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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중국 시안(西安)

중국 시안(西安) 비림(卑林) 관람

by 仲林堂 김용헌 2025. 5. 26.

일행이 탄 버스는 비림(碑林: 비석의 숲)박물관은 시안성의 남쪽 동쪽 성문을 지났다.
하차하여 비림박물관 입구에 도착하니 연못이 하나 있다.
비림박물관 근처 지도다. 남문에서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남문을 통과하자 성벽 옆에 종이 하나 있다. 아마 이 종은 고대에 성문을 열 때 이 종을 쳤을 것으로 보인다.
비림박물관에서 먼저 만나는 비석은 청나라 때 만든 비석이라고 한다. 이민족인 청이 세운 비석을 혹시나 한족이 혹시 파괴할지 모르기 때문에 자물쇠로 문을 잠갔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여기부터 정식 비림의 시작이다. 비림문 앞에서 섰다. 비림(碑林)의 碑자에 밭전자 위에 삣침(점)을 일부러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학문과 문화의 깊이는 무한함을 상징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즉 아직도 더 배우고 정진해야 한다. 부족하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비림문 현판 글씨는 당나라 때 사람 유공권(柳公權) 썼다고 합니다.
비림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으로 당나라 현종이 친필로 효경을 적어 비석에 새긴 ‘석대효경비(石臺孝經碑)이다. 비림의 맨 앞에 있다.
황제가 세운 비석이라지만 긴 세월을 이기지는 못하여 비록 돌이라도 늙어 주름이 많고 상처가 있다.
비문은 하나의 옛 도서관이라고 한다. 수 많은 글이 돌에 새겨져 있다.
다양한 글씨가 있다.
원래는 각지에 있던 비석을 이곳으로 모아 다시 세운 것이다.
일행이 관람하고 있다.
구멍이 뚫린 비석이다. 처음에는 비석을 매장했다고 한다. 매장할 때 비석에 구멍이 있으면 작업이 편리하여 이렇게 구멍을 냈다고 한다.
그림이 있는 비석이다.
공자상 비석이다.
달마대사 비석이다.
달마 대사의 지팡이 끝에 신발을 매단 특이한 그림 비석이다.
다보탑감응비이다. 많은 관객이 바라보고 있다.
대보탑감응비 설명이다. 당 천보 21년(752년) 잠운이 찬했고, 글씨는 안진경이 썼다. 원래 당나라 장안성 안정방 천복사에 세웠던 것을 송대 비림으로 이전했다.
용문양이 특이하다.
왕희지가 쓴 비석이 많다. 항희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중국 서예사에서 왕희지는 후대 서예 발전을 선도했으며, 고대 황제들이 그의 서예에 대한 칭찬은 황희지 서예를 배우는 붐을 일으켰다.

남조 양무제는 황희지 서예에 대해 "용이 하늘 문을 열고 뛰어넘고, 호랑이가 바람 그물에 누워 있는 것 같다. 대대로 귀중히 여겨 교육으로 삼았다"라고 평했다. 

거북이 좌대 비석이다.

우리 일행은 5월 22일 오후 비림박물관(碑林博物館)을 방문했다. 이 박물관은 시안 시 중심가인 남문 근처에 있었다. 

나무로 된 유물유적은 화재나 썩을 수 있어 오래 견디지 못하나 비석은 돌로 만들어 큰 훼손이나 자연 손상이 없으며 수천년을 남아 있을 수 있다. 비석에는 글이 있어 역사 기록으로 남아 보존 가치가 큰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비석을 모아 놓은 이곳 비름은 중국 고대 역사박물관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비석의 모양과 크기, 글씨의 종류 등이 다양하여 더 많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 

 

우리 일행은 짧은 시간에 수 많은 비석의 이야기를 다 알아 볼 수는 없고, 그 글씨도 고대 한자로 되어 있어 일부만 살펴 보았을 뿐이다. '아! 이런 역사기록이 있구나' 이해하는 정도로 관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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