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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해석

공산성 공북루 현판에 걸린 박두원의 7언율시

by 仲林堂 김용헌 2015. 10. 30.

박두원(朴斗源)이 지은 시 한 수가 공산성 공북루에 걸려 있다. 글씨가 초서라 어려워 지인에게 청하여 그 뜻을 풀이하였다. 박두원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 검색했으나 찾지못했다.

朴斗源

 

雙樹城開錦水頭 쌍수성 금강가에 세워지니

聞來從古是雄州 예로부터 큰 고을이라고 들렸네.

湖襟南裂通三道 물길은 남으로 갈라져 삼도로 통하고

山勢北馳拱一樓 산세는 북으로 달려 한 누각으로 향하네.

仰望奧情今惠政 깊은 정 이제 베푸는 정사를 원하노니

頻分華扁幾淸流 자주 나뉜 화려한 편액 얼마나 맑은 물 흘렸을 가

笙歌盡日憑誰得 생가(관악기) 종일토록 누가 누리며 보낼 수 있나 

自願吾身鬼此遊 원하노니 내 몸 귀신이 되어도 여기서 노닐고 싶네.

 

[공북루에 대한 향토문화백과사전의 글]

공북루(拱北樓)는 1602년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한 유근공주 공산성에 감영을 설치하기 위해 절차를 계문하여, 1603년에 공주목사를 겸임하라는 비답이 내려지자 산성을 수축(修築)한 후에 옛 망북루의 자리에 세운 것이다.
공북루가 지어진 지 60년 후인 1663년(현종 4)에 오정위가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중수를 하였고, 1765년 관찰사 윤동승(尹東昇)이 중수를 하였다.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중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1903년(고종 40)에 홍승헌이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중수하였고 「중수기문」을 남겼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에도 한 차례 중수를 하였으며, 1964년 국고 보조비로 보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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