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에서 출발하는 DMZ관광열차를 2월 17일 10시 6분 탔다. 열차는 용산에서 출발한 열차는 서울역을 거쳐 문산을 지나 도라산역에 11시 42분에 도착했다. 열차 탑승 중에 신분확인 기록지에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잠시 종착역인 도라산역 직전 역인 임진강역에 하차하여 헌병이 신분을 확인을 한 후 다시 목에 거는 통행카드를 받고 승차했다. 도라산역에서 다시 신분확인 후 DMZ통행카드를 지급받고 버스에 승차했다.
버스는 맨 먼저 개성공단가는 출입국사무소를 지나 DMZ평화공원에 갔다. 쌀쌀한 날씨이지만 60년도에 대학을 다녔다는 해설자의 해설을 들었다. 해설은 다시 6.25를 상기시켰으며, 특히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에 대한 대응을 들으면서 우리나라의 국보로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북이 침공하자 지체없이 동경에 있는 극동미군사령부에 전화를 해서 "미군철수하면 안된다. 쏘련은 북한과 인접해 있으나 미국은 태평양 건너에 있어 남북이 같은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은 철군해서는 안된다는 나의 나의 주장을 당신들은 무시했다면서 미국이 책임지라고 걍력하게 요청한다" 했으며, 이 대통령의 신속한 조치로 UN군의 참전이 이뤄졌고, 휴전 시에는 이 대통령은 "우리는 휴전을 반대하면서, 당신들이 휴전하려면 "첫째 남북분계선은 38선이 아니라 휴전선으로 정해야 한다. 둘째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해야 한다. 셋째 자유의사에 의한 포로교환을 하자"고 했다. 나의 3가지 조건을 들어줘야 휴전을 승락한다"고 하여 결국 이 조건 3이 모두 수용되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북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는 해설자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당시 비록 나라지만 힘이 없었지만 우리 지도자는 미국에 맞서 하나의 굳힘도 없이 대한민국의 생존에 꼭 필요한 3가지 사항을 관철한 것을 보면 이승만 대통령을 다시금 존경하는 마음을 금치 못한다.
평화공원에서 도라산 전투에 관하여 해설을 들었다. "도라산 점령에 한국1사단이 실패하고, 이어서 미군이 공격했으나 다시 실패하였으나 3번째 해병대가 공격하여 빼았었다고 했다. 평화공원의 조형물을 관람하고, 버스는 도라산전망대로 올라갔다. 전망대에 오르니 북한이 바로 눈 앞에 보였다. 개성공단이 가운데에 보였고, 높다란 국기게양대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고, 건너편에 우리 게양대에 대응하여 북이 만든 인공기게양대에 인공기가 멀리 보였다.
다음 행선지는 점심식사를 했던 통일촌이다. 이곳 비무장지대에서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의 마을을 둘러 보았다. 사과 농사를 최근에 심어 작년부터 수확을 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방앗간도 있었고, 트럭터도 보였다. 점심은 7천원짜리 한식부페였다. 덴장국도 맛이 있었고, 두부요리도 좋았다.
버스는 마지막 방문지 제3땅굴에 달렸다. 땅굴입구에 들어 서자 마이크를 가진 한 남자는 카메라, 휴대폰, 가방은 가지고 갈 수 없다며, 벽면에 있는 물품함에 넣으라고 한다. 왜 카메라를 못가지고 가라고 하나 어떤 비밀이 있어 북한에 이용당할 수 있어서 그럴가? 그렇지 않은 것만 같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국가가 아닌가? 사진 촬영을 자유롭게 허용하여 더 많이 알린다면 더 좋으련만 그렇지 않고 있다.
일단 그의 지시에 따를 수 밖에 없어 나도 카메라를 소지품함에 넣고 맨 몸으로 검색대(?)를 통과하여 땅굴로 들어갔다. 우리가 판 터널은 경사가 심하여 돌아올 때 좀 힘들었고, 북이 판 땅굴은 2미터가 채 안되는 곳도 많아 허리를 숙이고 다녀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단단한 돌을 1.6km를 소리 안나게 몰래 뚫으려 다이너마이트를 쓰지 않고 팠다니 얼마나 힘들었을 가? 그 북한군은 얼마나 고생했을 가 상상을 해본다. 평화공존 대신 상대를 죽이려는 일에 힘을 이렇게 빼는 가? 하나의 비극이다. 분단의 시계는 언제나 멈출 가?
DMZ평화열차가 경찰의 신원확인을 위하여 임진강역에서 섰다.
열차는 3량으로 되어 있고, 여기는 2호차 내부이다. 내부는 어린이들이 좋아할 무늬로 치장되어 있었다. 2호차 맨 끝이 방송을 진행할 수 있는 승무원의 카페스탠드이다.
임진강 철교가 교각만 남아 있고 끊어져 있다. 바다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바닷물이 들어 와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임진강 북쪽편에는 철조망이 쳐저 있다. 일반 전략상으로 보면 진지의 위치가 적의 뒤에 있어 맞지 않는다. 배수진을 친 모양이다.
원래 도라산역이 있었던 자리 표시가 보인다.
여기 저기 왼통 철조망이 둘러 쳐 있다. 철로변에도 철조망이 다 쳐 있다.
종착역인 도라산역이다. 열차는 이곳에서 더 이상 달릴 수 없다. 더 달리 수 있는 그 날이 언제나 오려나? 일행은 모두 하차하여 DMZ관광 버스를 탔다.
도라산역 구내이다.
개성공단이 열렸을 때 TV에서 많이 보았던 남북출입사무소이다.
TV에서 여러번 보았던 개성공단으로 가는 관문이다.
버스는 평화공원에 도착하여 해설사는 앞에 있는 산이 도라산(높이 156m) 이라고 했다. 6.25 때 이 도라산을 두고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해병이 최후 점령하여 휴전선이 그 넘어로 그를 수 있었다고 한다.
앞 건물이 남북출입국사무소이고, 이 건물 위로 고압전선이 지나고 있다. 이 전선을 통하여 남에서 북으로 전기가 흘렀으하 지금은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전송 스위치가 내려져 있다고 한다.
도라산평화공원에 도착하여 6.25의 생생한 이야기를 해설사로부터 들었다.
DMZ평화공원에 있는 한 조각품이다. 통일이 되는 그 날을 상상의 날개를 펴고 있다.
그러나 나사는 풀여 따로 딩굴고 있다. 이 나사가 서로 맞추게 되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도 분단의 다리는 끊어져 있다. 언제 이 다리가 연결되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사진 전시관을 해설사가 설명하고 있다. 중립국감독위원회는 UN에서 남측에서 요청한 2개국, 북측에서 요청한 2개국이 DMZ를 감시해 왔으나 쏘련이 무너지면서 북측에서 요청한 폴란드와 체코는 북측에서 쫓아 버렸고, 남측에서 요청한 스웨던과 스위스만 남아 있다고 한다.
6.25휴전 협정 조인 장면이다. 이곳에서 해설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국부라고 말했다.
도라산전투에서 승전을 한 해병대 기념비가 있는 곳에 해병대 수륙양용전차를 전시하고 있다.
DMZ평화공원에 전시한 물방울 조각품이다. 생명의 근원인 물은 하나의 희망이다. 정자가 움직이고 있다. 생명의 출발을 인간의 정자로 표현하고 있다.
통일촌에 있는 마을 모습이다. 마을에 교회 십자가 철탑이 이곳에서 있다.
점심을 먹었던 식당 옆에 있는 통일촌 풍경이다. 이곳에서 방아간이 있고, 경윤기가 보이며, 공인중개사 간판도 보인다.
다음 행선지는 북한 땅을 전망할 수 있는 도라산 전망대에 올랐다. 한 가운데가 개성공단이다. 중심에 검게 보이는 빌딩이 보인다.
임진강이 지천으로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좌측에는 인공기가 우측에는 태극기가 맞주보고 있다. 태극기가 보이는 마을이 대성동마을이다.
제3땅굴 모식도이다. 우측에 보도로 들어가는 통행로와 그 옆에 탑승기로 가는 통로가 북한이 뚫은 땅굴과 만난다. 높이와 폭이 2m인 땅굴이다.
이 건물의 안쪽에서 도보로 땅굴로 진입했다. 350m로 우리측에 뚫은 통행로는 경사가 있어 오를 때 힘들었고, 북괴가 뚫은 땅굴은 경사도가 얕으나 높이가 낮아 허리를 굽이고 다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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