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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山金氏 이야기

시조공 대제 봉행에서 잘 못하거나 부족한 것들

by 仲林堂 김용헌 2015. 11. 13.

우리나라의 제례는 중국의 주자가례를 사계 김장생 선생께서 당시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따라 할 수 있게 가례집람을 편찬하였다. 성균관이나 향교, 서원에서도 이 가례집람을 기준으로 제례를 행했으며, 가문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우리 광산김씨는 사계의 제례에 더 따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400여년이 지난 지금 그대로 따를 수 없으며 오늘날에 현실에 맞게 제례를 행하야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기준은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기준은 종묘제례나 성균관의 석전이 기준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또는 예학의 종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계편람이나 사계선생의 제례를 실천한 신독재 선생의 철권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 맞을 것으로 본다. 이런 관점에서 시조공의 제례가 잘 못하고 있거나 미비하거나 부족한 사항은 아래와 같다. 

① 제관과 집사는 장갑이나 마스크를 쓰지 말아야 한다.

② 제관은 관복을 입어서는 안된다.

③ 제관이 입장하기 전에 진설을 미리 해 놓아야 한다.

④ 분헌관은 시조공 신위에도 헌작을 하고 있으나 분헌관은 분헌 신위에만 헌작해야 한다.

⑤ 제상에서 술잔은 신위 바로 앞쪽에 놓아야 한다.

⑥ 촛불을 켜고 제례를 지내야 한다.

⑦ 현수막에 쓴 대제(大祭)의 祭자가 틀렸다.

예감(坎: 축을 태우는 곳) 위치가 서남쪽에 있으나 서북쪽에 있어야 한다. 

⑨ 전폐례는 성균관이나 서원에서 학문하는 분에게 올리는 제례로 사가에서 제례는 전폐례는 하지 않는다.

⑩ 사가에서 제례를 날 음식을 올리지 않는다. 익힌 음식을 올려야 한다. 

⑪ 집사들의 거동은 빠르고 직각 보행을 하지 않는 분이 많다.   

 

- 초헌관이 장갑을 끼고 향을 사르고 있다. 봉작, 전작 등 집사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 불경스런 모습이다. 음식에 침이 떨어지지 않게 하도록 마스크를 쓴 것으로 보이나 그 보다는 불경스런 모습이다. 돌아가신 조상님께서도 음식을 드신다고 할 때도 자손이 얼굴을 보고 싶을 것이며 마스크로 가린 얼굴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성균관이나 종묘 제례에 참석해 보았으나 어느 곳도 장갑을 끼고 제례를 올리는 곳이 없었다. 어떤 근거로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쓴 것인지 알 수 없다.

- 초헌관이 장갑을 끼었으나 익릉기신제에도 성균관 석전에도 제관이 장갑을 끼지는 않는다. 장갑을 끼어야 하나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제례가 시작되었으나 흰 제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집사들이 당하에 있다. 종묘대제나 성균관 석전은 집사와 사준은 미리 제실 정위치에 있는다. 시조공 제례는 미리 제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봉행시간이 길었다. 성균관이나 서원에서 제례는 제례가 시작되기 전에 진설을 다 하고 있으며 제례가 시작되면 알자는 초헌관을 인도하여 진설이 잘 되었나 확인하고 돌아갈 뿐이다. 

 

- 제관들이 관복을 입고 있다. 금관복은 공무원이 입는 옷으로 사가에서는 심의를 입어야 맞다고 본다. 금관복은 1품 이상의 관직에 있는 분이 입는 옷이다. 시조공 제례는 종헌례 후 분헌례를 따라하고 있으나 성균관에서는 종헌례와 분헌례를 동시에 봉행하므로 제례 시간을 절약하고 있다. 

 

 

- 시조공 제상에 작을 올리는 받침대가 5개가 있다. 5개는 5명의 헌관이 올리는 5작을 올릴 자리라고 본다.  시조공에게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3분만 올려야 하고 분헌관은 시조공에 작을 올려서는 안된다고 본다. 분헌관은 동쪽에 모신 신위만 작을 올리며, 서분헌관은 서쪽에 모신 신위에게만 작을 올려야 한다. 누구든 작을 올릴 수는 없는 것이다. 제례 시작 10분전쯤되나 아직 진설이 되어 있지 않았다.

- 술잔이 제상의 맨 앞쪽에 있으나 술은 최고의 음식이다. 가장 좋은 음식은 신위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수막에 쓴 대제(大祭)의 祭자가 틀렸다. 그런 글자는 없다.

 

이 사진은 익릉(인경왕후의 릉)에 있는 예감(坎: 축을 태우는 곳) 사진이다. 이 예감은 정자각보다 위쪽에 있었다. 그러나 시조공의 예감은 당하에 있었다. 예감은 신위를 태우는 곳으로 제실의 서쪽 당상에 있어야 한다. 어떻게 신위를 당하로 내려 올 수가 있는 가?  시정을 해야 할 것이다.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는 사가에서는 할 수 없으며 성균관이나 서원에서 올리는 의식이다. 사가에서 지내는 제례에서는 폐백을 올리지 않는다. 돼지고기가 익히지 않았고, 무는 통채로이고, 밤이나 은행도 까지 않은 상태이다. 성균관이나 서원에서와 같이 날 음식을 올리고 있으나 이는 잘 못된 것이다. 사가에서 올리는 제사에서는 날 음식을 올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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