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문해석

오원규 시인의 말: 제발 내 시 속에 와서 머리를 들이밀고 무엇인가를 찾지 마라

by 仲林堂 김용헌 2013. 8. 23.

선가(禪家)의 말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 존재 하나하나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진리다.

시인이 제발 내 시 속에 와서 머리를 들이밀고 무엇인가를 찾지 마라, 내가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것은 없다고 말한 대로

시인은 그저 있을 뿐인 세상을 왜곡 없이 드러내기 위해 시에서 의미를 최대한 덜어낸다.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은 배가 암초를 피하듯 배제했다.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새와 날개 오규원

가지에 걸려 있는 자기 그림자

주섬주섬 걷어내 몸에 붙이고

새 한 마리 날아가네.

날개 없는 그림자 땅에 끌리네.

 

나무와 허공 오규원

잎이 가지를 떠난다 하늘이

그 자리를 허공에 맡긴다.

 

불과 21음절의 단시는 언뜻 선시와 유사해 보인다. ‘떠남’, ‘()’이란 시어도 불교적 색채를 띤다. 하지만, 시인은 언어 너머의 깨달음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 낙엽 떨어지는 정경을 최소한의 이미지로 옮겼을 뿐이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읽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오후 오규원

아침에는 비가 왔었다

마른번개가 몇 번 치고

아이가 하나 가고

그리고

사방에서 오후가 왔었다

돌풍이 한 번 불고

다시 한 번 불고

아이가 간 그 길로

젖은 옷을 입고 여자가 갔다

 

시인은 궂은 날 시간 간격을 두고 같은 길을 걷는 어미와 자식을 묘사한다. 독자는 시인과 함께 충실히 복원된 풍경을 감상한다. 시를 읽은 뒤 쓸쓸함을 느낄 수도, 모성을 읽을 수도 있다. 시인은 보여주기만 할 뿐, 각자의 몽상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대와 산-서시>

그대 몸이 열리면 거기 산이 있어 해가 솟아오르리라,

계곡의 물이 계곡을 더 깊게 하리라.

밤이 오고 별이 몸을 태워 아침을 맞이하리라.

'한문해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수자 시인의 노숙화석  (0) 2013.08.23
황규동 시인의 물소리  (0) 2013.08.23
퇴계 이황의 晩步  (0) 2013.08.23
이언적의 무위  (0) 2013.08.10
다산 정약용의 打麥行(보리타작)  (0) 2013.08.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