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7일 광산김씨종중의 군부대 위문을 맡치고 돌아오는 길에 윤관장군 묘에 들렸다. 묘는 경기도 파주시 과탄면 분수리 산 4-1에 있다. 윤관장군은 고려시대에 9성을 쌓았고 여진족을 몰아내고 6진을 개척한 것으로 잘 알려진 고려의 장군이다. 장군의 출생은 알 수 없으나 몰년은 1111년이다. 지금으로부터 904년 전이다. 우리나라의 묘는 거의 조선시대 이후의 것이고 고려시대의 것은 거의 없다. 본래 고려시대 묘는 방(方)자형 사각형 묘이나 이 묘는 둘레석을 모양으로 보아 원형을 훼손한 듯 했다.
윤관장군의 묘는 임금의 릉 못지 않게 잘 조성되어 있다. 릉이 아니면서 일반 백성의 묘로 이렇게 화려하게 만든 묘는 나는 처음 보았다. 묘 입구에 들어 서자 널직한 주차장이 있고 기념관(?)도 갖추고 있고, 재실로 들어 가는 삼문의 크기가 엄청나다. 麗忠祠란 묘 표지석도 명필이며 크다. 홍살문 옆에 세운 2개의 비석도 아주 크다.
호화분묘로 국가의 재물을 낭비하다고 비난을 할 수도 있으나 숭조를 통하여 자긍심이 돋워지며 훌륭한 조상이 사표가 될 때 어찌 바르지 않은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본다. 조상을 모시는 것은 돌아 가시 분에 대한 하나의 효이다. 효(孝)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했다. 파평윤씨 집안은 분명 잘 나가는 집안일 것이다
려충사를 비문 글씨가 명필이다. 麗忠祠는 고려의 충신을 지킨 사당이란 뜻이다.
홍살문 바로 뒤편이 윤관장군의 묘이다.
석물도 많고, 묘 둘레에 곡담이 처 있다. 곡담도 아주 높다. 곡담 뒤에 청송 심씨 묘가 있었다. 파평윤씨 가문에서 윤관장군 묘 곡담을 설치하면서 두 집안에 큰 싸움이 있었으나 파평윤씨 측에서 이전 할 수 있는 땅을 내 놓으면서 화해를 했다. 청송 심씨 묘는 지금 모두 이전하고 없다.
우측 비석은 尹侍中戰馬塚으로 윤장군이 탔던 말 무덤이고, 좌측은 尹侍中轎子寵塚로 윤장군의 탔던 가마 무덤이다. 실제 말 무덤이고 가마 무덤인가는 비문 외 다른 표시가 알 수 없으나 장군의 묘뿐만아니라 말과 가마 무덤까지 비석을 세운다는 것은 드문일이다.
추충좌리평융척지진국공신(推忠佐理平戎拓地鎭國功臣) 수대보문하시중(守大保門下侍中) 문숙공(文肅公) 윤관 대원수 사적비이다. 윤관은 여진족이 수만의 병력을 이끌고 웅주성을 침입했을 때 이들을 격파하고 포로 346명, 말 96필, 소 300두를 노획하여 개성으로 들어 오자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으로 推忠佐理平戎拓地鎭國功臣으로 책록하였다. 守大保門下侍中은 벼슬 이름이다. 文肅公은 이란 시호를 받았다. 윤관의 비문은 공신으로 책록되고 시호를 받고, 최고의 벼슬에 오르는 등 최고의 영예를 나타내고 있다.
앞줄 앞에서 부터 장군석, 문인석(신), 문인석(구), 동자석, 석주이고, 뒤줄은 말과 양이다.
석물 중에서 이 동자석을 제외하고 다른 석물은 원래 있는 석물이 아니라 최근에 새로 조성한 것이다.
高麗守太保門下侍中鈴平伯文肅尹公諱瓘之墓이다. 高麗守太保는 고려를 크게 지켰고, 門下侍中鈴平伯은 벼슬 이름이다. 文肅은 시호이다. 諱는 돌아가시 분의 이름을 가르킨다.
묘 앞에서 본 전망이다.
좌측은 역사관(?)이고, 우측 건물은 재실 들어 가는 문이다. 재실 들어 가는 삼문이 대단하게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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