텔이 침대하나 겨우 들어 갈만한 골방이었다. 그 방에서 인도계 사람 한 쌍이 나오는데 정말로 이런 곳은 내 잔 다는 것이 내 키질 않았다. 여관 주인에게 가서 전화를 사용하자고 했다. 만약 오타와에 예약한 호텔 취소했으나 다시 재 예약을 할 수 있으면 오타와로 갈려고 전화를 해야 했다. 내가 전화를 하는 것을 보고 주인 여자는 화를 벌컥 내면서 당신 같은 사람 우리 집에 필요 없다며 당장 나가라고 한다. 그 여자는 우리 가방을 들고 나왔다. 이 밤중에 우리가 묵어야 할 곳은 멀고멀었다. 그 더러운 여관을 나와 오타와로 가기로 했다.


공중전화를 이용하여 오타와의 호텔에 다시 전화를 해 재 예약을 했다. 그래이하운드고속버스 주차장으로 가서 9시 반에 출발하는 마지막 오타와 행 고속버스를 탔다. 토론토에서 오타와까지는 5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였다. 밤은 늦게 달리는 버스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밝은 달빛은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고, 저 달은 한국 땅에서도 비추고 있으련만 갈 길이 까마득했다. 휴게소에 서자 혹시 해로우의 쉽박사, 해로우에 사는 한국사람에게 전화를 했으나 내 여권은 술집에도 그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혹시나 그 사이에 찾지 않았나 하는 기대도 무너졌다. 시간은 어김없이 흐리고 고속버스는 쉼 없이 달려 드디어 오타와에 도착했다. 오타와 거리는 차도 사람도 없고 조용할 뿐이었다. 택시를 타고 예약한 호텔로 행했다. 자신은 이락 사람이라고 하며 우린 같은 아시아 사람이라며 반기었다. 그 택시 기사로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을 탓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다. 예약을 한 것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비록 밤늦게 왔지만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여장을 풀자 편안하기 기지 없었다.

  

마누라는 가방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방을 다 풀어놓고 뒤지자 여기하며 마누라가 소리쳤다. 거기에 내가 찾았던 여권과 예약차표가 있었다. 정말 뛸 듯이 좋았다. 이렇게 좋을 수가! 마누라를 안고 한 바퀴를 돌았다. 여권은 내가 넣었다고 생각했던 가방의 주머니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참말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타와 관광을 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토론토에 돌아왔다.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여 잃어버렸다고 사용하지 못한 표를 반환해야 했다. 그러나 표는 14일간 유효하여 유효기간 안에 있어 사용이 가능하나 반환은 안 된다고 적혀있었다. 여객안내소에 가서 오타와 가는 손님에게 표를 팔 수 있느냐고 묻자 알아서 하라고 한다. 다시 매표소에 가서 분실했다 다시 찾았는데 다른 손님에게 이 표를 팔 수 있는 나 묻자 알아서 하라는 태도였다. 8만 원짜리 2장이니 우리로서는 적은 돈이 아니었다. “할인하여 5만원에 판다고 매표소 앞에서 오타와 가는 손님에게 표를 내보이며 팔려고 했으나, 턱도 없이 할인 해달라는 사람이 몇이 있었다. 그러던 중 경비가 찾아와 이곳에서 표를 팔 수 없다고 한다. 사정을 얘기했으나 통하지 안 했다. 우리 식 생각으로는 표가 지정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유효한 표이므로 매표소에서 반환을 해주고 오타와 손님에게 팔면 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 사람들은 그게 아니었다. 원칙대로 표는 반환이 안되며, 이곳에서는 창구이외에서는 표를 다른 사람에 못 판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원칙도 이해 할 수 있으나 융통성은 하나도 없는 사회구나 절감했다. 과연 이런 것이 선진국의 사고일까 다시 한번 생각을 했다. 잠시 불법 캐나다 입국자가 얘를 청해 잠시 있는 동안 경비가 나를 감시하고 있어 불쾌하기 기지 없었다.

고속버스는 손님이 우리 같이 많지 않아 언제든 탈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고속버스 표는 예매는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이와 같이 외국생활에 적응하려면 비싼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열 차표는 해로우에서 표를 다시 구입할 때 분실 신고를 했었고, 그 때 이야기가 다시 찾으면 반환을 해준다고 했다. 다시 기차역으로 가서 찾은 차표를 보여 주자 카드 사용한 것을 삭제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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