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여행/중국 시안(西安)

병마용(兵馬俑) 방문

by 仲林堂 김용헌 2025. 5. 25.

진시황병마용박물관 앞이다.
여권을 찍고 일행이 입장하고 있다.
수 많은 인파다.
병마용 1호갱 입구에 있는 설명문을 가이드가 해설하고 있다. 그 주요 내용은 1번 갱은 1971년 3월 농부가 우물을 파전 중 발견되었고, 1979년 10월 1일 전시관이 설립되어 대중에 공개하였다. 1호갱은 동서로 길이가 230m, 남북으로 넓이가 62m 지하토목구조물로 6,000개 이상이 토기 조각상과 말이 묻혀 있다. 병마용은 생생한 모양과 실제와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알려졌다.
군사들이 정렬해 있다. 이들은 진시황제가 살아 있을 때 호위병으로 추정하고 있다.
병마용은 흙을 구워만든 사람 모형이다. 그 크기는 !:1로 축소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이다.
일반 병사로 추정된다.
목이 없는 토용도 많다. 원래는 있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흙이 다져지면서 압력에 의하여 토용이 부서졌고, 발굴자들이 부서진 조각을 맞춰 원래 모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부서진 목을 찾지 못해 목이 없는 토용이라고 한다.
가운데 뚝 같이 있는 곳은 토용을 구웠던 가마라고 한다.
수 많은 인파가 1호갱의 관람통로를 메우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5월 21일 아주 관광객이 적은 날이라고 했다. 사람이 많을 때는 밀려 간다고 했다. 귀에 네시버를 끼고 가이드의 설명을 듣었다.
나의 친구도 보인다.
총 토용 7,000개 중 1호갱 토용이 6,000개라고 한다. 건물의 사이드에 수 많은 인파들이 보인다.
토용 복원 모습이다.
2호 갱이다.
가이드가 발굴당시 사진을 일행에게 보여주고 있다. 발굴 후 공기에 노출이 되면 산화되어 검게 변색된다고 한다. 더 이상 발굴을 하지 않는 것은 산화방지 기술이 아직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4호 갱이라는 표지 글씨가 바닦에 써 있다. 4호 갱은 아직 발굴하지 않은 곳이다.
앉아 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병사의 모습이다.
고급 지휘관의 모습이다.
증급 지휘관 모습이다.
말 모습이다.
서서 화을 쏘는 모습이다. 나무로 된 활은 썩어 없어졌고, 토용만 남아 있다.
발굴당시 모습이다. 토용이 부서져 있다.
우측 우리막 안이서 발굴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출토 당시 사진이다. 산 사람과 같은 모습이다. 칼라가 그대로 보인다.

 

우리 일행과 함께 5월 21일 진시황릉이 있는 병마용박물관을 방문했다. 너무 중요한 유물유적이라서 그런지 2번의 여권심사를 통과해야 입장할 수 있었다.

 

병마용 토용은 황제가 붕어 할 때 진시황 이전에는 산 사람도 같이 묻는 순장을 했으나 사람대신 사후 세계에세 무덤을 지켜주는 흙으로 만든 인형을 순장한 것이다. 병마용은 세계적인 인류문화유산이다. 여러 차례 매스컴에서 보고 들었으나 직접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수 많은 토용을 보면 진시황제의 권력이 어떠했을 가? 짐작을 해 본다. 지하궁전은 황제 즉위하면서 죽을 때까지 40여년에 걸처 수 많은 노동자가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1호갱에는 일반 병사가 있고, 2호갱에는 기병, 고위 군사, 지휘부가 있고, 3호갱에는 지휘부가 있고 전차 1대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과 표정이 다를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되었다니 이 또한 놀랍다. 세계적인 유물을 관람은 나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우리 일행이 관람한 날 날씨가 몹시 더워 에어컨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수 년전 에어컨을 설치했다고 한다. 지나는 통로 위에 설치한 에어컨으로부터 시원한 바람이 계속 나왔지만 너무 더운 날씨라서 시원하지는 않았다. 수 많은 인파 속에서 관람도 하나의 추억이 될 것 같다. 3호갱에서 유리관 속에서 앉아 활 쏘는 병사, 중급 지휘관, 고급지휘관, 서써 쏘는 병사, 기마병을 가까이서 본 게 인상적이었다.

 

수 천개의 병마용 토양을 제작도 불가사의 한 일이고, 이것을 수년에 걸처 발굴하고 관람객에 볼 수 있게 만든 시설도 대단했다.   

댓글