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의 종택(宗宅)은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으며 경북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지금의 종택 옆에 있었던 옛 종택은 일본군이 1907년 방화로 모두 타 버려 없어졌고, 현재의 종택은 퇴계 13대손 이충호가 1926-1929년에 지은 것이다. 비록 근대에 새로 지은 집이면서도 규모도 있고 품위도 있었다. 이 종택은 퇴계 선생의 정신이 가장 오롯하게 지킨 곳이 아닌가 한다.
종택 바로 옆에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정자라고 보기보다는 일반 가옥과 같이 보인다. 이 정자는 봉화 닭실마을의 안동권씨 집안 권두경(1654-1725)이 1715년 퇴계문인 후예의 도움을 받아 지었으나 일제에 의해 1907년 불타 없어졌고, 1926년 상주 도남서원에서 도회(道會)를 열고 전국에서 400여 유림과 문중에 비용을 부담하여 새로 세운 것이다.
유교신문 주재기자 일행과 함께 지난 12월 1일 퇴계 묘소를 방문 후 이곳을 방문했다. 솟을대문에 퇴계의 손자며니리 안동권씨의 정려가 있다. 정려각이 없이 솟을대문에 정려를 걸어 놓은 것은 간소하여 세우기 쉬운 점도 있겠지만 예우가 소홀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정려는 아래와 같이 쓰였 있다.
烈女通德郞行司醞署直長李安道妻恭人安東權氏之閭
열녀통덕랑행사온서직장이안도처공인안동권씨지려
烈女: 죽음
通德郞: 조선시대 정5품의 벼슬 품계
行: 하였다.
司醞署直長: 술을 담는 일을 하는 관아에서 직장(直長)으로 일하다. 직장은 정7품의 벼슬
李安道: 퇴계의 손자 이름
妻: 아내
恭人: 남편의 품계에 따른 부인의 품계로 공인이면 남편이 정5품이다.
安東權氏: 이안도의 처 안동권씨이다.
之: 의
閭: 문
정려는 행실이 열려로 다른 사람의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았으므로 나라에서 잘 보이는 곳에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설치했다.
이곳은 깊은 산중이지만 비교적 널직한 평평한 곳에 종택과 정자가 있었다. 열녀의 정려가 있는 솟을대문을 들어서 자 종택이다. 종택은 ㅁ자 모양이라자만 ㄴ자만 보였다. 빨래줄에 씨레기 만들려고 무우 잎을 널어 놓았다. 사적 공간이라 겉 모습만 보고 나와 북동 방향으로 사당을 지나처 보고, 종택을 나와 정자인 추월한수정을 둘러 보고 갈 길이 멀다며 재촉하는 분들이 있어 잘 보지 못하고 서둘러 나와 아쉬움이 남는다.
좌측이 종택(宗宅)이고, 우측이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이다.
퇴계 종택으로 들어 가는 솟을대문이다. 대문에 안동권씨 정려가 걸려 있다.
종택이다.
종택 사랑방이다. 마루 난간이 아름답다.
사당의 삼문(三門)이다. 들어 갈 때는 우측문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는 좌측문으로 나온다. 가운데 큰 문은 신(神)이 다니는 신문(神門)이다.
우리 일행이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으로 들어 가고 있다.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 현판이다. 방풍과 방한을 위하여 유리문으로 달았다. 秋月寒水亭은 직역하면 가을 달빛 아래 차가운 물이 있는 정자이다. 그 속 뜻은 털끝만큼의 의탁함이 없어야 한다는 不可存毫髮 退托之念, 잠깐이라도 방종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有斯須放倒之容, 흐릿하고 어리러운 지경에 떨어져서는 안된다는 不可墜昏沈 散亂之境 등 퇴계의 수신십훈(修身十訓)이 들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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